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포스터

▲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나와 내 친구들은 새해가 시작되면 지난 한 해 동안 본 영화를 정리하는 우리들만의 영화제를 연다. 개인적으로 하는 팟캐스트 방송 '블랙리스트'의 이름을 따 '블랙리스트 영화상'이라 부르는 행사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 상에 투표를 하게 됐는데 꼽을 만한 영화가 많지 않아 고민이 컸다. 그동안 항해사가 되기 위해 상선에 올라 열 달가량 너른 바다 위에서 생활한 탓에 본 영화가 많지 않았던 탓이다. 급한 대로 보고 싶었지만 놓친 영화리스트를 펼쳐 들었는데 그 중 가장 먼저 본 작품이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미술·음악상을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상의 주요 부문을 휩쓸었으니 지난 한 해 가장 주목받은 작품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감독은 기예르모 델 토로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알폰소 쿠아론과 함께 '멕시코 삼 대장'으로 불리는 유명 감독이다. 이번 수상으로 세 감독 모두가 아카데미 작품상이며 감독상을 번갈아 차지하는 대기록을 세웠고, 이를 통해 멕시코 영화인의 힘을 만방에 알렸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는 인어와 인간의 사랑이야기다. 비슷한 설정이긴 하지만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인어공주> 속 인어가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수중 세계의 공주로 육상의 왕자를 구하는 주역이라면, <셰이프 오브 워터>의 인어는 괴물에 가까운 외양에 실험대상으로 미국에 끌려온 무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극 중 인어와 사랑을 나누는 여인은 듣기는 하지만 말하지 못하는 장애인 청소부다. <인어공주>가 선망 받는 이들의 이야기라면, <셰이프 오브 워터>는 혐오받고 무시되는 존재의 이야기인 것이다.

기괴한 생명체와 인간의 사랑이라니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인어의 기괴한 외양은 허용되는 사랑의 범위에 대해 묻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인어의 기괴한 외양은 허용되는 사랑의 범위에 대해 묻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화 속 배경은 미국과 소련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1960년대, 주인공은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다. 그녀는 들을 수는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 장애인으로, 집과 직장을 오가며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다. 엘라이자의 곁에는 이웃집 노인 자일스(리차드 젠킨스 분)와 직장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분)뿐이다.

엘라이자의 삶은 센터에서 연구목적으로 들여온 어느 생명체를 만나면서부터 바뀌기 시작한다. 연구센터 보안책임자로 고용된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 분)가 아마존에서 잡아왔다는 이 생명체는 그야말로 모든 게 베일에 싸인 존재다. 의문의 생명체가 들어오고부터 실험실에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시시때때로 생명체를 고문하는 것 같은 소리가 벽을 넘어 들려오고, 어느 날인가는 스트릭랜드의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사건까지 발생한다.

한편 청소부로 실험실에 드나들던 엘라이자는 미지의 생명체와 조금씩 가까워지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주는 달걀을 받아먹고 틀어주는 음악에 반응하는 이 생명체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스트릭랜드는 이 생명체를 그저 실험체로만 바라보는데, 그는 미지의 생명체를 해부해 군사용으로 활용할 정보를 얻으려 한다. 그리고 계획을 알게 된 엘라이자는 이 생명체를 탈출시키려는 계획에 돌입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특유의 기괴하면서도 동화적인 화면 가운데 사랑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라는 제목에서 읽을 수 있듯, 사랑이란 담는 그릇에 따라 물처럼 여러 모양으로 변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빼다 박은 듯하면서도 달랐던 두 영화
 
스플래쉬 <스플래쉬>는 미녀인어와 성공한 남성 간의 사랑이라는 동화적 설정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 스플래쉬<스플래쉬>는 미녀인어와 성공한 남성 간의 사랑이라는 동화적 설정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터치스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와 비교해 볼 만한 영화가 두 편 있다. 론 하워드 감독의 1988년작 <스플래쉬>와 이창동 감독의 2002년작 <오아시스>가 그것이다. 하나는 같은 소재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고, 다른 하나는 전혀 다른 설정으로 같은 이야기를 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에게 주어진 오스카 트로피는 그 같은 부분과 다른 부분을 잘 조합한 솜씨에서 비롯됐으니, <셰이프 오브 워터>를 보고 오로지 이 이야기만 하더라도 해야 할 말은 모두 한 것이 되겠다.

