"이제 북핵문제가 풀리면 한반도 평화 체제로 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 정부의 방침이었습니다. 평화 체제로 가려면 종전 협정 또는 평화 협정 순서대로 또는 동시에 가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 문제에 있어서, 앞으로 원칙에 있어 남북이 주도해서 직접 관련 당사 국가의 평화체제에 관한 협의를 해나가도록 남북이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남북 당사자 간에 바로 협의를 시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의 일환으로서 부시 미 대통령이 제안한 바 있는 종전 선언 방안을 제가 김 위원장에게 설명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종전 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데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을 밝히고 이전 한미 간에 논의한 바 있는 종전 선언 방안에 대해서 구체적인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과연 남북 관계에 대한 이 발언은 언제, 누구의 것일까. 부시란 이름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현재까지 급물살을 거듭 중인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1,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나온 발언이라 생각할 이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한데, 놀랍게도 이 발언의 주인공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요, 발언 속 김 위원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아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그 시기는 놀랍게도 2007년 10월, 노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국민들에게 보고하는 자리였고. 
 
 노무현재단의 팟캐스트 <유시민의 알릴레오> 1회 방송 화면

노무현재단의 팟캐스트 <유시민의 알릴레오> 1회 방송 화면ⓒ 노무현재단


12일 공개된 팟캐스트 방송 '유시민의 알릴레오' 2회에 출연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저도 그 자리에 있었다"며 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남북의 합의와 지금의 유사점을 거론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금의 남북정상회담 선언이나 트럼프 대통령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 합의문하고 거의 같은 맥락으로 느껴져요"라며 이러한 유사점을 강조하자, 문 특보 역시 "같은 맥락"이라며 "문재인 대통령도 그렇게 강조했죠"라고 맞장구를 쳤다.
 
잊고 있었다. '유시민의 알릴레오'가 노무현재단의 방송이라는 것을. '유시민'과 '문재인', 즉 문재인 정부의 '어용지식인'임을 선언했던 유시민 이사장과 문 대통령의 이름만을 각인해선 안 됐다. 그렇게 2회를 들으며 새삼 깨달았다. 1회부터 '유시민의 고칠레오'를 거쳐 2회에 이르기까지 드넓게 드리워진 '노무현'이란 존재를. 이를 증명하듯, 문정인 특보와 한반도 평화 체제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간 2회의 제목 역시 '두 명의 대통령'이었다.
 
'모범생' 문재인과 노무현의 '알쓸신잡'
 
"문재인 대통령은 엄청난 모범생이고, 엄청나게 공부를 많이 하시죠. 아마 현 정부에서 서훈 원장 빼고 제일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고, 많이 하실 걸요.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관저 환담을 많이 했죠. '알쓸신잡'을 관저에서 많이 했죠. 저도 수없이 정말 많이 갔습니다. 거기에서 난상토론 하시고 거기에서 생각을 하시는 점이 차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노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스타일의 차이가 있지 않나요?"라고 유 이사장이 묻자, 문정인 특보가 답했다. 그 자체로 흥미로운 비교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나 참여정부 당시 남북정상회담은 물론 이전 정부에서도 남북문제에 정통한 문 특보의 입으로 직접 듣는 남북, 한미, 북미 관계의 역학구도와 10여 년 전과 지금의 유사성은 경청할 만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 유 이사장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러한 비교가 가능할 법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유 이사장의 의도는 차치하더라도, 문 특보 역시 이에 화답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러한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점과 또 그 사이에서 한국 대통령의 역할이 지니는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러니까 또 이런 식.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통일 얘기는 거의 안 한 것 같다"고 유 이사장이 질문하자 문 특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기본 기조는 선 평화, 후 통일"이라고 정리했다. 이어 문 특보는 "두 분은 기본적으로 평화가 있어야 통일이 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며 "평화 없는 통일은 전쟁이나 정변인데 이에 따른 엄청난 부수적 비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 한 번도 전화 통화도, 뵌 적도 없다"던 유 이사장은 과거 자신이 한 비유를 재차 거론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용직 가장"이라면 김정은 위원장은 "소년가장"이란 표현 말이다. 물론 이러한 비유도 끝맺음은 노 전 대통령으로 마무리됐다. 일관성 있다. 유 이사장의 설명은 이랬다.
 
"시스템으로 보면 김정은 위원장은 절대 권력을 가졌지만 국정 운영 경험이 매우 짧고 나이도 너무 젊고 여러 면에서 한 국가를 통치하는 사람으로서 환경을 보면 불안한 점이 많은 사람이에요.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은 했는데 야당이 지금도 숫자가 많고 청와대를 빼고 다른 여러 권력관계나 이런 것들이 보수 쪽으로 치우쳐 있으니까 국민들의 지지 없이는 국정을 끌어가기가 매우 힘들어요.
 
