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달 24일 <섹션TV 연예통신> 방송 장면

지나달 24일 <섹션TV 연예통신> 방송 장면 ⓒ MBC

 
"매년 연예매체에서 1월 1일에 열애설을 보도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지난달 24일 연말 특집으로 방영된 MBC <섹션TV 연예통신>(이하 <섹션TV>). 진행자 이상민은 한 해를 정리하던 와중에 1월의 이슈로 열애설을 소개하며 위와 같이 물었다. 패널로 출연한 한 현직 연예부 기자는 이런 답을 내놨다.
 
"찾아보니까 2009년 아이비가 한 작곡가와 열애 중이다, 이 얘기가 처음이었고요. 그 이후에 유해진씨-김혜수씨가 대단한 열애설로 꼽혔고요. 이 이후에 비-김태희, 이승기-윤아, 이정재-임세령 등 원체 D매체에서 많이 터트려왔기에 다들 궁금해 합니다. 올해는 또 누가 될까."
 
역시나, 평문우답이다. 계기를 물어봤는데, 엉뚱하게 기존 열애설을 나열한다. 그러면서 초기 스포츠서울닷컴의 열애설 파파라치 보도를 이어받아 D매체, 바로 그 <디스패치>의 뉴스 화면을 그대로 화면에 비춘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팟캐스트 진행자 최욱, 정영진, 영화평론가 최광희 등 패널들이 열애설과 관련한 즐거운 '수다'를 이어나갔다.
 
이 지상파 TV 연예 프로그램의 한 장면에서 감지되는 문제의식의 부재는, 꽤나 심각한 사안이다. 이제는, 2019년을 사는 대중들은 <디스패치>식 훔쳐보기 보도, 파파라치 보도를 '욕하면서 관전하는'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아주 쉽고 친근한 증명의 일환이랄까.
 
<디스패치> 열애설 보도가 일상된 시대  
 지나달 24일 <섹션TV 연예통신> 방송 장면

지나달 24일 <섹션TV 연예통신> 방송 장면 ⓒ MBC

  무려 근 10년이다. <디스패치>의 파파라치 보도는 일종의 충격이었다. 서구의 파파라치나 일본 주간지의 그 '옐로우' 보도 행태를 <디스패치>는 성공적으로 한국에 이식했다. 이 파파라치 보도만 놓고 보면, 한국사회는 명백히 악화가 양화를 아주 견고하게 구축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그 충격은 이제 '일상'이 됐다. '연예 매체'하면 <디스패치>를 거론하는 이도 상당수다. 단적인 예로, <디스패치>의 페이스북 페이지 팔로어 수는 무려 450만 명이다. <조선일보>가 56만, <중앙일보>가 53만, <한겨레>가 33만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물론 <인사이트>의 팔로어 수가 584만 이라는 사실은 함정이지만).
 
거기에 <섹션TV>와 같은 예능이, 종편의 토크 프로그램 등이 여과 없이 이러한 파파라치 보도를 대수롭지 않게 용인했다. 또 일례로, 여러 영화와 드라마 속 주인공의 직업으로 '연예부 기자'가 등장하고, 그 연예부 기자가 황색언론의 말단에서 일종의 성장을 거쳐 정의감 넘치는 언론인으로 거듭나는 서사도 여럿이었다. 그 서사에는 예능 프로그램처럼 휘발되는 소비와 달리, 최소한 옐로우 저널리즘에 대한 조소와 비판이 깔려 있긴 했다.
 
그렇게 <디스패치>의 열애설 보도는 '연예인'과 '열애'란 키워드에 반응하는 여전한 대중의 관심과 관련 연예인의 이름이 자연스레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등극하는 포털 환경, 그 열애설 보도와 검색어를 가지고 '어뷰징' 장사를 하는 대다수로 매체로 인해 '불패 신화'를 이어왔다.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디스패치>가 장장 6개월을 따라 붙었다는 '김연아 열애설'이 대표적이었다(관련 기사 : <김연아 6개월 스토킹, 디스패치 취재 옳았나>,  <신상털기, 과거캐기, 물어뜯기.. 요즘 기자들이 하는 '짓'>). 벌써 5년, 당시만 해도 <디스패치>의 파파라치식 보도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이때도, 지금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더 나빠졌다. 이에 대해 미디어연구가 김낙호는 그해 9월 <아이즈>에 기고한 글에서 아래와 같이 일갈하기도 했다.
 
