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정난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김정난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정준

 
한창 종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JTBC 금토드라마 < SKY캐슬 >.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던 '사교육'을 주제로 한 참신함에 시청률 역시 15.8%(14회 기준)라는 '대박'을 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회 시청률은 고작 1.7%에 그쳤기 때문. 하지만 그런 가운데 시청자들의 눈에 들어온 이가 있으니 바로 충격적인 자살 사건으로 극 초반부에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 이명주 역의 배우 김정난이다.

젊은 세대들에겐 드라마 출연자로 더 익숙한 배우 김정난은 본디 많은 무대에 서 온 연극 배우다. 그는 오는 27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되는 연극 <진실X거짓>의 '알리스' 역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진실>과 <거짓> 두 편으로 나뉜 연작인 <진실X거짓>은 잉꼬부부 두 커플이 서로 몰래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알리스', '미셸', '폴', '로렌' 네 명의 남녀를 통해 사람의 내면을 '콕콕' 찔러대는 작품이다.

지난해 12월 6일 오후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거짓> 공연을 앞둔 김정난을 만나 작품에 관해, 그의 연기에 관해 상세히 들어봤다.
 
 배우 김정난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김정난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정준

  
- 반갑습니다. <진실X거짓> 재밌게 하고 있나요.
"더블 캐스트고 <진실>과 <거짓> 두 작품으로 나뉘었으니 한 달째인데 이제 겨우 여덟 번 정도밖에 못 했어요. <거짓>도 거의 일주일 만에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할 때마다 떨렸어요. 매번 첫 공연하는 느낌이랄까. 계속 긴장 속에 끝까지 해야할 것 같아요. 제 명에 못 살겠어(웃음)."

- 오랜만의 연극 공연인데 소감이 어떤가요?
"정극은 7년 만이고, 작년에 융합 공연을 하나 했어요. 그때 이틀짜리 공연인데 실수를 좀 크게 해서 다시 무대에 서는 게 살짝 두렵기도 했죠. 우리 연극(<진실X거짓>)은 실수하면 실수하는 티가 너무 나잖아요. 말이 주는 즐거움이 많은 작품이니까요. 단추를 한 번 잘못 끼면 다 어그러지는 것처럼 상대에게 민폐를 끼칠 수 있으니 잘해야겠단 생각 때문에 더 두려웠나봐요. <진실>은 거의 걱정이 안돼요. '알리스'는 대사가 적거든요(웃음). <거짓>은 <진실>에 비하면 세 배에요. <거짓> 하는 날은 전날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해요. 밤에 침대에 누워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요. 나 혼자 대사를 중얼거리는 거죠."

- 그런 부담감을 안으면서도 연극 무대에 올랐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연극은 연기의 기초니까 무대를 놓을 순 없죠. 매체 연기에 익숙해지다보면 다른 것에 의존하게 된달까.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고요. 무대는 오롯이 배우 혼자서 보여주는 거잖아요. 물론 스태프들을 비롯해 도와주는 분들이 계시지만, 그래도 배우가 감당하는 거잖아요.

매체 연기는 연출이나 여러가지가 서로 도와서 최고의 시너지를 내는 거니깐 장르가 다르다고 봐야죠. 그래서 항상 연극을 할 땐 초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요. '맞아. 내가 이런 단점이 있었지?' 이런 걸 깨닫죠. 매체 연기를 하면 절 도와주는 게 많으니까 그런 걸 좀 잊거나 게을러질 수 있거든요. 연극은 그런 게 용납이 안 돼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감당해야하고, 관객들과 소통하고 부딪히는 것도 해내야하죠.

무척 가슴떨리고 힘들고 공포스럽기도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그걸 이겨낼 때의 카타르시스가 있어요. '내가 이걸 해내서 관객에게 즐거움을 줬구나.' 내 연기를 보고 즐거워하는 관객을 볼 때 나오는 호르몬이 있어요. 연기라는 게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그런 게 예술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나 자신을 위한 연기적인 트레이닝으로서 무대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눈 앞에서 주고받는 호흡들을 느껴보는 게 즐거운 것 같아요."