하루하루 벌어야 하는 가장 같다고 느낀 적이 있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확실히 그런 차이는 있는 거 같아요. 노무현 대통령은 굉장히 멀리 보려고 하셨고 그것 때문에 화를 많이 보셨어요. 오해도 많이 받고. 문재인 대통령은 눈앞에 닥쳐 있는 문제에 초점을 두고 국정운영을 하시는 거 아닌가."

 
문재인과 노무현의 유사점
 
 
 노무현재단의 팟캐스트 <유시민의 알릴레오> 2회 방송에 출연한 문정은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 보좌관

노무현재단의 팟캐스트 <유시민의 알릴레오> 2회 방송에 출연한 문정은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 보좌관ⓒ 노무현재단


이러한 비유와 유시민 이사장의 '문재인 빙의'에 대한 문 특보의 답은 어땠을까. 아베 총리와의 비교는 명징했다. 더군다나 불과 1년여 전인 평창동계올림픽 직전만 해도 예측 불가능했던 남북, 북미 관계를 언급한 문 특보의 답은 문 대통령의 외교력에 대해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됐다. 조금 길지만 전체를 인용해 보자.
 
"문 대통령은, 2017년 한 해를 보세요. 북한이 미사일 실험 발사만 15회 이상을 했거든요. 6차 핵실험도 했죠. 미국에서는 예방 전쟁이다, 선제 타격이다, 코피 전략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시 주어진 소명은 전쟁은 어쨌든 막아야 하겠다, 평화를 가져와야겠다. 굉장히 절박했죠. 우리가 문 대통령의 절박함을 이해할 수 있어야 되고요.
 
그 다음에 문 대통령은 그 나름의 완벽주의죠. 엄청나게 준비하고 엄청나게 성실하죠.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2018년 초에 한 보수 일간지와 인터뷰하는데 이런 질문을 해요. 아베 총리와 문 대통령을 어떻게 비교하느냐. 아베가 외교는 더 잘 하는 것 아니냐.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베 총리 외교는 기술에 근거한 외교, 임기응변적 외교인데, 문 대통령은 진정성을 가지고 하는 외교. 난 진정성 외교가 기술의 외교를 항상 이길 거라고 본다.
 
인터뷰한 그 유력 보수일간지 논설위원이 이 대목에서 헛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라고 썼더라고요. 마침 그날 아침에 미국에서 발표가 났어요. 알루미늄, 철강 관세 발표가 났는데, 일본은 포함시키고 우리는 면제시켰거든요. 그런 걸 보면서, 우리 문 대통령의 비교 우위가 철저한 준비, 성실성, 이런 것들로 이 만큼 이끌어온 거 아닌가.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할 거 같아요."

 
그래서일까. 문 특보는 문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과 관련해서도 희망적인 전망을 내놨다. 문 특보는 과거 문 대통령이 "노벨상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자"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고마워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소한 것 같지만 진심을 다하면 좋은 소식이 있을 거고, 지금은 어려운 국면이지만 2019년을 희망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답했다.
 
결론적으로, 이날 '알릴레오' 방송은 제목처럼 10년이 넘는 시간을 뛰어 넘어 한반도 평화 체제에 관한 문재인과 노무현, 두 전현직 대통령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는 방송이었다. 물론, 그러한 방향으로 이끈 이는 단연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이었고.
 
'문재인의 운명'과 '유시민의 알릴레오'
 
흥미로운 점은, 지난 '유시민의 고칠레오' 방송에서도 유 이사장이 역시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했다는 사실이다. '저 유시민 대선 출마 안 합니다'로 요약되는 '고칠레오' 1화에서도 유 이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유시민에게 정치하지 말라고 하셨다'라는 소셜 미디어 글을 언급하며 과거 2009년 4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직전 봉하마을에서 만났던 일화를 꺼내 들었다.
 
"도대체 정치가 뭐냐. 정치는 보통사람의 평범한 일상을 행복하게 누리도록 하는 게 목적인데 그 일을 하기 위해 나의 행복은 어떻게 했는가. 자네는 정치하지 말고 글 쓰고 강연하라고 하셨어요. 정치라는 게 힘든 일이고 책임이 너무 무겁고 좋은 마음으로 한다고 해서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삶의 행복이 거기 있는 것만도 아니고. 대통령은 사회 진보를 이룩하는 자리가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는 정치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하셨다."
 
"당신이 그 당시에 (서거 직전) 그런 상황에서 너무 한스러운 거다"라고 말문을 연 유 이사장은 그러면서 "대통령 하면서 너무 외로우셨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또 유 이사장은 제가 말씀 안 듣고 정치했는데 후회했다"며 "잘 되지도 않았고 사람들이 인정해준 것도 아니고. 제가 행복한 것도 아니고. 그때 대통령님 말씀 들을 걸…"이라고 덧붙였다. 
 