"훔쳐보기 보도인데 팩트가 충실하면, 그냥 팩트가 충실한 훔쳐보기 보도일 뿐이다. 팩트 수집과 검증이 뛰어나다고 해서 있는 사생활 침해가 없어지지도, 없는 공익이 샘솟으며 사회적 함의를 지닌 심층보도가 되지도 않는다. 그저 해당 언론사와 그 위에 올라탄 포털서비스가 좀 더 흥하고, 그들이 가꾸어낸 뉴스 환경은 좀 더 민망해질 따름이다." - 김낙호 <아이즈> '디스패치의 '팩트'는 옳은가'
 

자, 그러거나 말거나 <디스패치>는 올해 1월 1일에도 '엑소' 카이와 '블랙핑크' 제니의 열애설을 묵묵히(?) 기사화했다. 민망한 뉴스환경은 올해도 변함이 없었다. 한데, 그 이튿날 지난 2일 오후 또 하나의 '경악'할만한 '황색' 기사가 세상에 나왔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허접하고 기사 같지도 않은 기사를 주요, 대다수 매체들이 모두 받아썼다는 사실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인증샷' 보도 
 
 <티브이데일리>가 홍상수-김민희 인증샷 보도를 한 2일, 수많은 매체들이 이를 기사화했다.

<티브이데일리>가 홍상수-김민희 인증샷 보도를 한 2일, 수많은 매체들이 이를 기사화했다. ⓒ 화면캡처


우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한 연예 매체 기자가 회사 근처 한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마침 줄을 서고 있는데, 그 앞에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 커플이 나타났다. 이 당황스러운 상황 앞에서, 이 기자는 고민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출현'이 과연 '기사' 거리인지, 아닌지, 이걸 기사로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쓴다면 사진을 찍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점심 식사를 기다리는 식당 대기줄에 선 이 기자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혹은 해야 했을까. 물론, 여기까진 분명한 '상상'이다.
 
하지만 2일 연예 매체 <티브이데일리>가 '단독포착'이란 이름하에 뉴스화한 <홍상수♥김민희, 애정 이상無..호칭은 "자기야"> 기사는 그러한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티브이데일리는 홍상수와 김민희가 2일 12시 20분께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한 식당을 찾는 모습을 포착했다. 백발의 홍상수는 두터운 코트에 목도리, 백팩을 메고 검은색 선글라스를 착용한 소탈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김민희 역시 화장기 없는 민낯에 비슷한 차림으로 홍상수 곁에 섰다. 점심시간이라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 찼지만 두 사람은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기 시간 15분을 나란히 기다렸다.
 
홍상수, 김민희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들을 알아보고 바라볼 때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식당을 찾은 여러 손님들이 단번에 두 사람을 알아볼 정도로 이들의 애정은 당당했다. 특히 김민희는 홍상수에게 "자기야"라는 호칭을 하는 등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기사 속 새로운 내용은 이게 전부다. 팩트만 골라 볼까?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가 논현동 한 식당을 찾아 점심 식사를 먹기 위해 대기했다'가 전부다. 여기에 홍상수 감독의 인상착의와 김민희의 화장기 없는 얼굴이란 '얼평'이 더해졌다. 이밖에 "당당했다", "다정한 모습" 등의 표현은 기자의 감상일 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홍 감독에 대한 김민희의 "자기야"라는 호칭 여부가 삽입됐을 뿐이다. "불편해 하지 않았다"는 표현 역시 주관이 개입됐다. 하다못해 두 사람이 무슨 메뉴를 먹었는지, 식사시간은 얼마나 됐는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도 기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기사 속 '인증샷'마저 식당 문 앞에 선 둘의 뒷모습이 전부다(맞다. 파파라치 보도의 기본은 이 '인증샷'이다). 도대체 이 기사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러면서 기사는 "한편 홍상수 감독은 아내와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이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두 사람의 만남을 정의하기 위해 애써 '불륜'이란 표현을 에둘러 묘사한 듯한 인상이다.
 
이 '팩트'마저 부실한 훔쳐보기 기사도 기사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이 짧고도 문제적인 기사는 정말 다양한 형태의 제목과 내용으로 급속하게 확대 재생산됐다. 2일부터 3일까지 말 그대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 <티브이데일리>의 해당 기사를 '베껴 쓰고', 각색한 기사들이었다. "자기야"를 강조한 제목부터 둘의 '불륜'과 '이혼소송'을 재조명한 기사까지(애초 그럴 만한 내용도 아니거니와 후속 취재는 당연히 없었다).
 
그리하여 포털 다음에는 이날 '홍상수 김민희'가 메인 상단 화제 검색어로 노출되기도 했다. 급기야 어느 스포츠연예 매체는 '종합'이란 말머리를 달고 기사를 내보내는 '후안무치'의 행태까지 보였다. 그 중 상당수는 두 사람의 만남에 요즘말로 '엄근진'(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다.
 
과연 이게 그럴 사안인가.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의 점심 식사 전 식당 앞 기다림이 기사화될 사안인가. 저 <티브이데일리>의 '인증샷'에 기자의 '우연히 연예인과 유명 감독 본 후기'와 '얼(굴)평'을 덧댄 기사를 주요 매체들까지 나서서 받아쓰고 베껴 쓸 일인가. 둘의 점심 식사에 어떤 국민의 알권리가 있는가. 어뷰징과 그로 인한 광고 수익에 눈이 멀지 않고서야, 그 내용에 어떤 기사 가치가 존재하는가. 진정 부끄럽지도 않은가.
 