- 연극 <진실X거짓>은 두 커플이 서로의 불륜 상대라는 뜨거운(?) 설정에 반전까지 담겼죠. 특히나 중장년층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인상적인 관객이 있었나요?
"연세가 있는 분들은 객석에서 열띤 토론을 해요. 저희 공연 전 안내 멘트에 토론은 밖에서 해주십사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괜히 있는 게 아니에요. 극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잖아요. 그러다보니 그걸 가지고 서로 막 토론하며 공연을 보시고, 반전이 밝혀지며 충격 받고. 그런 반응이 무대 위의 저희한테도 다 와요. 그걸 여과없이 보내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샤이(shy)하게 흐름을 따라가시는 분들도 계시죠.

만약 어떤 관객이 공연 중에 한 번 '확' 터지면 다른 분들도 그때부터 다 따라가요(웃음). 두 달 동안 연습하다 보면 우리에 대해 객관성을 잃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내가 이 대사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싶은 것도 있어요. 무대에서 관객과 만나면서 그런 것들이 찾아져요. 내가 생각치도 않은 장면에서 관객이 '어머!', '호호' 이런 게 있으면 '이 작가가 이 대사를 그래서 썼구나' 하고 깨닫는 거죠. 어떤 공연은 공연 기간이 다 끝날 때 쯤 그런 깨달음이 오는 경우도 있죠. (김)수현 오빠 말에 의하면 다음 작품하다가 불현듯 지난 공연의 깨달음이 생각날 때가 있는데 '이불킥'한대요(웃음)."

- <진실>과 <거짓>이 아무래도 서로 다른 작품이지만 하나의 작품처럼 이어져 있어서 많이 헷갈렸을 것 같아요.
"저희도 헷갈렸죠. <진실>과 <거짓>이 별도의 대본인데 같이 묶어서 공연을 하니까 연결짓지 않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저희끼리 서로 이걸 보면서 이게 말이 되네 안 되네 이런 이야기를 막 했어요. 처음엔 대본을 막 앞으로 넘기고 뒤로 넘기고 난리도 아니었죠. 그러다가 작가인 '플로리앙 젤레르(Florian Zeller)'(*1979년생 젊은 작가로 몰리에르 상, 앵테랄리에 상 등을 휩쓸며 주목받고 있다. 2016년 박근형, 윤소정 주연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국내에도 알려졌다)가 <진실>과 <거짓>을 발표한 시간이 4년 정도 차이가 나거든요. 저희도 섞어찌개로 하면 헷갈리겠다 싶어서 별개의 대본으로 분리하기로 했죠."

- 배우 김정난이 본 '알리스'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합니다.
"'알리스'는 무척 솔직한 여자잖아요. 대사에도 나와요. '난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거짓말하는 거 못 참는다'고. '누가 거짓말하면 날 공격적으로 만든다'고. 그게 그 여자의 캐릭터죠. 말하지 않고 담아두면 너무 괴로운 거예요. (진실)을 말하긴 해야겠는데 이걸 하자니 정말 어떤 결과를 낳을지 불안하기도 하고, 그런데 말 안하면 내가 괴롭고. 그런 도덕적인 딜레마에서 괴로워하는 거죠. 남편의 친구랑 바람이 난 것과 엉켜있으니 거기서 더 괴롭죠. 일반적으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그런데 작가는 알리스를 통해서, 거짓을 말해서 고통받을 수도 있고 오히려 진정되기도 하는, 인간의 여러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사실 진실과 거짓은 다른 게 아니라 같은 거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내가 만약 그 당시에는 진실을 말했어도 내 마음이 바뀌면 지금은 거짓이 되는 거잖아요.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어요. 상대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 지혜롭게 쓰는 하나의 옵션 같은 거죠."
 
 연극 <진실X거짓> 공연 장면.

