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나 베트남에 비해 우리 축구팬들에게 주목받지 못한 팀이지만 아시안컵 직전 베트남과의 마지막 평가전에서 1-1로 비기며 도전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북한의 첫 게임이기에 기대가 컸다. 앞서 열린 조별리그 1차전에서 요르단이나 바레인 등이 그랬던 것처럼 이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역시 여자축구의 경쟁력이 월등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페루자에서 뛰고 있는 에이스 한광성이 실망의 주역이 된 것은 더 큰 충격이었다.
  
몸 푸는 북한 한광성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 출전 중인 북한 축구대표팀 한광성(이탈리아 페루자)이 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SSAD 알 맘자르 훈련장에서 몸을 풀고 있다.

▲ 몸 푸는 북한 한광성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 출전 중인 북한 축구대표팀 한광성(이탈리아 페루자)이 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SSAD 알 맘자르 훈련장에서 몸을 풀고 있다. ⓒ 연합뉴스

 
김용준 감독이 이끌고 있는 북한 남자축구대표팀이 우리 시각으로 9일 오전 1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라시드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9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E조 첫 경기에서 사우디 아라비아를 상대로 맥을 못추고 0-4로 완패했다.

의욕만 앞섰던 에이스 한광성의 퇴장

한국 축구팬들에게도 아주 익숙한 골키퍼 이름 '리명국'이 북한 축구대표팀 명단 맨 위에 또 나왔다. 33살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북한대표팀 골문을 아주 어릴 적부터 지킨 셈이다. 한국대표팀의 맏형 이용과 동갑내기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리명국보다 더 관심을 모으게 된 선수가 있다. 이례적으로 이탈리아 프로축구 AC 페루자에서 뛰고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 '한광성'이 그 주인공이다. 이번에 나상호를 대신하여 벤투호에 극적으로 합류한 이승우(헬라스 베로나)와 동갑내기이며 이라크의 18살 골잡이 모하나드 알리와 함께 이번 대회에서 샛별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은 선수로 거론되기도 했다. 

북한의 첫 상대가 아시아 축구의 전통 강호 사우디 아라비아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5-4-1 포메이션을 두고 수비에 치중하는 전술로 버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수비 축구는 엉뚱한 곳에서 큰 구멍을 드러내며 일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믿었던 에이스 한광성이 전반전도 끝나기 전에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한 것이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28분에 왼쪽 측면에서 하탄 바헤브리의 유연한 드리블 실력과 수준 높은 오른발 감아차기 실력으로 선취골을 넣었고, 37분에도 수비수 모하메드 알 파틸이 왼쪽 측면에서 얻은 프리킥 세트 피스 상황에서 알모카휘가 낮게 올려준 공을 절묘한 전갈 킥으로 꽂아넣어 일찌감치 2-0으로 앞서나갔다. 
 
 퇴장 당하는 한광성(7번)

퇴장 당하는 한광성(7번) ⓒ AFP/연합뉴스

 
이 흐름에 평정심을 잃은 탓일까? 아직 어린 북한의 한광성이 44분에 두 번째 옐로 카드를 피터 그린(호주) 주심으로부터 받으면서 아예 쫓겨났다. 위험 지역도 아닌 곳에서 사우디 아라비아 미드필더 알모카휘를 겨냥하여 뒤에서 거친 태클을 날린 것이다. 그는 8분 전에 먼저 받은 옐로카드를 까먹은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라운드를 걸어나가야 했다.

유연하지 못한 북한의 수비 축구

졸지에 10명이 된 북한 선수들은 후반전에 역습 전술을 머릿속에 그리며 나왔지만 전반전과 마찬가지로 두 골을 더 얻어맞으며 완전히 주저앉고 말았다. 

70분에 사우디 아라비아의 주장 알 도사리가 알 비시의 패스를 받아 북한 수비수 한 명을 가볍게 따돌리며 왼발 슛을 정확하게 구석으로 찔러넣었다. 이 실점 순간만 봐도 북한의 수비 방법이 얼마나 고지식한 수준인가를 확인할 수가 있다. 

중앙 수비수 중 한 명인 김성기가 알 도사리의 왼발 슛을 막겠다고 동료 골키퍼 리명국의 시야를 가리고는 중간에 서 있었던 것이 몸을 날려보지도 못하고 추가 실점하는 원인이 된 셈이다. 이처럼 북한 수비는 경직된 지역 방어 수준을 뛰어넘지 못했다. 

