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라는 자긍심 이전에 축구의 기본부터 다시 가다듬어야 할 형편이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빈 골문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맞이하여 그 바로 앞에서도 골을 성공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들을 필요가 없다. 상대를 우습게 본 것이거나 자기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를 습관적으로 가볍게 여기거나 축구 실력이 딱 거기까지인 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우리 시각으로 12일 오전 1시 아랍에미리트 알 아인에 있는 하자 빈 자예드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9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C조 키르기스스탄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 수비수 김민재의 코너킥 헤더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겼다. 이로써 중국과 나란히 2승을 기록한 한국은 남은 경기 결과와 상관 없이 16강 진출 티켓을 손에 넣었다. 중국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1위 자격을 놓고 싸우게 됐다.

수비수 김민재의 A매치 데뷔 골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김민재가 11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알아인 하자 빈 자예드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AFC 아시안컵 UAE 조별 라운드 C조 2차전 키르기스스탄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고 돌아가고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김민재가 11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알아인 하자 빈 자예드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AFC 아시안컵 UAE 조별 라운드 C조 2차전 키르기스스탄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고 돌아가고 있다. ⓒ 연합뉴스


상대의 거친 압박 수비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한국 선수들은 전반전에 어이없는 패스 미스를 많이 저질렀다. 킥 오프 직후에 오른쪽 풀백 이용이 거친 태클에 걸려 쓰러졌다. 카미스 알-마리(카타르) 주심은 너무 일찍부터 경고 카드를 꺼내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나중에서야 이용이 쓰러진 곳으로 달려와서 의료진을 불렀다.

이 한 장면만으로도 이 경기 내내 키르기스스탄 선수들이 얼마나 거친 압박 축구를 펼친 것인가를 예상했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은 전반전에 공을 비교적 안이하게 돌렸다. 그러다보니 빌드 업이 매끄럽지 못했다. 햄스트링 부상 때문에 나오지 못한 기성용의 빈 자리가 눈에 밟힐 수밖에 없었다.

기성용 대신 나온 황인범의 과감한 전진 패스도 돋보였지만 투박함이 과하게 보였다. 패스 타이밍은 빨랐지만 앞으로 빠져들어가는 동료들과 완벽하게 합이 맞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코너킥 세트 피스에서 운명의 갈림길이 생겼다. 34분에 키르기스스탄의 코너킥 세트 피스가 한국 골문 앞을 크게 위협했는데 사긴바에프의 오른발 슛은 운 좋게도 골키퍼 김승규 정면으로 날아왔다.

41분에 한국이 얻은 오른쪽 코너킥 세트 피스 기회는 귀중한 결승골로 이어졌다. 김진수 대신 왼쪽 풀백으로 나와서 자신의 재능을 맘껏 뽐낸 홍철이 왼발로 감아올린 공을 센터백 김민재가 가까운 기둥 쪽으로 빠르게 빠져나가며 이마로 공 방향을 슬쩍 바꿔 그물을 흔든 것이다.

한국 축구의 듬직한 센터백으로 성장하고 있는 김민재는 국가대표 데뷔 14경기만에 A매치 첫 골을 무엇보다 뜻 깊게 장식한 것이다. 후반전 경기 내용까지 고려할 때 막내 수비수의 이 골이 아니었다면 생각하기도 끔찍한 결과를 받아들었을 것이었다.

이청용과 황희찬의 헛발질
 
 11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알아인 하자 빈 자예드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AFC 아시안컵 UAE 조별 라운드 C조 2차전 한국과 키르기스스탄과의 경기에서 황희찬이 슛을 하고 있다.

11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알아인 하자 빈 자예드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AFC 아시안컵 UAE 조별 라운드 C조 2차전 한국과 키르기스스탄과의 경기에서 황희찬이 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경기 전 중국은 필리핀을 상대로 3-0 점수판을 만들며 한 발 먼저 16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거기서 한국 축구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중국의 유능한 공격수 우 레이가 놀라운 2골을 터뜨렸다. 멋진 장면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기술적 완성도가 뛰어난 골들이었다. 

우 레이의 오른발 휘어차기 골과 프리킥 세트 피스 발리 골 순간을 한국 경기에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한국 공격수들의 결정력이 형편없었다는 뜻이다. 골잡이 황의조가 두 번이나 골대를 때린 것은 흔히 말하는 불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68분의 헤더 슛은 크로스바에 맞고 떨어지며 골 라인을 야속하게도 넘어가지 않았고, 73분에 이청용의 오른쪽 크로스를 받아놓고 각도 없는 곳에서 강하게 때린 왼발 슛은 상대 팀 새내기 골키퍼 카디르베코프가 온몸으로 막아내는 바람에 또 한 번 골대를 때리고 나왔다.