연극 <진실X거짓> 공연 장면.ⓒ 서정준

  
- 불편한 진실, 하얀 거짓이 계속 충돌하잖아요. 알리스는 그런데도 진실해야한다는 캐릭터인데 김정난의 가치관은 어느 쪽에 가깝나요.
"'알리스'는 내가 편하기 위해서 진실을 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상대를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한 옵션으로 쓰는 것 같아요. 내가 좀 힘들어도 상대를 편하게 할 수 있다면 말이에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끝을 내야할 때 때론 마음에 없는 말도 하면서 헤어지잖아요. 그게 과연 나쁠까요? 만약 헤어지는 솔직한 이유를 털어놓는다면, 상대가 '진실을 말해줘서 고마워' 이럴까요(웃음)? 어떻게 직설적으로 대못을 박지 이럴 수도 있죠."

- 극 중에서 알리스는 미셸과 불륜을 저지르지만, 그러면서도 원래 남편인 폴이 더 좋다고 하잖아요. 그런데서 오는 사람의 복잡한 심리가 많이 재밌어요.
"남편을 사랑하는 건 베이스로 깔려있는 건데, 인간도 동물이잖아요.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눈이 갈 수도 있죠. 그걸 무조건 '아니야! 사람이 어떻게 그래'라고 하기보단 이성으로 제어하는 게 사람인 거죠. 프랑스와 우리의 문화적인 차이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폴한테 그런 말도 할 수 있는 거고 폴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자기도 이야기할 수 있던 거 아닐까 싶기도 하죠. 그런데 마냥 '쿨'한 게 아니라 서로 질투하고 집요하고, 한국만 그런 게 아니구나(웃음) 그렇기도 해요. 둘다 사랑하죠. 이것도 사랑 아닐까요."

- <진실X거짓>은 프랑스 희곡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풍미가 느껴집니다. 배우 김정난의 취향은 어느 쪽인가요?
"전 원래 고전을 좋아해요. 그래서 예전에도 고전을 더 많이 했죠. '체호프'를 비교적 많이했죠. '체호프'든 '셰익스피어'든 '톨스토이'든 고전에서 주는 깊이를 무척 좋아해요. 나이가 들어서 읽으니까 와 닿는게 달라요. 물론 고전은 고전대로 매력이 있고, <진실X거짓>이나 <아트> 같은 현대 번역극도 좋죠. 이번 <진실X거짓> 보러 온 지인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해요. (연극을) 20년 만에 봤다는 사람들도 있고, 대학생 때 보고 이번에 봤는데 너무 놀라고 재밌었다는 사람들이 꽤 있더라고요. 연극하면 과거의 서사적인 것만 생각했던 거죠. 그럼 저는 '요즘 현대극은 그냥 드라마처럼 하는 거야. 생활극 같아'라고 해요. 다들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런 모습들을 보면 연극이 이렇게 실생활에 가깝게 다가왔구나 싶어요. 친근하면서 공감도 가고, 웃음과 해학이 있는. 그런 작품인 것 같아요."

- 최근에 JTBC 드라마 < SKY캐슬 >로 극찬 받았다보니 보러 오는 관객들의 기대감이 무척 크겠어요.
"그거 보시고 오는 분들이 많아요(웃음). 대본 받았을 때 고민은 많았지만, 캐릭터는 너무 맘에 들었어요. 기다렸던 역할이죠. 그동안 가벼운 걸 많이 해왔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사실 오래 못한 거예요. 원래 희극적인 역할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좀 몰리거든요. 저는 원래부터 겹치는 캐릭터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어릴 땐 그게 가능했는데 중년 여성 캐릭터는 몇 개 없는 거예요. 안 하면 놀아야 되고. 덕분에 이젠 좀 쉬어야겠다 싶어서 KBS 2TV <완벽한 아내> 이후 한동안 놀았어요.

<진실X거짓>도 너무 하고 싶었던 건데 < SKY캐슬 > 촬영까지 과연 될까 엄청 고민했죠. 그런데 도저히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일단 해보자 했죠. 2회에서 죽으니까!(웃음) 공연 전에 촬영을 빨리 끝내고 공연에 올인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세트가 11월 초에나 들어섰어요. 덕분에 세트 촬영이 공연 직전에 몰려있었죠. 제일 긴장되는 리허설 사이사이에 겨우겨우 이틀을 빼서 해냈죠. 다행히 내가 원했던 그림들이 잘 나와줬어요. 또 가끔 그런 경우가 있어요. 배우가 이렇게 연기했는데 최종 편집본이 배우가 한만큼 안 나올 때 정말 속상하거든요. 카메라가 배우의 시선이나 연기를 잘 잡아주지 못하면 내가 뭘 해도 소용이 없잖아요.

