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드 박스> 포스터.

영화 <버드 박스> 포스터. ⓒ 넷플릭스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절대, 절대 눈 가리개를 벗지 마, 알아들었니?"

멀레리(산드라 블록 분)는 어린 딸과 아들에게 이렇게 주지시킨 후 먼 여행을 떠난다. 눈 가리개를 하고 바깥으로 나와 숨겨놓은 보트를 꺼내 강을 항해한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눈을 떠도 자살하지 않는, 안전한 곳이다.

영화 <버드 박스>의 설정은 다음과 같다. 5년 전, 전 세계에 재앙이 닥친다. 미지의 '악령'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살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알 수 없는 재앙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창문을 모두 가린 채 집 안에만 있는 것(악령은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또는 눈을 가린 채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5년이 지났지만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세계는 종말로 치닫고 있다.

한편 멀레리가 악령이 주변에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항상 동행하는 세 마리의 '새'와 새를 담아두는 '상자'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역이다. 새들은 '악령'이 주변에 있을 때 불안하고 분주하게 지저귄다. 이는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아포칼립스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게 새와 상자다.

산드라 블록의 영화

영화 <버드 박스>는 보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차라리 영화를 보기 전에 조금이나마 해석을 엿보는 게 좋을 수도 있다. 긴장감 어린 설정과 예측할 수 있는 결말보다 과정에서의 메시지와 그에 대응하는 현실을 들여다보는 데 집중해보자. 

<문라이트> 이후 주연급으로 발돋움한 트래반트 로즈(톰 역)와 이제는 그 이름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 되어버린 존 말코비치(더글라스 역)가 함께 열연한다.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를 석권한 <인 어 베럴 월드> 등으로 유명한 덴마크 출신 감독 수잔 비에르의 최신작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는 산드라 블록의 영화이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할리우드 스타 중 하나인 산드라 블록은, 2000년대 들어 진정한 전성기를 맞이했다. <크래쉬> <블라인드 사이드> <그래비티>라는 인생 영화를 만났고, '날고 기는' 여배우 8명을 모아놓은 영화 <오션스8>에서는 메인 롤을 맡기도 했다.

넷플릭스의 2018년 12월 최신작 <버드 박스>는 설정과 배경에서 <눈 먼 자들의 도시> <콰이어트 플레이스> <해프닝> 등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그래비티> <칠드런 오브 맨>과의 접점도 있어 보인다. 

그 덕분일까. 지난해 12월 28일 넷플릭스가 트위터를 통해 <버드 박스> 1주일 성적표를 발표했는데, 자그마치 4500만 명이 시청했다고 한다. 크레디트까지 포함 전체 70% 이상을 관람한 사람만을 센 것이고, 여러 사람이 함께 봤을 경우도 한 사람으로 체크한 숫자다. 단순하게 비교해서 북미 평균 극장 티켓가를 약 9달러로 상정했을 때 4500만 명이 관람한다면 약 4억 달러(한화 약 4500억 원)를 벌어들인 것이다.
 
 생각보다 재미있지는 않지만, 특유의 분위기가 꽤 오랫동안 머문다. 영화 <버드 박스>의 한 장면.

생각보다 재미있지는 않지만, 특유의 분위기가 꽤 오랫동안 머문다. 영화 <버드 박스>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앞을 볼 수 없는 공포, 그리고 보지 못하는 삶

영화에서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은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를 선사한다. 볼 수 없기에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다는 내적 갈등까지 더해진다. <버드 박스>는 '절대 보면 안 된다'는 설정을 통해, 단순하게 보이지 않는 것에서만 오는 공포만을 직시하지 않고 보고 싶다는 내적 갈등도 함께 보여준다. 극한의 상황에서 눈 가리개를 벗고 싶어하는 아이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보면 안 돼"라는 평범한 문구가 주는 작용과 반작용은 영화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래서 영화는 공포보다 바로 내적 갈등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SF형 공포와 서스펜스를 동반한 스릴러가 만난 것이다. 눈을 가리지 않고 세상을 본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자살을 선택하는 상황에서, 눈을 가리고 아무것도 보지 않고 사는 삶에 과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싸이코'로 불리는 사람들이 나타나 "아름다운 것을 봐야 진정한 삶"이라고 주장하며 억지로 보게 만드는 장면은 와닿지는 않지만 일면 이해가 된다. 

멀레리는 아들, 딸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보이', '걸'로 부른다. 또한 늘 아이들에게 '해선 안 되는 것'만 일러줄 뿐, 톰이 아름다웠던 자연의 풍경에 대해 얘기해주는 것조차 불필요한 일로 받아들인다. '세상에 종말이 찾아왔는데 희망을 심어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완전하지 않은 스릴러, 그럼에도 존재하는 미덕
 
 넷플릭스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영화 <버드 박스>, 설정의 힘일까 산드라 블록의 힘일까. 영화 <버드 박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영화 <버드 박스>, 설정의 힘일까 산드라 블록의 힘일까. 영화 <버드 박스>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악령을 감지하는 역할을 하는 새들은 멀레리와 아이들, 그리고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겹쳐진다. '버드 박스'가 제목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새들은 영화 내외적으로 아주 중요한 존재로 그려진다. 

영화에서 새들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아주 작은 상자 안에 갇혀서 이동한다. 아무것도 보면 안 되는 세상에서 기약없는 위험한 여행을 떠나는 세 명의 인간과 똑같은 상황이다. 

전반적으로 치밀하지 못하고 루즈한 감도 있는 스릴러다. 5년 전 사건이 처음 시작되는 시점과 현재의 위험한 여정 사이의 연결이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나 흥미 돋는 설정과 배경으로 초중반의 긴장감은 후반부의 감동 어린 결말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확고한 미덕이 존재한다. 산드라 블록과 아이들의 연기는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고 종말에 닥친 상황에도 미소를 불러일으킨다. 주인공들이 느끼는 공포, 새 상자로 대변되는 상징들은 대체로 자연스러우며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 또한 그동안 나왔던 다른 종말 스릴러 영화에 비해 색다르고 명확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버드 박스 산드라 블록 공포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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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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