예상하기 힘든 지역에서도 놀라운 킥 기술과 엄청남 속도로 골을 만들어내는 현대 축구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수비 전술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수비수 숫자를 많이 두는 것,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의 간격을 비교적 좁게 유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수비 전술의 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숫자만 갖춘다고, 그림만 비슷하게 그렸다고 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축구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상대 팀 플레이(공격 방법, 연계 플레이)의 흐름을 읽고 최대한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을 북한 수비에서 찾기 어려웠다. 87분에 사우디 아라비아의 네 번째 골이 만들어진 과정에서도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후반전 교체 선수 알 샴라니가 왼쪽 측면에서 낮은 얼리 크로스로 골문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 동료 공격수 알 무왈라드를 겨냥했는데 역시 북한의 수비 숫자는 모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얼리 크로스를 예상했어야 할 센터백 김성기가 이 크로스를 너무나 쉽게 통과시킨 것이다.

수비 라인을 횡으로만 유지하고 있는 것과 상대의 크로스 각도나 높이에 따라 유연하게 수비 라인을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은 다른 차원의 축구라고 평가할 수 있다. 상대 팀의 공격 양상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수비법은 위력적인 중거리 슛 한 두 방이나 날카로운 크로스 한 두 개에 쉽게 그 바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훈련 지도하는 북한 김영준 감독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 출전 중인 북한 축구대표팀 김영준 감독이 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SSAD 알 맘자르 훈련장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 훈련 지도하는 북한 김영준 감독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 출전 중인 북한 축구대표팀 김영준 감독이 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SSAD 알 맘자르 훈련장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제 북한은 오는 일요일(13일) 오후 8시 사우디 아라비아만큼이나 까다로운 카타르를 상대로 간절한 승점을 노려야 조 3위, 와일드 카드 자리까지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2019 AFC 아시안컵 E조 결과(9일 오전 1시, 라시드 스타디움-두바이)

★ 북한 0-4 사우디 아라비아 [득점 : 하탄 바헤브리(28분,도움-알 비시), 모하메드 알 파틸(37분,도움-후세인 알모카휘), 알 도사리(70분,도움-알 비시), 알 무왈라드(87분,도움-알 샴라니)]

◎ 북한 선수들
FW : 박광룡
MF : 정일관, 리용직(90+1분↔림광혁), 리운철, 한광성
DF : 장국철(56분↔리창호), 리일진, 안성일(46분↔김경훈), 김성기, 김철범
GK : 리명국

◎ 사우디 아라비아 선수들
FW : 알 무왈라드
MF : 알모카휘, 알 비시(71분↔압둘라흐만 가리브), 압둘라 오타이프, 알 도사리, 하탄 바헤브리(78분↔알 사이아리)
DF : 알 샤흐라니(82분↔알 샴라니), 모하메드 알 파틸, 하디 알불라이히, 알 브레이크
GK : 알 오와이스

◇ 주요 기록 비교
점유율 : 북한 26.7%, 사우디 아라비아 73.3%
유효 슛 : 북한 2개, 사우디 아라비아 6개
슛 : 북한 7개(박스 안 3개), 사우디 아라비아 16개(박스 안 11개)
패스 : 북한 251개, 사우디 아라비아 684개
롱 패스 : 북한 64개, 사우디 아라비아 46개
패스 성공률 : 북한 66.5%, 사우디 아라비아 90.4%
공격 지역 패스 성공률 : 북한 46.1%, 사우디 아라비아 84%
크로스 : 북한 8개, 사우디 아라비아 34개
크로스 성공률 : 북한 37.5%, 사우디 아라비아 23.5%
코너킥 : 북한 3개, 사우디 아라비아 10개
가로채기 : 북한 12개, 사우디 아라비아 11개
오프 사이드 : 북한 2개, 사우디 아라비아 2개
태클 : 북한 8개, 사우디 아라비아 13개
파울 : 북한 11개, 사우디 아라비아 7개
경고 : 북한 5장(정일관, 한광성 2장, 리일진, 김철범), 사우디 아라비아 1장(알 도사리)
퇴장 : 북한 1장(한광성-경고 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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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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