정말로 심각한 결정력의 민낯이 드러난 두 주인공은 이청용과 황희찬이었다. 필리핀과의 첫 경기 후반전 교체 선수로 들어와서 결정적인 전진 패스로 결승골을 만들어낸 이청용은 이 경기에 선발로 나와서 36분에 비교적 쉬운 선취골 기회를 잡았다. 오른쪽에서 넘어온 구자철의 컷 백 크로스를 향해 달려가며 오른발 인사이드 슛을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 이청용의 오른발과 공이 만나는 지점이 불과 골 라인으로부터 5미터 정도 떨어진 가까운 곳이었기에 크로스바를 넘어간다고 생각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여기서 이청용은 너무 일찍 중심이 무너지며 헛발질을 하고 말았다.

이보다 더 어이없는 순간은 76분에 이어졌다. 오른쪽 측면에서 이용의 날카로운 얼리 크로스가 골문 앞으로 뻗어왔을 때 골키퍼 카디르베코프가 그 공을 쳐냈고 골 라인으로부터 약 7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황희찬 앞에 빈 골문이 보였다. 누가 봐도 황희찬의 오른발 인사이드 킥은 골문 안으로 날아들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황희찬의 발끝을 떠난 공은 크로스바 상단을 스치며 넘어가고 말았다. 

이 두 장면만으로도 이번 대회 한국 팀의 골 결정력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를 알 수가 있다. 어쩌다 나온 실수라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축구팬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국가대표라는 위치에서 뛰는 선수가 저지를 실수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 한국은 조별리그 세 번째 경기에서 중국과 만나 토너먼트 유리한 대진표를 차지하기 위해 1위 싸움을 치열하게 펼칠 것이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의 14일 일정(오전 1시 30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홈 게임)까지 소화한 뒤 날아오는 손흥민의 존재감만으로도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겠지만 실제로 16일(수) 오후 10시 30분 게임에 뛴다는 것은 여러 모로 위험한 일정이다.

에이스 손흥민에게 최고의 컨디션을 발휘해줄 것을 바란다면 중국과의 경기에서 마지막 10여분 정도만을 가볍게 뛰게 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그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중국을 상대로 먼저 골을 터뜨려 앞서나가야 한다. 그러나 오른쪽 풀백으로서 누구보다 날카로운 크로스 실력을 자랑하는 이용까지 경고 누적으로 뛰지 못하게 됐기 때문에 '기성용-이재성'의 줄부상 악재에 더 큰 고민을 떠안게 됐다.

김문환이라는 아시안게임 금메달 리스트가 있기에 큰 걱정은 아니라고들 말하지만 이 경기에서 민낯이 드러난 골 결정력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한다면 기세등등한 중국 선수들 앞에서 휘청거릴 것이 뻔하다. 

8강 이후의 대진표를 고려해서라도 조 1위로 16강 토너먼트를 치르게 하는 것이 59년만에 우승 트로피를 노리는 벤투호가 붙잡아야 할 선택지다. 그러기 위해서는 게임에 임하는 선수들의 기본적인 마음가짐부터 남다르게 잡아야 한다. 대충 발을 뻗어도 골을 넣을 것이라는 안이한 마음과 상대를 얕잡아보는 경솔함, 자기 말고도 누군가가 대신해 줄 것이라는 무책임함 등을 의식 속에서 모조리 몰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빈 마음 구석에 누구보다도 간절한 마음과 겸허한 태도를 불어넣어야 할 것이다. 최고의 자리는 우연히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점 명심해야 한다.

2019 AFC 아시안컵 C조 결과(12일 오전 1시, 하자 빈 자예드 스타디움-알 아인)

★ 한국 1-0 키르기스스탄 [득점 : 김민재(41분,도움-홍철)]

◎ 한국 선수들
FW : 황의조(82분↔지동원)
AMF : 이청용, 구자철(63분↔주세종), 황인범, 황희찬
DMF : 정우영
DF : 홍철, 김영권, 김민재, 이용
GK : 김승규

◇ 주요 기록 비교
점유율 : 한국 70.9%, 키르기스스탄 29.1%
유효 슛 : 한국 7개, 키르기스스탄 2개
슛 : 한국 19개(박스 안 17개), 키르기스스탄 12개(박스 안 8개)
패스 : 한국 639개, 키르기스스탄 259개
롱 패스 : 한국 69개, 키르기스스탄 53개
패스 성공률 : 한국 87.6%, 키르기스스탄 67.6%
공격 지역 패스 성공률 : 한국 76.6%, 키르기스스탄 52.1%
크로스 : 한국 25개, 키르기스스탄 13개
크로스 성공률 : 한국 24%, 키르기스스탄 7.7%
코너킥 : 한국 10개, 키르기스스탄 5개
오프 사이드 : 한국 4개, 키르기스스탄 0개
가로채기 : 한국 8개, 키르기스스탄 9개
태클 : 한국 18개, 키르기스스탄 17개
파울 : 한국 7개, 키르기스스탄 10개
경고 : 한국 1장(이용), 키르기스스탄 1장(루스타모프) 

◇ C조 현재 순위표
1위 중국 6점 2승 5득점 1실점 +4 *** 16강 진출!
2위 한국 6점 2승 2득점 0실점 +2 *** 16강 진출!
3위 키르기스스탄 0점 2패 1득점 3실점 -2
4위 필리핀 0점 2패 0득점 4실점 -4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아시안컵 김민재 키르기스스탄 김민재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