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 영화와 반대되는 지점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나가는 작품들이 있다. 상대적으로 예산이 부족해 많은 현실적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배급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대신 신선하고 다양한 아이디어와 조금 더 자유로운 연출 방식으로 제작되는 작품들. 그들이 있기에 영화 산업은 더 두텁고 단단한 작품 영역을 지켜낼 수 있다. 그 동안 예술영화, 독립영화, 저예산 영화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왔으나, 지난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에서는 이 작품들을 총칭하여 '다양성 영화'라 명명하기로 한다.

올해 국내에서 개봉한 다양성 영화는 총 518편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약 540여 편이 개봉한 것에 비하면 약간 줄어든 수치지만, 거의 동일한 편 수라고 할 수 있다. 지면을 위해 선택한 작품 대부분은 관객 수 약 5만 명 이하의 작품들로 관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못했지만 이후에라도 관심을 가져 볼만한 작품들이다. 이 가운데 영화 <서치>는 엄밀하게 따지면 다양성 영화라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개봉 초기 관심 밖에 있었던 작품으로 입소문으로 알려진 경우로 작품이 진행되는 형식 또한 기존의 상업 영화와 달리 독특한 부분이 있기에 '다양성 영화 편'에 수록하게 되었다.

01.
<소공녀>
2018년 3월 22일 개봉 / 15세 관람가
감독 : 전고운 / 출연 : 이솜, 안재홍
 
영화 <소공녀> 스틸컷 영화 <소공녀> 스틸컷

▲ 영화 <소공녀> 스틸컷 영화 <소공녀> 스틸컷 ⓒ CGV아트하우스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만 있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는 3년 차 가사도우미 미소(이솜 역). <소공녀>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따르는 일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에 대한 따뜻함을 잃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의 전체적인 방향. 문제에 대한 해답을 섣불리 제시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감독은 비싼 집값 때문에 웬만해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기 십상인 도시 서울에서 느낀 사회 구조에 대한 의문과 영화적인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을 이 작품 <소공녀>에 더했다고 한다.

물론 영화 속 미소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행동이 현실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런 영화적 표현은 무엇을 선택하는 일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젊은 세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스로의 취향을 지키기 위해, 작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실현 가능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까지 포기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남긴 물음이다.

02.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2018년 5월 2일 개봉 / 15세 관람가
감독 : 세드릭 클라피쉬 / 출연 : 피오 마르마이, 아나 지라르도, 프랑수아 시빌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스틸컷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스틸컷

▲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스틸컷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스틸컷 ⓒ (주)티캐스트


10년 만에 재회한 삼 남매에게 남겨진 아버지의 유산, 부르고뉴 와이너리를 배경으로 서로의 입장을 마냥 이해할 수가 없던 삼 남매가 함께 마음을 헤아려 가며 하나의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각자의 사정에 의해 더 이상 하나로 뭉쳐지지 않을 것만 같던 삼 남매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또 다른 하나의 가족을 형성해 가는 과정이 포도를 재배하여 와인을 숙성시켜가는 과정에 비유되고 있다. 감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숙해지는 모든 가치들을 영화에 담기 위해 와이너리의 사계를 모두 촬영해 작품 속에 담아냈다고 한다.

영화 속 와이너리는 그런 모든 불완전한 것들을 시간으로 보듬는 특별한 공간으로 작용한다. 이제 막 만들어져 아직 향이 터지지 않은 와인이 익숙함과 편안함 속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듯이, 전 세대의 가족이 해체된 이후에 남겨진 이들이 또 그들만의 가족을 만들어가는 곳 말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짓고 있는 미소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03.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8년 6월 21일 개봉 / 15세 관람가
감독 : 자비에 르그랑 / 출연 : 레아 드루케, 드니 메노셰, 토마 지오리아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틸컷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틸컷

▲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틸컷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틸컷 ⓒ 판씨네마(주)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혼한 부모의 양육권 다툼 속에서 희생양이 되어버린 아이들과 그들을 지켜줄 수 없는 엄마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작품이다. 아빠를 거부하는 의사가 명확한 아이의 의견과는 무관하게 부모의 상황과 처지, 법률적 근거에 의해 결정되는 아이의 처분, 그 상황 속에서 아이가 바라보는 부모에 대한 심리와 겪을 수밖에 없는 폭력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런 아이를 바라보면서도 법률이 정한대로 따를 수 밖에 없는 무력한 엄마의 모습을 통해 자비에 르그랑 감독은 가정 폭력에 내몰린 피해자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영화의 중반까지 관객들로 하여금 아버지 앙투안이 정말로 폭력적이고 잔인한 아버지인지 혹은 다소 서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인지 등장인물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함으로써 불안과 공포를 극대화시킨다.

한번 시작된 폭력은 그리 쉽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으며, 그 흔한 OST 하나 없이 조용히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의 무게는 영화의 여운을 그대로 이어받으며 잠시간의 무력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 미래 사자상 수상작.