 노무현재단의 팟캐스트 <유시민의 알릴레오> 1회 방송 화면

노무현재단의 팟캐스트 <유시민의 알릴레오> 1회 방송 화면ⓒ 노무현재단


그 때의 후회를 다시금 하지 않겠다는, 즉 '대선 출마는 없다'는 선언의 배경을 설명하며 노 전 대통령과의 대화를 떠올린 것이다. 유 이사장이 길어 올린 이 일화를 듣자, 과거 고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과 형, 동생사이였다는 송철호 울산시장이 작년 6월 6.14 지방선거 직후 당선자 신분으로 출연한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털어 놓은 '운명'이 떠올랐다.
 
송철호 시장에 따르면, 2011~2012년경 낙선을 하고 "더 이상 정치 안 하겠다"고 선언한 송 시장에게 이호철 비서관이 찾아왔다고 한다. 정치 은퇴를 선언하고 집까지 이사해 버린 터였지만, 당시 변호사 신분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송 시장을 꼭 만나고 싶다고 간청했더란다. '문재인의 운명'이 여기서 또 등장한다.
 
"이호철이 찾아왔어요. 문재인 변호사 쪽에서 꼭 좀 뵙자고 한다고. 그래서 만났더니 '형, 이사했다며? 다시 이사 가소.' (문 변호사가) 이사한 지 넉 달밖에 안 됐는데 또 이사를 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는 내 맘대로 못 사나?'하니까, '그게 운명인데 어쩝니까?' 그래서 다시 이사를 갔죠.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 무서운 분들한테 딱 트랩에 걸려 있었어요."
 

"그게 운명인데 어쩝니까?". 변호사 문재인이 정치를 그만두려는 '형' 송철호 시장에게 한 하소연에 등장하는 '운명'. 그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 결과, "집권의지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던 정치인 문재인은 두 번의 도전 끝에 결국 촛불혁명과 함께 대통령이 됐다.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는 그 운명은 정치인 노무현이 개척하고 문 대통령이 이어받은 길이기도 하다.
 
"노무현의 시대가 올까요?" (노무현)
"아, 오죠. 오지 않을 수 없죠. 반드시 옵니다." (유시민)
"근데 노무현의 시대가 오면 내는 그기 없을 것 같소." (노무현)
 

그래서다. 작년 5월 출간된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원작 <노무현이라는 사람>에서 유시민 작가가 소개한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또 하나의 일화를 떠올린 이유가. 2002년 대선 경선 당시 후보 노무현은 캠프 자원봉사자 유시민에게 대뜸 이렇게 물었다고 했다. 그에 대한 유시민의 답은 이랬다.
 
"아,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럼 어때요? 그 시대가 오기만 하면 되지요. 후보님은 새로운 변화의 첫 파도에 올라타신 거예요. 이제 첫 파도가 밀려와 가야 할 곳까지 갈 수도 있지만 못 가고 주저앉을 수도 있죠. 그러면 그다음 파도가 또 오겠지요.
 
계속 파도가 와서 어느 시점엔가 지금 후보님이 생각하는 대통령이 되려는 그 이유, 대통령이 되어 만들고자 하는 사회, 이루고자 하는 변화가 이뤄질 거예요. 그런데 첫 파도를 타고 계시기 때문에 거기까지 못 갈 수도 있습니다. 그게 오기는 와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노무현재단의 팟캐스트 방송에서 끊임없이 정치인 노무현을 소환하는 유시민 이사장. 문정인 특보와 한반도 평화 체제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수시로 등장하는 '노무현의 시대'는, 그 첫 번째 파도는, 문재인 정부를 통해 전승되는 중이다. '알릴레오' 2화 내용 전체가 그를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물음도 가능할 수 있겠다. 과연 시대가, 앞으로의 정국이 유 이사장에게 "그게 운명인데 어쩝니까?"라고 묻는다면, 과연 유 이사장은 지금처럼 "선거에 나가기 싫다", "대통령이 되기 싫다"고 손사래를 칠 수 있을까. 아마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문재인 대통령 역시 그 '운명'을, 유 이사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답했던 '파도'를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향후 '유시민의 운명' 또한 좀 더 길게 지켜봐야 하는 것 아닐까. 2019년 벽두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던 '유시민의 알릴레오'와 '유시민의 고칠레오'. 유 이사장의 이 '문재인 정부 응원' 방송이 도리어 그 운명을 부채질하는 스피커이자 소통창구로 기능할 가능성을, 과연 '제로'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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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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