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파티> 포스터.

영화 <더 파티> 포스터.ⓒ (주)라이크콘텐츠

  
장년의 부부가 파티를 열었다. 오랜 기간 정치에 몸바쳐온 아내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된 걸 축하하는 자리다. 부부의 오랜 친구들이 하나 둘 집을 찾아 부부와 살갑게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파티의 주인공인 자넷(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분)은 알 수 없는 누군가와 남 몰래 부엌에서 문자를 주고받으며 미소 짓는다. 그녀의 남편 빌(티모시 스폴 분)은 손님이 오건 말건 멍하니 풀린 눈으로 의자에 가만히 앉았다. 자넷과 절친한 관계로 보이는 에이프릴(패트리시아 클락슨 분)은 축하인지 질시인지 알 수 없는 말로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녀는 함께 온 독일인 남자친구 고프리드(브루노 강쯔 분)와 곧 헤어질 거라며 말끝마다 트집을 잡아댄다.

잘생긴 은행가로 자넷의 동료 매리엔과 부부 사이라는 톰(킬리언 머피 분)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진땀을 흘리며 화장실로 향한다. 그곳에서 톰은 떨리는 손으로 마약을 흡입하더니 권총을 숨긴다. 여성학자 마사(체리 존스 분)와 그녀의 동성연인 지니(에밀리 모티머 분) 사이에서도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이제 더 올 사람은 톰의 아내 매리엔 뿐. 일곱 남녀가 모여든 저녁자리는 자신에게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빌의 고백을 시작으로 예측불허의 난장으로 뒤바뀐다.

하찮고 비루하다, 인간의 삶
 
 영화 <더 파티> 스틸 컷. 유사한 설정의 한국영화 <완벽한 타인>과 비교해 볼 만한 작품으로, 보다 고급스런 유머와 풍자가 난무한다는 점이 특색이다.

영화 <더 파티> 스틸 컷. 유사한 설정의 한국영화 <완벽한 타인>과 비교해 볼 만한 작품으로, 보다 고급스런 유머와 풍자가 난무한다는 점이 특색이다.ⓒ (주)라이크콘텐츠

  
올해로 일흔이 된 샐리 포터 감독의 <더 파티>는 2017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신랄한 풍자와 해학이 묻어나는 대사가 일품이며, 유럽 국가들이 처한 정치 현실과 중산층 지식인을 겨냥한 유머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10대 시절부터 영화를 찍어온 샐리 포터 감독이 직접 각본을 썼고, 베테랑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검증된 배우들이 제게 꼭 어울리는 배역을 맡아 열연했다.

근래 보기 드문 71분짜리 영화로, 비 오듯 쏟아지는 대사와 돌출되는 사건들이 러닝타임을 가득 메운다. 흑백화면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인물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과 사건들을 더욱 선명하게 한다. 조명·촬영·구성에서도 준수하단 표현이 어울린다. 무엇보다 실내극 형식의 밀도 높은 블랙코미디 속에서 빛나는 배우들의 연기는 한 달 앞서 개봉한 한국영화 <완벽한 타인>을 떠올리게끔 한다.

<더 파티>는 한 여름 밤의 불꽃놀이와 닮았다. 일단 첫 발이 시작하면 쉴 새 없이 쏘아진 불꽃이 검은 하늘을 가만 놔두지 않는 불꽃놀이 말이다. 하나가 터지면 이내 다른 하나가 뒤를 잇고 매캐한 연기가 온 사방에 깔린다. 펑펑 터지는 색색의 불꽃이 평온한 하늘을 찢어발기는 동안 관객들은 박수치고 환호하며 감탄한다. 그러나 불꽃이 모두 사그라진 뒤 남는 건 허망함 뿐. 영화 속 불편한 진실이 폭로되고 자넷이 제 삶의 의미를 되묻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란 불꽃놀이 뒤에 느끼는 허망함과 얼마 다르지 않다.

진실하다 믿었던 감정이 거짓으로 밝혀질 때, 함께 지내온 오랜 세월 가운데 켜켜이 쌓여 있던 기만이 드러날 때, 애써 빚어낸 역사와 추억이 오늘의 감정 앞에 짓밟힐 때, 일곱 인물과 관객들은 삶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인간의 삶이란 것도 그저 하찮고 비루할 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절묘하게 떠오르는 정치풍자의 맛
 
 영화 <더 파티> 스틸 컷. 영화는 오랜 지인들 사이에 감춰진 비밀이 하나 둘 폭로되며 긴장이 증폭되는 전형적인 실내극의 구조를 가졌다.

영화 <더 파티> 스틸 컷. 영화는 오랜 지인들 사이에 감춰진 비밀이 하나 둘 폭로되며 긴장이 증폭되는 전형적인 실내극의 구조를 가졌다.ⓒ (주)라이크콘텐츠


영화의 제목 <더 파티>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졌다. 함께 모여 즐겁게 노는 모임을 뜻하는 영단어 '파티'는 정당을 뜻하기도 한다. 가만 보면 영화 속 인물들이 저마다 하나씩의 정당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진보적이고 보수적이며 여성주의를 표방하기도 하고 대중과 유리되기도 하는, 모였다가 흩어지고 뭉쳤다가 찢어지는 정당정치가 요동치는 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듯도 보인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처음의 모습으로부터 변화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 변화를 변절이라며 비난한다. 믿음은 배신되고 새로운 동맹이 이어지며 가장 지리멸렬한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기도 한다. 이 모두가 우리의 정당정치와 얼마나 닮았는가를 생각해보면 <더 파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재기 있는 정치풍자극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순간, 초토화된 집에 도착한 매리엔을 잡아낸 장면은 그래서 더 의미 깊고 매력적이다. 민주주의 정당정치를 완성시키는 건 유권자이며, 영화는 관객 앞에서야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영화 <더 파티> 스틸 컷. 잘생긴 금융인 톰(킬리언 머피 분)은 파티 자리에 권총을 몰래 가져와 긴장감을 조성한다.

영화 <더 파티> 스틸 컷. 잘생긴 금융인 톰(킬리언 머피 분)은 파티 자리에 권총을 몰래 가져와 긴장감을 조성한다.ⓒ (주)라이크콘텐츠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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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진행 / 인스타 @blly_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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