톰 행크스와 대릴 한나가 주연한 <스플래쉬>는 주요 캐릭터의 성별만 바꾸면 그대로 <셰이프 오브 워터>와 맞물린다. 실험실로 끌려온 인어 매디슨(대릴 한나 분)과 그녀를 구하려는 사업가 알렌(톰 행크스 분)의 이야기는 인어를 구하려는 청소부 엘라이자의 이야기와 빼다 박은 듯 비슷하기 때문이다.

다만 어린 알렌이 바다에 빠졌을 때 그를 구한 게 인어 매디슨이란 설정과 알렌이 번듯하게 성공한 청년사업가란 점이 <셰이프 오브 워터>보다는 동화 <인어공주>와 닮은 지점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연구센터에서 가장 낮은 존재로 여겨지던 장애인이자 청소부 엘라이자인 것과 대비되는 점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의도는 엘라이자를 둘러싼 캐릭터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같은 아파트에 살며 엘라이자와 자주 소통하는 가난한 화가 자일스는 나이든 게이다. 자일스는 근처 파이가게 주인을 마음에 품고 그의 가게를 자주 찾지만, 용기 낸 고백 끝에 그에게 돌아오는 건 모욕과 푸대접뿐이다. 또 다른 친구 젤다는 흑인 청소부로 엘라이자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험난한 삶을 살아간다.

게이 노인과 흑인 청소부, 단 둘이 인간관계의 전부인 엘라이자의 세상에서 그녀는 여성일 수가 없다. '고립된 여인에게 나타난 첫 남성이 만약 인어라면?' 이것이 영화의 첫 번째 질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들의 세계에서 짝을 찾을 수 없는 인어와 잘난 자들의 세상에서 짝을 찾을 수 없는 장애인 여성의 만남. 상대의 외로움과 고통에 공감하며 조금씩 감정을 키워가는 둘의 이야기는 <스플래쉬> 못지않게 진지하고 때로 잔혹하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사랑이란 좋은 것이 분명하다고
 
오아시스 중증뇌성마비장애인 공주(문소리 분)가 종두(설경구 분)에게 '내가 만일'을 불러주던 장면은 그녀가 실제 장애인인 줄 알았던 상당수 관객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 오아시스중증뇌성마비장애인 공주(문소리 분)가 종두(설경구 분)에게 '내가 만일'을 불러주던 장면은 그녀가 실제 장애인인 줄 알았던 상당수 관객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CJ 엔터테인먼트

  
또 다른 영화 <오아시스>는 <셰이프 오브 워터>가 그렇듯, 관객이 허용하는 사랑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묻는 작품이다.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할 법한 남자 종두(설경구 분)와 사회로부터 격리된 여자 공주(문소리 분)의 만남·사랑을 적나라하게 다루며 개봉 당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

영화 <오아시스>는 중증뇌성마비장애인 공주와 그녀를 겁탈한 종두의 이야기로부터 사랑을 추출해낸다. 그 과정에서 작가의 손길이 우리 안의 편견을 거침없이 잡아채던 순간은, 영화라는 예술이 닿을 수 있는 어떤 경지를 생각하게끔 했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는 소외되고 때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 주인공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동일한 방식으로 선물하고 있다. 언어 장애인인 엘라이자가 기괴한 인어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장면이 종두 등에 업혀 있던 뇌성마비 장애인 공주가 곱게 노래 부르던 장면과 얼마나 유사하게 그려졌는지를 생각해보자. 세상으로부터 버려져 사랑을 알지 못했던 이들이 어설프지만 진지한 방식으로 저들만의 사랑을 이룩할 때, 기예르모 델 토로와 이창동이 선사한 짧은 순간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일찍이 도가에선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했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흐르는 물의 성질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선과 같다는 뜻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에겐 사랑이 그런 것이었던 모양이다. 사랑의 모양은 물과 같이 형태가 없어 어디에도 담길 수 있으며 담는 그릇에 따라 온갖 모양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이토록 기괴하고 동화적인 이야기 가운데 풀어놓았으니 말이다. <인어공주>와 <스플래쉬>, <오아시스>와 <셰이프 오브 워터> 속 사랑이 모두 이와 같다면, 사랑이란 참으로 좋은 것이 분명하다 하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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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 어플 '소모임'서 영화·책·전시 모임 '시네마천국애서' 운영, 팟캐스트 '김기사의 블랙리스트' 진행, 빅이슈 '영화만물상' 연재 / 인스타 @blly_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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