04.
<서치>
2018년 8월 29일 개봉 / 12세 관람가
감독 : 아니쉬 차간티 / 출연 : 존 조, 데브라 메싱, 미셸 라
 
영화 <서치> 스틸컷 영화 <서치> 스틸컷

▲ 영화 <서치> 스틸컷 영화 <서치> 스틸컷 ⓒ 소니픽쳐스코리아


영화 <서치>는 한 소녀의 실종으로 인해 일어나게 되는 일들을 시간의 순서대로 그려나가는 작품이다. 스토리 자체는 실종 사건을 소재로 하는 다른 작품들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이를 투사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이 작품에는 그 동안의 영화에서 우리가 봐왔던 일상적인 장면들이 단 한 컷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감독은 이 작품의 모든 장면들을 PC와 모바일 속 기능들로 채운다. 노트북과 휴대폰, CCTV와 같은 장치들의 화면이 이 영화의 프레임이며, 웹 브라우저와 SNS, 문자메시지와 화상통화 장면들이 내용을 이어나가는 장면이 된다.

처음에는 이 특이한 연출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 속을 채우는 단단한 메시지와 스토리로 관객들을 한번 더 매혹시키며 관객 300만에 가까운 성적까지 얻었다. 작품성과 오락성, 흥행까지 모두 이루어낸 수작.

05.
<살아남은 아이>
2018년 8월 30일 개봉 / 12세 관람가
감독 : 신동석 / 출연 : 최무성, 김여진, 성유빈
 
영화 <살아남은 아이> 스틸컷 영화 <살아남은 아이> 스틸컷

▲ 영화 <살아남은 아이> 스틸컷 영화 <살아남은 아이> 스틸컷 ⓒ CGV아트하우스


신동석 감독의 첫 장편 영화 <살아남은 아이>는 물에 빠진 친구 기현(성유빈 역)을 구하고 대신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 은찬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은찬의 부모와 그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방황하며 흔들리던 기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모와 죽은 아들이 살려낸 친구의 관계라는 다소 일반적이지 않은 소재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세 인물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관계의 변화를 잘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의 거리를 극단적으로 좁히는 것과 피해자 가족과 가까워진 인물인 기현이 가해자 무리에서는 약자의 위치에 놓여있다는 두 가지 설정을 적절히 섞어 딜레마를 이끌어낸다.

첨예한 사건을 중심에 두고도 그것을 파헤치려는 쪽이 아닌, 그 사건과 관련된 이들의 심리와 감정을 표현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았던 작품이다. 또한 그 노력은 조금도 무너지지 않고 작품의 깊이로 치환되며 관객의 깊은 몰입을 가능하게 만든다. 감정적인 부분을 표현해내는 깊이와 세심한 차이를 구분할 줄 아는 섬세함의 측면에 있어서 뛰어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06.
<영주>
2018년 11월 22일 개봉 / 12세 관람가
감독 : 차성덕 / 출연 : 김향기, 김호정, 유재명, 탕준상
 
영화 <영주> 스틸컷 영화 <영주> 스틸컷

▲ 영화 <영주> 스틸컷 영화 <영주> 스틸컷 ⓒ CGV아트하우스


미워해야 하지만 미워할 수 없어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는 흔하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미워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아니라, 미워해야 한다는 지점이다. 누군가를 '미워해야 한다'는 말에는 일종의 의무가 부여되는데, 사람의 감정이 의무를 갖고 행하기에 용이한 종류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영주>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한날 한시에 잃고 남동생과 단둘이 힘겹게 지내다, 절망 끝으로 내몰리던 중 만나게 된 교통사고의 가해자 부부에게서 낯선 부모의 정을 느끼며 혼란스러워 하는 열 아홉 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미워해야 하는 대상을 좋아하게 되어버린 양가적 감정 아래에 아직 모든 것을 짊어질 준비가 되지 못한 영주의 모습으로부터 관객들 또한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경계의 문제를 경험하게 된다. 감독의 첫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파고드는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07.
<다영씨>
2018년 12월 6일 개봉 / 12세 관람가
감독 : 고봉수 / 출연 : 신민재, 이호정, 백승환
 
영화 <다영씨> 스틸컷 영화 <다영씨> 스틸컷

▲ 영화 <다영씨> 스틸컷 영화 <다영씨> 스틸컷 ⓒ 인디스토리


고봉수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 <다영씨>는 흑백의 무성 영화라는 최근에 보기 드문 형식을 가져다 입힌 작품이다. 흑백과 무성, 두 가지 모두 이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형식인데, 한 작품에 모두 가져다 입혔다.

이러한 형식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일 수도 있겠으나,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조금도 어려움이 없다. 무성 영화의 특성상 어려운 내용을 담을 수도 없거니와, 소리 이외의 자극을 통해 수 많은 정보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영화 <다영씨>의 이야기는 구조적으로 간단하다. 퀵서비스 기사로 일하고 있는 민재(신민재 역)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지역의 삼진 물산이라는 회사에 근무하는 다영(이호정 역)을 짝사랑하는 내용. 회사 안에서 외톨이로 지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남몰래 그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퀵서비스를 그만두고 그 회사에 입사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담아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로맨스의 장르를 이어가지만 민재가 퀵서비스 기사로 일을 하던 시기의 직업적 대우에 관한 것과 다영이 사무실 내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불공평함에 관한 것을 통한 해학적 표현 또한 놓치지 않는다.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면 61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다소 짧게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이 작품의 매력은 직접 관람하지 않고는 가늠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독보적이고 또 반짝거린다.
영화 무비 다양성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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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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