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약속 포스터

▲ 새벽의 약속포스터ⓒ 일레븐엔터테인먼트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할 때는 그 행동을 하게끔 하는 의지가 먼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의지 뒤엔 언제나 의지가 서게끔 하는 동력이 있다. 동력은 대개 감춰져 있게 마련이지만, 그로부터 비롯되는 결과물이 클 때 조금은 선명하게 드러나곤 한다.

영화 <새벽의 약속>은 어느 위대함을 빚은 동력을 다뤘다. 문학의 역사에 손꼽히는 작가 로맹 가리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그가 남긴 작품들 뒤에 있던 동력이 무엇이었는지를 말한다. 소설을 통해 로맹 가리가 고백한 제 뒤의 동력이란 어머니이며, 어머니가 제게 준 사랑이며, 다른 누구도 감히 받지 못했을 거대한 믿음이다. 요컨대 <새벽의 약속>엔 가장 보통의 것으로부터 특별함을 뽑아낼 줄 아는 거장의 시선이 그대로 담겼다.

로맹 가리는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에 둥지를 튼 유대인이다. 어린 나이에 홀어머니를 따라 프랑스로 옮겨와 평생을 프랑스인으로 살았다. 출신으로 인한 차별이 적지 않았으나 끝내 그 모두를 극복하고 프랑스의 자랑이 됐다. 그리고 그 뒤엔 어머니가 있었다.

로맹 가리의 기억 속 어머니는 그를 위대한 인물로 키우는데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아들을 프랑스 최고의 영예인 레지옹 드뇌르(Legion d'honneur) 훈장을 받을 영웅으로 키우는 데 일생을 바쳤다. 성공으로 가는 데 필요한 모든 걸 가르치려 했고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홀로 어린 아들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 맨 주먹으로 집안을 일으킨 그녀에게 아들은 생의 전부였으며 존재의 이유였고 목적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동력이 되는 관계
 
새벽의 약속 중년과 노년을 넘나들며 깊이 있는 연기를 펼친 샤를로뜨 갱스부르. 2009년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녀는 어느덧 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수준의 연기자로 자리잡았다.

▲ 새벽의 약속중년과 노년을 넘나들며 깊이 있는 연기를 펼친 샤를로뜨 갱스부르. 2009년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녀는 어느덧 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수준의 연기자로 자리잡았다.ⓒ 일레븐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열성적인 어머니 아래서 자란 로맹 가리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어머니의 과도한 애정과 관심을 몹시 부담스러워 한 그가 마침내 그녀가 제게 남긴 유산을 이해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다채로운 에피소드 가운데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타인의 존재를 제 삶의 목적으로 삼는 관계라는 게 대개 그러하듯, 영화는 애정과 집착의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는 모성을 그린다. 어머니의 과도한 사랑이 아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 나머지 아들은 자주 숨고 도망치고 거짓을 말하길 선택한다. 꿈과 목표를 대신 정하는 건 물론이고 입을 것과 먹을 것, 배울 것과 만날 것까지를 일일이 간섭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이 시대 헬리콥터맘을 저리가라 할 정도니 당연하다 하겠다.

하지만 로맹 가리는 자신이 이룬 성공이 오롯이 어머니가 심은 확신과 애정에서 비롯됐다고 고백한다. 어머니의 존재가 제게 동력이 되어 마침내 보통의 존재들은 견뎌내지 못할 압력을 이기고 성공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비록 둘 중 어느 하나가 사라지자 남은 하나의 삶 전체가 무너지고 말더라도 말이다. 예술가에게 걸작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로맹 가리에게 어머니의 과한 사랑도 충분히 감사한 것이었을 테다.

프랑스는 자국이 이룩한 문화적 업적에 상당한 자긍심을 내보이는 나라다. 분야를 막론하고 자국이 배출한 유명인들의 전기 영화가 끊이지 않고 제작되는데 <새벽의 약속>도 그런 흐름 가운데 나온 작품이다.

이렇게 환상적인 캐스팅이 있을 수 있다니!
 
새벽의 약속 피에르 니네이와 샤를로뜨 갱스부르 모두에게 <새벽의 약속>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임에 분명하다.

▲ 새벽의 약속피에르 니네이와 샤를로뜨 갱스부르 모두에게 <새벽의 약속>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임에 분명하다.ⓒ 일레븐엔터테인먼트

  
이 영화의 장점은 최적의 캐스팅이다. 로맹 가리와 그의 어머니를 연기하는데 온 세상의 배우를 다 놓고 골라도 피에르 니네이와 샤를로뜨 갱스부르 이상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피에르 니네이는 2014년 작 <이브 생 로랑>에서 전설적인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역을 맡아 이름을 널리 알렸다. 같은 해 제작된 <완벽한 거짓말>에선 비밀에 싸인 천재작가를 연기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지금 프랑스에서 로맹 가리를 연기하는데 그보다 나은 배우를 찾을 수 없는 이유다.

샤를로뜨 갱스부르에게 <새벽의 약속>은 더욱 특별하다. 가수이자 영화인이기도 한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와 유명 배우 제인 버킨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로맹 가리와 그 주변인의 삶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배우다. 영화 속 로맹 가리와 그 어머니가 그랬듯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조부모도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유대인이다.

아버지 세르쥬의 본명은 뤼시앵 긴스버그(Lucien Ginsburg)인데 러시아 풍의 이름 세르게이와 평소 좋아하던 영국 화가 토마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의 성을 가져와 세르쥬 갱스부르란 가명으로 활동했다. 아버지와 같은 시대 비슷한 배경을 갖고 활동한 또 다른 예술가의 삶을 쫓는 이 영화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해보는 건 영화를 보다 깊이 즐기는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새벽의 약속 로맹 가리는 생택쥐페리, 리처드 바크와 함께 비행기 조종사 출신의 작가로 유명하기도 하다.

▲ 새벽의 약속로맹 가리는 생택쥐페리, 리처드 바크와 함께 비행기 조종사 출신의 작가로 유명하기도 하다.ⓒ 일레븐엔터테인먼트

  
로맹 가리는 프랑스 공군 장교로 2차 대전에서 활약했고 전후 외교관으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여러 필명으로 꾸준히 소설을 발표했고 두 차례나 콩쿠르상을 수상한 전무후무한 업적을 쌓았다. 특히 에밀 아자르란 이름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은 현대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그는 흔치 않은 위대함을 빚은 위대한 예술가다.

<새벽의 약속>은 이 위대함을 빚은 의지와 동력에 대한 이야기다. 서로가 서로의 동력이 되는 관계가 어떤 위대함을 빚어내는 순간이,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며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무너지지 않게끔 하는 모습이 뜨거운 감동을 자아내는 영화다. 올 겨울 어머니와 함께 하는 데이트라면 이 영화가 멋진 선택이 되어 주리라 확신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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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진행 / 인스타 @blly_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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