우리는 너무 멀리 왔다
 
"<디스패치>는 이미 너무 멀리 나갔다. 문제는 <디스패치>의 경쟁상대가 해외 파파라치 사이트나 연예 사진 전문 사이트가 아닌, <조선일보>와도 <한겨례>와도 트래픽과 온라인 광고를 놓고 경쟁하는 '매체'라는 점이리라. 이미 이 <디스패치>를 여타 연예매체와 별다르지 않은 '특종에 강한 매체'로 인식하는 독자들도 상당수라는 점이다." - 김낙호 <아이즈> '디스패치의 '팩트'는 옳은가'
 
<디스패치>의 '김연아 스토킹' 기사에서 위와 같이 전망했던 것이 2014년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홍상수-김민희의 '인증샷' 기사를 목도하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의 만남과 이를 대하는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2017년 <밤의 해변에서 혼자> 언론시사 당시 구구절절 살펴본 바 있다(관련 기사 : 기자들 향한 홍상수의 당부, 이보다 적절할 순 없다). 이번 홍상수-김민희 보도와 연결 지을 수 있는 연예인의 사생활 폭로에 관해서는 지난 2015년 3월 <아이즈> 강명석 편집장의 글 역시 참고할 만하다.
 
"<디스패치>가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폭로하기 시작했을 때, 연예인의 사생활을 어디까지 보도해야하느냐는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월간지부터 데일리 매체까지 상당수의 매체들이 연예인의 사생활 공개를 넘어 그 사생활에 대해 평가하고 판단하도록 만든다. 누군가 마음먹으면 특정인의 잘못을 꼬집으며 '얘 좀 욕해주세요'라고 외칠 수 있다. 심지어 그것이 꽤 잘 통한다. 이제는 남이 직장에서 욕한 일도 누가 잘못했는지 따질 만큼." - '연예인 재판'이라는 엔터테인먼트'
 
우리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이미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버렸다. <디스패치>의 열애설 보도는 이제 한 해의 시작이고, 그 보도행태를 문제 삼는 일은 '구식'이 돼 버렸다. <섹션TV>의 논조에서 볼 수 있듯, 그런 흐름이 대세가 됐다. 그렇지 않고서야, <티브이데일리>의 이번 '인증샷' 보도는 가능할 수도, 용인될 수도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상당수 매체들은 칼럼도, 스트레이트도 아닌 기이한 영역에서 연예인의 사생활을 평가하기 이르렀다. 작년 9월 가수 구하라가 연루된 폭행사건 직후 이어진 보도행태가 딱 그랬다. 어제도 오늘도 계속되는 어뷰징과 베껴쓰기, 선정성에 얼룩진 보도, 그로 인한 '수익' 내기와 같은 지저분한 '먹고사니즘'은 내일도 이어질 것이다. <디스패치>의 열애설 보도를 용인했던, 혹은 '기레기'란 용어가 창궐하기 전 그 시절로 되돌아 갈 수는 없는 일이이기에.
 
다만,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비록 나이브해 보일지라도) 다시 원칙과 윤리를 되새기는 일이리라.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인권보도 준칙'은 계속 업데이트되는 중이다. 그리고, 지난 2014년 '김연아 스토킹' 보도 당시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가 페이스북을 통해 <디스패치>에 전한 충고 또한 귀한 고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금도 '선정적'인 기사들을 작성하고 출고 중인 연예부 기자들의 귀에는 공염불로 들리겠지만.
 
"<디스패치>의 폭로 타이밍을 칭송하는 분들은 많은데, 보도 자체를 문제삼는 분들은 거의 없군요. 이제 이런 식의 보도는 그냥 (사회상규상? 영국처럼?) 용인하기로 한 건가요? 저는 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매우 비판적입니다.
 
타이밍도 그렇게 칭찬받을 만한 건지 잘 모르겠네요. 어차피 소치 전에 터뜨렸으면 (국민적 비난으로) 언론사 문 닫았을지도 몰라요. 윤리적 판단이 아니라 지극히 전략적인 판단이었을 듯합니다.
 
유명인의 사생활 보호 범위는 일반인보다는 좁게 인정될 수 있겠지만, 여전히 보호받아야할 영역은 있는 것이죠. 지극히 사적인 연애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정치인이나 장관 같이 공적 업무를 하는 공인에게도 보호되어야 할 사생활이겠지요.
 
공인의 사생활은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장관의 재산현황은 사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공적 이유에서 공개되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연예인의 사적 연애사가 공개되는 것에 어떤 공적으로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알 권리(right to know) 운운하시는 분들도 있던데, 천만에요. 알 권리는 국민이 정치사회적 현실에 관한 의사표현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남의 사생활을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권리가 아니고요."
홍상수 김민희 디스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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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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