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호정.

배우 유호정이 8년 만에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로 복귀한다.ⓒ 엠씨엠씨

  
그간 드라마에서 여러 엄마 역을 했다지만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는 배우 유호정에겐 더욱 특별해 보였다. 인터뷰 중 몇 차례 감정을 다잡을 정도로 몰입해 있었던 것. 극 중 홀로 딸 현아(채수빈)를 키워낸 홍장미 역을 맡은 유호정은 "이번만큼은 제 경험이 아닌, 내 엄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천부적인 노래 실력을 지녔던 장미는 클럽에서 소속사 대표 눈에 든 이후 가수 데뷔를 눈앞에 뒀지만 끝내 포기해야 했다. 당시 첫사랑 명환(이원근/박성웅 2인 1역)의 아이를 임신했고, 결국 출산을 감행했기 때문. 명환은 미국 유학길에 오르고 그때부터 장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시작된다. 영화는 이 과정을 장미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묘사했다.

딸도 눈물 참아가며 영화 관람

억척스러웠다. 영화 속 홍장미가 그랬고, 유호정의 어머니가 그랬다. 유호정은 "그간 엄마 역할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까진 육아하며 느낀 감정이나 경험을 떠올리며 연기했다면 이번엔 엄마를 생각하며 했다"고 말했다. 
 
"날 키웠을 때 엄마가 이런 생각이었구나 느끼게 됐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엄마의 모습이 강하게 떠오르더라. 현장에서도 생각지도 못했던 감정이 들어 울컥하기도 했다. 언론 시사회 때 완성된 영화를 처음 봤는데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너무 좋아하셨을 것 같더라. 장미가 생활고에 처절하게 사는 모습이 담겼지만 거기서 어떤 희망적 메시지를 줄 수 있어서 감동이었다.  

엄마가 장미와 닮은 구석이 많다. 제가 아빠 없이 자랐다. 엄마 혼자서 두 딸을 치열하게 키우셨다. 다만 아빠 없이 자라서 버릇없다는 말 들으면 안 된다고 엄하게 저흴 키웠지. 그땐 그게 큰 상처였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결혼 후 제가 우스갯소리로 내가 애교 없는 건 엄마 탓이라고 하기도 했다. 엄만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속상하셨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엄마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온도가 달랐다는 걸 깨닫게 된 거지."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의 한 장면.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의 한 장면.ⓒ 엠씨엠씨

 
그 감정이 유호정의 자녀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시사회 때 엄마의 초대로 영화를 본 15살의 딸은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는 게 보여서 마음이 아팠다"는 감상평을 남겼다고 한다. 

"눈물 참느라 혼났다고 하더라. 양쪽 사람들이 다 울고 있었다고(웃음). 영화에서 딸(채수빈)이 장미에게 호강시켜주겠다고 하는 대목이 있는데 뭐 느낀 거 없었어? 물어보니 '엄마를 호강시켜주기엔 15살밖에 안됐잖아' 이러더라(웃음). 

힘들기도 했지만 장미 역할을 하면서 힘이 나기도 했다. 워낙 에너지 넘치는 캐릭터였으니 말이다. 장미의 상황과 환경은 밑바닥 같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아이를 선택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큰 공감이 가능했다. 이처럼 모든 엄마는 처한 환경은 달라도 마음은 똑같다고 생각한다."  


연기에 눈 뜨다

가수라는 꿈에 부풀어 있던 장미와 달리 유호정의 실제 청소년기는 그리 밝진 않았다고 한다. 고등학교시절 그는 어머니의 엄한 훈육을 거스르지 않는 딸이었고, 성격 역시 다소 소극적이었다고.  

"남녀공학일 때라 남학생이 따라오는 일도 있었다고 예전에 얘기한 적이 있지만 기본적으론 우울했던 때였다. 나름 사춘기였던 것 같다. 제가 성향이 주목받는 것도 싫어했고, 통금도 밤 9시였는데 정말 그 시간을 쭉 지켰다. 버릇없다는 소릴 들으면 안 된다, 맏언니니까 잘 해야 한다는 엄마의 말이 무겁게 절 눌렀던 것 같다. 