그런데 감독님이 눈빛이나 동작, 손끝 발끝까지 디테일하게 화면에 너무 잘 잡아주셨죠. 연기는 정말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온몸으로 하는 건데 뒷모습, 손끝, 속눈썹 떨림 등 작은 걸 너무 잘 잡아내서 섬세한 감정을 잘 보여주셔서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찍을 땐 고생했지만, 너무 고맙고 좋았죠. 자살 장면은 충격적이고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장면인데 미학적으로 멋있게 만들어주셔서 무척 만족스러워요. 분량이 약간 남았는데 앞에 찍은 게 누가 되지 않게 해야겠다 싶죠(웃음)."

- < SKY캐슬 >도 <진실X거짓>도 중년 여배우들의 입지나 캐릭터를 재조명한 작품으로 볼 수 있겠네요.
"이런 작품이 더 많이 생기면 좋죠. 저희 나이대 배우들 참 좋은 배우 많아요. 특히 여배우들. 그들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을 거예요. 원하는 캐릭터가 나에게 맞는 시기에 딱 들어오지도 않잖아요. 영화만 봐도 할리우드에선 60세가 넘어도 총 잡이를 할 수 있고 그런 게 있잖아요.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배역들이 정형화됐는데 그런게 좀 더 깨지고 다양한 소재가 나오면 좋겠어요. 그럼 실력있는 여배우들이 얼마나 멋지게 잘 해내겠어요."
 
 배우 김정난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김정난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정준

  
- 쉬는 날엔 뭘하며 지내시나요. 방탄소년단 팬으로 유명하시던데(웃음).
"자기 전 한두 시간 정도는 꼭 ('덕질'을) 하죠(웃음). 리액션이나 관련 기사 찾아보고, 가끔 V앱도 보면서(웃음). 우리나라 예술하는 사람들 너무 대단한 거 아닌가 싶어요. 왜 일제시대 때 문화말살정책을 폈는지 알겠어요. 너무 대단한 사람들이 많으니 이런 영향력이 무서웠을 것 같아요. 모든 분야마다 너무 대단한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걸 보면 너무 자극이 돼요. 자부심도 생기고요.

AMA(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보면서도 너무 경이로운 거예요(웃음). 애들이 얼마나 열심히 했을까. 노력과 기획력도 느꼈고요. 우리나라 문화를 그렇게 촌스럽지 않게 세련되게 알리니까 전 세계에서 보잖아요.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야 돼요. 사실은 다 상관없고 그냥 음악이 좋아요. 칡이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듯(웃음) 걔네들 음악이 정말 대단해요. 개인적으론 피아노도 취미로 치고 있어요. 그러면서 거기서 아이디어도 얻고요. 이런 일들이 내 삶의 즐거움이기도 하고, 영감도 많이 받아요. 예술가는 예술가에게 영감을 받는 것 같아요."

- <진실X거짓>을 이래서 봐야 된다? 어떤 점을 꼽을 수 있을까요.
"막 '제발 봐달라'고 강요하고 싶진 않아요. 제목만 봐도 호기심이 있잖아요.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을 어떻게 풀어낼까 하는 호기심에서 한 번 보고 싶은 맘이 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작품도 '필'이 꽂혀야 볼 수 있죠. < SKY캐슬 >의 이명주가 한 눈에 반했던 캐릭터라면, <진실X거짓>은 하면 할수록 더 가까이 두고 싶은 작품이었으니 관객분들도 제가 느낀 것처럼 비슷하게 느끼시지 않을까 싶어요. 반전을 기대하란 말은 정보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것조차 기대 없이. 생각없이 가서 봐야 재밌으니까. 아무런 예상도 불필요한 작품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정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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