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포스트 포스터

▲ 더 포스트 포스터 ⓒ CGV 아트하우스

  
2018년 개봉한 작품 중 최고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영화가 있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다. 위로는 캐나다, 아래로는 멕시코, 멀리 영국 출신의 감독들까지 건너와 활개를 치는 작금의 할리우드에서 스티븐 스필버그는 미국 출신의 동년배 노장들과 함께 여전한 현역으로 분투하는 기둥이다. 그런 그가 미국의 오늘에 절묘하게 잘 어울리는 옛 이야기를 들고 와서는 귀 기울일 수밖에 없도록 풀어놓았으니 주목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

영화는 1971년 있었던 워싱턴포스트의 펜타곤 리포트 폭로사건을 다뤘다. 정부가 베트남전과 관련한 정보를 조작해 국민을 속였음을 입증하는 국방부 리포트, 일명 맥나마라 보고서가 언론을 통해 폭로된 사건이다. 이 사건과 이어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은 베트남에 파견된 군대 철수는 물론 닉슨 행정부의 몰락까지 겪게 된다.

미군이 베트남에서 고전하던 시절, 워싱턴포스트는 수도 워싱턴 DC의 지역지다. 정부 고위인사를 비롯해 식자층에 읽힌다는 자부심을 가졌지만 독자기반을 확장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재정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다. 워싱턴포스트를 지키려는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 분)은 신문사를 주식시장에 상장해 어려움을 타개하려 시도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회사가 시장에 무사히 상장돼 자본이 들어오기까지 계약이 취소될 수 있는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한편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 분)는 경쟁사인 뉴욕타임스에 뒤처질까 매일이 고민이다. 부족한 살림에 적은 기자들로 신문을 꾸려나가려니 전국구 제일의 신문인 뉴욕타임스에게 사사건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는 뉴욕타임스의 베테랑 기자 닐 시언이 석 달 째 기사를 쓰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는다. 닐 시언이 특종을 터뜨릴 때마다 워싱턴포스트의 체면이 구겨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뉴욕타임스 편집국이 1면 톱으로 닐 시언의 기사를 대대적으로 준비한다는 정보까지 들어와 벤은 전전긍긍한다.

쏟아지는 언론영화 속 <더 포스트>의 특별함
 
더 포스트 벤브래들리(톰 행크스 분)와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은 자신들이 지역 라이벌로 여기는 뉴욕타임스에게 한 방 얻어맞을까 전전긍긍이다.

▲ 더 포스트 벤브래들리(톰 행크스 분)와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은 자신들이 지역 라이벌로 여기는 뉴욕타임스에게 한 방 얻어맞을까 전전긍긍이다. ⓒ CGV 아트하우스

  
다음날 보도된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전국을 뒤집어 놓는다. 그는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연구원들에게 작성을 지시했다는 보고서를 확보해 보도했는데, 그 내용이 자못 충격적이다.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승산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전쟁을 지속했고 이 과정에서 국민을 기만했다는 것이다.

닉슨 행정부는 보도에 즉각 대응한다. 뉴욕타임스가 국가기밀정보를 빼돌려 보도했으며 그 결과 국익이 훼손됐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뉴욕타임스가 추가적인 보도를 할 수 없도록 법률적 절차까지 밟는다. 아무리 수정헌법 1조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나라라지만 닉슨 대통령과 정부의 삼엄한 기세에 어느 언론도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다.

영화는 이 같은 상황 가운데 워싱턴포스트가 맥나마라 보고서를 연이어 보도하는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그려낸다. 종합적이라 함은 이제껏 보아왔던 평면적인 언론영화에서처럼 의로운 기자들이 어려움에 맞서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를 넘어, 사주·이사진·편집국장·기자 등 언론의 각 주체가 각기 직면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찬찬히 살폈다는 뜻이다.

더불어 영화는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던 캐서린의 모습으로부터, 보장돼 마땅한 평등과 용기라는 가치를 끌어내기까지 한다. 스필버그 특유의 몹시 세련되어 세련되지 않은 듯 보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남성들 사이에서 웃기만 하던 그녀가 기둥이 되기까지
 
더 포스트 남성들 사이에 둘러쌓인 여성 사업가로서 자신감을 잃어가는 캐서린의 모습을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 메릴 스트립이 훌륭히 연기해냈다.

▲ 더 포스트 남성들 사이에 둘러쌓인 여성 사업가로서 자신감을 잃어가는 캐서린의 모습을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 메릴 스트립이 훌륭히 연기해냈다. ⓒ CGV 아트하우스

  
남편의 자살로 신문사를 이어받은 캐서린은 역사 깊은 언론사의 사주임에도 한껏 움츠러든 모습이다. 그녀를 둘러싼 이사들은 반쯤 대놓고 '그녀가 남편이 죽어 회사를 물려받은 무능한 여자일 뿐'이라고 떠들어댄다. 이사회에서 믿을 수 있는 인물은 언제나 그녀를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프리츠 비브(트레이시 레츠 분) 뿐이다. 영화는 단 몇 장면을 통해 그녀가 처한 상황을 표현하는데, 다음과 같다.

영화 초반 캐서린은 기업 상장과 관련한 회의에 참석해서 할 말을 프리츠와 연습한다. 프리츠는 그녀가 자신이 할 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므로 따로 연습이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그래도 연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습상황에서 캐서린은 언론의 역할과 장기적인 비전에 대해 설득력 있게 말하는데 막상 실제 회의장에선 준비한 질문 앞에서도 당황하며 말을 잇지 못한다. 그녀의 곁에 있던 프리츠가 답을 대신하고 그녀는 잔뜩 주눅이 들어 회의장을 빠져나온다.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워싱턴포스트와 소속 기자들의 영웅적 활약을 보이는 작품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는 언론사의 각 주체가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과 그로부터 쓰이는 빛나는 역사를 담담한 시선에서 그려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결단을 내린 인물은 극중 벤의 깨달음에서 알 수 있듯 사주인 캐서린이다.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져 온 가족기업의 운명을 걸고 언론의 사명을 위해 용기를 낸 그녀의 결단이 이 영화가 내보인 가장 귀한 것이었다.

