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과 나란히 선 배우 정우성.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과 나란히 선 배우 정우성. ⓒ 민족문제연구소

 
"지금 대한민국에는 친일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상실된 민족정신을 되찾게 하기 위한 소중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19일 민족문제연구소는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앞선 17일 배우 정우성이 민족문제연구소를 방문했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배우 정우성씨가 17일 민족문제연구소를 방문해 임헌영 소장을 면담하고 박물관을 관람했다"며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과 식민지역사박물관 앞에 나란히 선 정우성의 사진과 함께 위와 같은 문구가 적힌 방명록 내용 등을 소개했다.
 
정우성은 그간 여러 인터뷰를 통해 '친일' 청산을 제대로 못한 한국 현대사가 결국 현재 뒤틀린 한국사회의 근원이자 뿌리임을 밝혀왔고, 이를 감안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보로 보인다. 그리고, 시사주간지 <시사IN>은 지난 28일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2019년 신년호인 590호의 표지를 공개했다. 
 
 시사주간지 <시사IN>이 공개한 2019년 신년호 표지.

시사주간지 <시사IN>이 공개한 2019년 신년호 표지. ⓒ 시사인

 
"자선이 아니라 책임이다."
 
이 신년호 표지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배우 정우성. <시사IN>은 직전호에서 '올해의 인물'로 '미투'를 촉발시킨 서지현 검사를 인터뷰하고 정우성과 똑같은 각도의 사진을 내세워 인물을 부각시킨 바 있다. 이를 감안하면, 정우성이 2018년 한 해 보여준 활약(?)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라면 정우성이 본업을 내팽개치고 여타 활동에만 주력한다고 오인할 수 있을 터. 영화투자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7일 정우성과 김향기가 주연을 맡은 영화 <증인>의 내년 2월 개봉 소식을 알렸다.
 
<완득이> 이한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정우성이 변호사를 연기하고 극 중 자폐 장애를 지닌 증인(김향기 분)을 변호하는 감동 드라마로 알려져 있다. 정우성의 첫 번째 '변호인' 연기라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밖에 최근 전도연과 정우성이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역시 내년 개봉을 예정이다. 배우 정우성의 '열일'은 이렇게 전방위적이라 할 수 있다. '절친' 이정재와 잡지 화보도 찍고, 상업 광고도 촬영했다. 그럼에도, 2018년 한 해 정우성이 더 주목받은 것은 '배우'로서나 '수익'과 관련된 활동뿐만이 아니었다는 점 때문이다. 
 
연말까지 이어진 정우성의 활약
 
 유엔난민기구(UNHCR)의 특사인 앤젤리나 졸리가 3일 서울시 중구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서울사무소에서 UNHCR 친선대사인 배우 정우성을 만나 세계 난민현황과 올해 5월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우리 정부의 처우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8.11.4

유엔난민기구(UNHCR)의 특사인 앤젤리나 졸리가 3일 서울시 중구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서울사무소에서 UNHCR 친선대사인 배우 정우성을 만나 세계 난민현황과 올해 5월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우리 정부의 처우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8.11.4 ⓒ 유엔난민기구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 올해 '난민' 문제에 깊숙이 개입했던 정우성은 연말에도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관련 활동을 이어갔다. 그 중 인상적인 몇 장면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지난 19일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라이브>에 출연한 정우성은 유튜브, 페이스북 라이브 등을 통해 공개된 방송에서 난민 문제에 대한 소신, 과거 파업 중이던 KBS 노조원들에게 보낸 인사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방송에서 정우성은 "세월호가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라며 "가장 중요한 허리 세대인 40대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했고, (세월호)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게 했다"라고 전했다. 그러한 미안함과 자기반성이야말로 정우성이 세월호 다큐 <그날, 바다>의 내레이션을 맡게 된 원동력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물론 정우성이 이와 같은 반성과 소신을 밝힌 것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7월 제12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열린 '정우성 특별전' 기자회견 당시 정우성은 "어느 순간부터 사회적 목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결국) 세월호와 연관돼 있지 않나 싶다"며 "기성세대로서 미안한 마음이 가장 컸다. 제 또래 세대들은 어린 친구들에 대한 감정적 부채가 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은 정우성이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로부터 친선대사 제안을 받고 수락했던 해이기도 하다. 그런 정우성이 '세월호 세대'라 할 만한 중학생들과 만나 진행한 인터뷰도 인상적이었다. <허프포스트코리아>가 지난 20일 공개한 인터뷰에서 정우성은 이란 친구의 난민 인정을 도운 서울 아주중 학생들 세 명과 직접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정우성이 그 '아이들'에게 직접 난민과 인권, 평등을 거론하는 장면은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난민은 똑같은 우리 옆의 친구, 사람이라는 거잖아. 난민을 얘기할 때 인권이 들어가지. 인권은 종교와 민족을 초월한 모든 사람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 그 평등을 이야기할 때 종교, 민족, 국가의 차별성을 두거나, 그 평등이라는 것에 차등점을 둬서는 안 되지."
 

'세월호 세대' 만난 정우성의 2018년 연말이 특별한 이유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특별전에 선정된 배우 정우성이 13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고려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특별전에 선정된 배우 정우성이 13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고려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자선이 아니라 책임"이란 말로 요약되는 정우성의 활약은 어쩌면 '연예인' 혹은 '공인'이란 틀 안에 갇혀왔던 자신에게 향했던 대중들의 시선으로부터의 탈피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특히나 '난민 문제'를 둘러싸고 대중의 비난은 물론 보수세력의 댓글 테러에 시달려야 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간 한국사회에서 연예인들이 보여준, 혹은 그들에게 허용된 사회적 활동은 줄곧 '자선' 혹은 '정치적 시선'에 갇혀왔다. 지금도 넘쳐나는 각종 홍보대사를 비롯해, 사회적 인지도에 따라 정부기관 혹은 사회단체의 홍보를 위한 위치에 머무르기도 한다. 본인들의 소신에 의해 움직이는 모든 활동과 스탠스들마저 '딴따라'들의 정치적 일탈이나 이익을 쫓는 행위로 폄훼되기도 한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 논리와 실천으로 무장한 정우성은 2018년 한 해 '연예인' 혹은 '공인'이라는 틀을 뛰어넘는 '인사'로 자리매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로부터 친선대사 제안을 받았을 당시 "왜 나예요?"라고 반문했다는 정우성은 이제 난민 문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국사회의 '얼굴'이 됐다.
 
연예인·유명인의 사회 참여에 대해 여전히 의혹 어린 시선과 질시에 찬 댓글들이 쏟아지는 작금의 상황에서, 정우성은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중이다. 그것이 40대 중년 남성 유명 배우라서 획득할 수 있는 우월적 지위를 표상한다 하더라도, 그것마저도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소중한 길이라 할 만하다.
 
이와 같이 앞서 나아간 이의 궤적이 있어야만 그 이후 많은 편견을 뛰어 넘어 다른 연예인 혹은 유명인도 거침없이 자신의 소신을 펼칠 수 있는 길이 또 열리지 않겠는가. 올해 정우성이 보여준 행보는 그의 가치를 확인하게 해주었고, 또한 2019년 그가 보여줄 활약이 누구보다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우성 난민문제 세월호 유엔난민기구_친선대사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