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부산 영화진흥위원회를 찾아 블랙리스트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직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4일 부산 영화진흥위원회를 찾아 블랙리스트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직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문화체육관광부

  
최근 개각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이 연초부터 산하기관들을 찾아다니며 블랙리스트 문제에 대해 사과 하고 있다.
 
도 장관은 지난 4일 오후 부산 영화진흥위원회를 찾아 "2017년부터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해 여러 가지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여러분들에게 정부를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며 "고통받으셨던 영화인들께도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앞서 3일에는 나주 문화예술위원회와 콘텐츠진흥원 본사를 찾아 직원들과 간담회를 열고 "권력의 정점에서 나온 부당한 지시를 이행했던 직원들의 상처를 매우 아프게 받아들이고 정부를 대신해 사과드린다"라고 말했다.
 
도 장관의 사과는 지난 연말부터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문체부는 장관과 차관 산하기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 멀티프로젝트홀에서 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계획 종합 보고회' 자리에서 블랙리스트 문제에 대해 사과했다. 
 
이 자리에서 문체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과 관련해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수사 의뢰 또는 징계 권고한 131명(문체부 68명, 기타 유관기관 63명) 중 문체부 검토 대상인 68명(수사의뢰권고 24명, 징계권고 44명)에 대해 수사의뢰 10명, 중징계 1명(감사원 징계 3명 미포함), 주의조치 33명(감사원 주의 4명 포함)의 징계를 하기로 최종 확정했다.
 
이는 지난 9월 이행계획 발표와 비교할 때 수사 의뢰 대상이 7명에서 10명으로, 징계 대상자는 0명에서 1명으로, 주의는 12명에서 33명으로 21명 늘어난 것이다. 문체부와 도종환 장관의 연이은 사과 릴레이는 퇴임 전에 블랙리스트 문제를 매듭지어보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문체부 사과에도, 문화예술인들 반응 시큰둥
 
 지난 12월 31일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계획 종합 보고회

지난 12월 31일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계획 종합 보고회ⓒ 유인택

 
하지만 정작 문화예술인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한마디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형식적인 사과라는 것이다. 이유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에서 2018년 6월 27일에 의결한 블랙리스트 책임 규명 관련 131명에 대한 수사의뢰 및 징계 권고한 것과 비교할 때 여전히 문체부의 징계가 미흡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계획 종합 보고회'는 참석한 문화예술계 인사들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했다. 사과를 한다면서 정작 피해자들에게는 제대로 알리지 않은 탓이다. 후속 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 문화예술계 인사는 "블랙리스트 관련 대국민 사과 자리인 줄 알고 갔더니 언론 대상 보고회라고 하질 않나... 화만 내고 왔다"면서 "사과를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하는데... 이건 예술인들이 사과를 받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가 아니라, 문체부가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는 취지밖에 되지 않는 거라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문화예술인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책임 있는 공무원들은 사과를 외면하고 어떻게든 빠져나가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에 항의해 광화문광장에 광장극장 블랙텐트를 치고 연극을 공연했던 한 연극연출가는 "공무원들 징계를 하자는 핵심은 정권이 누가 되었든 간에 공무원으로서 잘못된 지시를 거부하고 차별 없이 불편부당하게 공무를 수행해야한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자신은 책임 없다고 기억 안 난다면서 뒤로 숨고 있다. 이제까지 누가 어느 선에서 징계되는지만 관심을 두고 공무원의 눈으로 하는 징계발표와 사과만 되풀이 되고 있다"면서 "도종환 장관마저도 예술인 입장이 아니라 공무원 입장에서 도대체 왜 사과하는 줄도 모르고 징계 몇 명 했다고 발표하는데, 그게 사과냐?"고 비판했다.
 
블랙리스트 피해를 입어 지원에서 배제당했던 한 영화인도 "지난 2년 가까이 진행돼 온 블랙리스트 관련 진상조사와 그에 따른 책임(징계)을 급하게 마무리하려다 보니 미흡한 점이 드러났고 예술인들의 반감을 산 것 같다. 안타깝다"면서 "장관이나 기관장들의 사과보다는 직접적으로 지원배제에 나섰던 사람들이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만 하면 마음이 풀릴 것 같다"고 말했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재발방지 대책과 후속 조치가 미흡하다"며 담당 공무원 교육 등 실질적인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잘못 저지른 실무자 빠져 진정성 안 보여
 
 4일 부산 영화진흥위원회를 찾아 블랙리스트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4일 부산 영화진흥위원회를 찾아 블랙리스트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문화체육관광부

 
반복되는 사과에도 불구하고 재발방지 약속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이 상실감을 갖는 이유는 결국 이 같은 지적처럼 진정성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정작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진솔한 반성보다는 눈치를 보며 대충 넘어가려 하고 있고, 장관 역시도 이에 휘둘리고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최근 귀국한 것으로 알려진 블랙리스트 실행자가 즉각 소환되지 않고 해외에서 영화제를 주관하고 귀국시한을 연말까지 늦춘 것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일부에서는 문체부가 직원들에 대한 징계는 가볍게 넘기고 산하기관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경우 위원들은 사과를 하려고 하는데, 책임 있는 실무자들이 따르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는데, 이것이 문체부의 형식적인 태도가 바탕에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시선이 있다.
 
정부부처나 기관의 대표자들의 사과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실무 당사자들의 진솔한 반성과 고백이다. 윗사람 지시를 핑계로 반성이나 징계를 회피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언제든 윗사람 지시라는 이유로 같은 일을 되풀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료주의에 밀린 듯 사과하는 장관의 태도는 아쉬움만 남긴다. 지난 정권의 잘못을 반성하는 기관장 중에 실질적인 잘못이 없는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이 있다는 것도, 여러 번 되풀이되는 사과가 공허함을 남기는 이유다. 근원적인 해결책이 미흡한 사과가 도리어 적폐세력에게 다시 꿈틀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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