캐서린이 감당한 건 그저 사업만은 아니었다. 영화는 그녀의 입을 통해 그녀가 맥나마라 장관과 오랜 친구사이며 남편이 자살한 뒤 이들 부부로부터 큰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벤은 그녀에게 친구와 언론 가운데 하나만 고를 수 있다며 선택을 강요하지만, 캐서린은 벤의 부부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내외가 가져온 관계를 상기시키며 그와 자신의 상황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캐서린이 끝내 맥나마라 보도를 허락하던 순간은 그래서 충격적이다. 앞서 언급한 모든 주체가 수화기를 들고 캐서린의 말을 기다리던 다중 통화 신에서 캐서린은 마치 홀린 것처럼 "Let's go!"란 말을 반복한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 있는 순간으로, 스필버그는 자신이 한 캐릭터에게 내보일 수 있는 최고의 존경과 애정을 담아 캐서린을 잡아낸다. 바로 이 순간 그녀는 오랜 우정과 역사 깊은 회사를 망가뜨릴 수 있는 위험을 기꺼이 감당하길 선택한다. 더불어 어쩌면 여자라는 이유로 맞닥뜨리게 될 비난 앞에 자신을 무방비로 세운다. 영화 속 어느 누구도 캐서린의 자리에 섰다면 그와 같이 하였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결정을 말이다. 캐서린이 그 모두를 감당하며 지켜내려 한 건 그녀 스스로 말했듯 오로지 언론의 책임과 윤리뿐이다. 그녀는 그렇게 워싱턴 포스트의 기둥(Post)이 된다.

이 영화가 노라 애프론에게 헌정된 이유는?
 
노라 애프론 스티븐 스필버그는 2012년 세상을 떠난 노라 애프론에게 이 영화를 헌정했다. 기자이자 편집자, 작가, 영화감독이기도 했던 노라 애프론이지만 스필버그와의 접점은 크지 않아 다소 의외로 여겨졌다. 스필버그가 애프론에게 영화를 헌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 노라 애프론 스티븐 스필버그는 2012년 세상을 떠난 노라 애프론에게 이 영화를 헌정했다. 기자이자 편집자, 작가, 영화감독이기도 했던 노라 애프론이지만 스필버그와의 접점은 크지 않아 다소 의외로 여겨졌다. 스필버그가 애프론에게 영화를 헌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 노라 애프론

  
영화는 캐서린을 비롯한 여러 인물이 각기 제 자리에서 기둥이 되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도저히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없는 영웅적 저항 같은 게 아니라 각자가 제 자리에서 제게 어울리는 용기를 냄으로써 이뤄지는 어떤 작품 같은 것 말이다. 사주가 사주의 자리에서, 편집국장은 편집국장의 자리에서, 사내변호사와 이사들, 기자들과 평직원들, 판사와 시민들이 모두 제 자리에서 제게 맡겨진 역할을 지켜냄으로써 이뤄지는 사회적 정의를 보여주는 것이다.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하지 않은 닉슨 대통령과 맥나마라 장관을 비롯한 위정자들이 무너지는 건 그래서 순리에 가깝다.

최근 몇 년 사이 개봉한 <스포트라이트> <트루스> 등 썩 괜찮은 언론영화 가운데서도 <더 포스트>의 가치는 단연 돋보인다. 미국 정치의 측면에서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대에 여러모로 의미 깊게 돌아볼 만한 리처드 닉슨 시대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부터, 기존 언론영화에 비해 보다 본격적으로 사주의 책임과 여성에 가해진 부당한 차별을 논의했다는 게 그렇다.

어쩌면 이미 흘러간 옛 이야기일지 모르겠으나 마틴 스콜세지와 스티븐 스필버그, 로버트 저매키스, 우디 앨런 등 할리우드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나이든 미국 감독들이 부쩍 옛 이야기를 자주 하는 건 그 시절의 이야기가 오늘에 여전히 유효하다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덧붙여 <더 포스트>의 크레디트가 끝까지 오른 뒤, 만나게 되는 특별한 이름이 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해리와 샐리가 만났을 때> 같은 걸출한 로맨스영화를 만든 영화감독이자 각본가 노라 애프론이다. 스필버그는 크레디트가 모두 오른 뒤 마지막 자막을 통해 2012년 세상을 떠난 노라 애프론에게 <더 포스트>를 헌정한다는 뜻을 밝힌다.

그녀와 이 영화가 맺고 있는 관계는 제법 흥미로운데, 주연인 톰 행크스가 노라 애프론의 영화에 가장 많이 출연한 배우란 점, 메릴 스트립이 <제2의 연인>에서 아예 노라 애프론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점, 무엇보다 노라 애프론이 뉴욕타임스 편집장을 거친 언론인 출신이란 점이 모두 그렇다.

비슷한 시기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서로의 영화세계에 조금의 접점도 없어 보였던 스티븐 스필버그와 노라 애프론, 스필버그가 노라 애프론에게 <더 포스트>를 헌정한 이유가 무언지를 생각해보는 건 스필버그가 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려 했던 걸 들여다보는 효과적인 방법일지 모른다. 노라 애프론과 스티븐 스필버그 모두 지난 시절 할리우드에서 각자의 자리를 훌륭히 떠받친 두꺼운 기둥이었으므로.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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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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