그래서 방송 생활 초반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연기를 30년 할 줄이야. 막 시작했을 땐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접으려고도 했다. 전 진짜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었거든. 직업을 가져야 한다면 유치원 선생님 정도? 결혼해서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일을 할지는 상상도 못 했지."

 
 배우 유호정.

"그래서 방송 생활 초반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연기를 30년 할 줄이야. 막 시작했을 땐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접으려고 생각도 했다. 전 진짜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었거든."ⓒ 엠씨엠씨

 
드라마 데뷔작인 <고개 숙인 남자>(1991) 이후 유호정은 꾸준했다. 단아한 외모, 말투로 금세 방송가에서 주목받는 배우로 떠올랐다. 그러다 동료 배우 이재룡과 결혼 후 지금까지 가정과 일을 동시에 해오고 있다. 스스로 그만둘 생각을 했을 정도의 내면 갈등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분명한 건 그때 그가 포기했다면 대중들은 <우리들의 천국> <작별> 속에서의 명연기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란 사실.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꽤 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나고 그가 주변의 감독님을 소개해주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것만 해 봐. 그래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가서 그만두자'라고. 그 작품이 <우리들의 천국>이었다. 유명한 배우들이 하고 싶어 했다는데 제게 그 역할을 주신 거였다. 연기하면서 감정을 끌어내는 재미를 그 작품 덕에 알게 됐다. 남편 도움으로 일의 재미를 느낀 것이지. 이후 김수현 선생님 작품을 하면서, 그리고 윤여정 선배님께 연기를 배우면서 힘들지만, 보람을 느끼게 됐다. <작별>(1994) 할 때 윤여정 선배님 집에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가서 연기를 배우고 그랬다(웃음)." 

일과 삶의 균형

배우로선 이른 시기에 결혼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경력을 쌓아가며 유호정은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일과 일상의 균형. 두 자녀를 키우면서 그는 "육아와 일 양쪽을 두고 할 수 있는 한 치우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그 둘의 균형을 잡지 않으면 둘 다 망가지더라.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할 때 없으면 (아이가) 힘들어하고, 또 집에만 신경 쓰면 일이 안 되니까 제가 힘들고. 감사하게도 제 직업이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하는 게 아니라 한 작품을 끝내면 쉴 때가 오잖나. 아이도 이젠 그런 생활 흐름을 이해한다. 어렸을 땐 일할 때 (아이가) 울면서 전화해서 마음이 아팠는데 지금은 엄마를 자랑스러워 하고 모니터링도 해준다. 상황에 맞게 우선순위가 달랐다. 어렸을 땐 아이에 더 신경을 쓰려 했다. 일 때문에 가족이 뒤로 밀리든 가족 때문에 일이 밀리든 둘 다 후회가 남을 것이기에 일보다 가족이 우선이 될 수 있다면 주저않고 가족을 택했다. 

벌써 아들이 18세, 딸이 15세다. 곧 이들을 떠나보낼 준비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전까진 많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 우선 음식을 많이 해주려 한다. 저도 김치를 볼 때마다 엄마가 가장 그리웠거든. 아이들과 시간 나면 같이 밥을 자주 해 먹는다."


동시에 선행도 꾸준히 그리고 알리면서 하자는 게 요즘 유호정의 모토다. 이 역시 삶의 균형을 잡기 위한 그만의 방법이지 않을까. NGO 단체 등과 함께 유호정, 이재룡 부부는 집짓기, 기부 등을 길게는 12년째 이어오고 있다. "너무 틀에 박힌 얘기지만 나눔과 봉사는 타인보단 절 위한 것이기도 하다"며 유호정은 "예전엔 밝히기 쑥쓰러웠다면 이젠 같이 알려서 함께 하자고 독려하는 시대인 것 같다. 할 수 있는 부분을 계속 함께 하고 싶다"고 그 뜻을 밝혔다.
 
 배우 유호정.

"이젠 아들이 벌써 18세, 딸이 15세다. 곧 이들을 떠나보낼 준비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전까진 많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 엠씨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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