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버나움>의 한 장면.

영화 <가버나움>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더벅머리에 풀린 눈을 한 소년 자인(자인 알 라피아)은 거리에서 주스를 팔거나 종종 자기 몸만 한 크기의 수레를 옮기곤 한다.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 가버나움의 민낯 중 하나다. 전쟁과 가난으로 인해 삶의 주변부로 몰린 사람들의 동네. 이곳에서 자인은 여러 명의 동생들과 살아간다. 영화 <가버나움>은 바로 이 소년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였다.

시작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가버나움을 하늘에서 바라본 장면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의 시선처럼 사뿐히 안착하자마자 카메라는 급격히 흔들린다. 곧바로 이어지는 자인의 일상.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과 함께 벌어지는 장면들에 관객들은 분명 정신 차릴 새 없이 자인의 삶 속 중력에 끌려갈 것이다. 

일반적인 휴먼드라마 장르에서 보일 법한 극적 장치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아이들의 삶 자체가 드라마라는 믿음으로 영화는 매우 급하게, 때론 여유롭게 자인의 모습을 쫓곤 한다. 영화는 소년 자인이 상해를 입힌 혐의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모습과 그의 일상을 교차시키며 서서히 진실에 접근하는 구성 방식을 취했다.
 
 영화 <가버나움>의 한 장면.

영화 <가버나움>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어떤 거짓말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은 영화 말미에 확인 가능하다. 일반적인 장르 영화라면 자인이 왜 상해를 입혔는지 설명하고, 그는 무결함을 주장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겠지만 <가버나움>은 보다 큰 단위에서 접근한다. 법률과 제도에서 자의든 타의든 벗어난 이들을 그 틀에서만 판단할 수 없는 것. 연출을 맡은 레바논 출신의 라딘 라바키 감독은 무엇보다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이미 자국에서 난민의 현주소를 직시한 감독은 전 세계의 문제가 되어 가는 난민이라는 화두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가해자임에도 재판정에서 "부모를 고소하고 싶다"며 떼를 쓰는 어린 자인을 오히려 더욱 가까이 담아내려 했을 것이다. 

동네 양아치에게 여동생을 강제로 시집 보낸 부모를 원망하며 뛰쳐나온 자인은 말 그대로 노숙 신세가 된다. 자인은 버스 안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로드무비인 듯 아닌 듯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들며 영화는 자인에게 귀를 기울이거나, 호의를 가장한 흑심을 품은 이들, 마음을 다해 품어주는 이들을 묘사한다.

스파이더맨이 아닌 바퀴맨 복장을 한 놀이공원 지킴이 노인, 미혼모로 해당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라힐(요르다노스 시프로우)과 그의 한 살배기 아들 요나스(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 난민과 노숙인을 상대로 밀입국 브로커 역할을 하는 시장 상인, 시장에서 각종 잡화를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소녀 등. 우연한 계기로 요나스를 돌보게 된 자인은 이런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의 세계를 지키려는 투쟁자로서의 모습마저 보이게 된다. 

자인은 영화에서 종종 이름을 속인다. 그에게 어른이란 부모처럼 경계와 원망의 대상이 됐기 때문. 대신 거리에서 만나는 또래의 아이에겐 상냥하다. 웃음기가 사라진 그의 얼굴에 잠시 앳된 해맑음이 그림자처럼 스치는 때도 바로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이다. 난민 자격으로 스웨덴에 가는 법을 알려주는 어린 소녀의 말을 기억하며 자인은 요나스와 함께 나라를 떠날 방법을 모색하기도 한다.

선택받지도, 선택할 수도 없었던 
 
 영화 <가버나움>의 한 장면.

영화 <가버나움>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12살 소년이 어른의 세계를 넘을 순 없었다. 삶에서 겪은 일로 쌓이고 쌓인 분노를 부모에게 그리고 낯선 어른에게 표출해 온 자인의 작은 손이 그래서 더욱 애달프다. 영화는 클로즈업,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써가며 자인의 표정, 눈빛을 자세히 묘사하고 동시에 카메라를 멀리 빼서 객관적 시선을 담보하려 했다. 

이는 구도에서도 드러난다. 첫 장면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카메라였다면, 영화 내내 카메라는 헨즈헬드(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방식)로 거칠게 흔들리기 일쑤다. 또한 당국의 단속에 걸려 교도소에 들어오게 된 불법체류자들을 멀찍이서 잡다가도 어느새 쇠창살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표정을 생생하게 담기도 한다. 신분증이 없어 불법체류자로 낙인찍힌 이들의 살 냄새가 고스란히 카메라에 묻은 채 스크린 밖 사람들 틈으로 파고드는 느낌이다. 

이런 구도를 통해 감독은 마치 '당신은 불법체류자 무리 속에서 이들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라고 질문하는 듯하다. 극 중 위로 방문이랍시고 쇠창살 밖에서 이들을 향해 영혼 없는 성가를 부르는 한 가톨릭 신자 무리는 이러한 감독의 질문에 아니라고 답해야 하는 인물들 아닐까. <가버나움>은 이렇게 내부자, 외부자의 시선을 번갈아 가면서 관객에게 직접 질문하게 하고 답을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막장과 같은 현실에서 자인이 어떻게 발버둥 치는지, 또 라힐과 요나스가 어떻게 위기를 맞는지에 집중해서 본다면 이 영화가 전하려는 지구 반대편의 절망스러운 현실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태어남을 선택할 수 없었고 국가로부터 난민 혹은 그보다도 못한 불법체류자라는 딱지가 붙은 이들은 이후에도 결코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부모가 다시는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해달라. 사는 게 똥 같다. 아이들 돌보지 않는 어른들은 진절머리가 난다!" 

재판장에게 호통치듯, 여린 목소리로 대꾸하는 자인의 이 말이 깊이 남는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 카메라는 처음과 반대로 조용히 하늘로 올라가며 멀찌감치 가버나움을 내려다 본다. 마치 천사가 떠나가듯. 

신약 성서에 따르면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인근 마을로 생전 예수가 많은 기적을 행한 곳이기도 하다. 그때의 성지가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가. 신은 그렇게 공중으로 떠났고, 남은 건 우리가 서로에게 되묻는 질문뿐이다. 

참고로 <가버나움>에 등장하는 자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배우는 실제 시리아 난민이거나 거리에서 생활하던 이들이다. 2018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직전까지도 배우들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어떤 증명서도 갖지 못했다. 또 영화제 상영 당시 언론시사 및 여러 시사에서 표를 구하기 위해 긴 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만큼 관심이 뜨거웠고, 결국 영화는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가버나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이들의 최근 근황을 자막을 통해 알 수 있다. 한국판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니 끝까지 자리를 지켜보자.

한 줄 평 : 영화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하다
평점 : ★★★★★(5/5)

 
영화 <가버나움> 관련 정보
제목 : 가버나움
감독 : 나딘 라바키
출연 : 자인 알 라피아, 요르다노스 시프로우, 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 나딘 라바키 
수입 및 배급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및 배급 : 세미콜론 스튜디오
공동제공 : ㈜인터파크
러닝타임 : 126분
상영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 2019년 1월 24일
가버나움 나딘 라바키 시리아 난민 불법체류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