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결산의 현장은 치열하고도 즐겁다. 숨 가쁘게 지나온 지난 1년을 복기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들을 돌려 듣고, 설레는 송년회 선물처럼 리스트를 채워나간다.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2018년을 대표한 노래들을 꼽을 수도 있겠지만, 숨겨진 보석처럼 독특한 개성과 매력으로 새로운 즐거움을 준 음악 역시 그 가치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 국내외 새로운 시도로 음악계에 활력을 돋구어 준 다섯 작품을 소개한다. 

수민 < Your Home >
 
 올 한 해 가장 독창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한 수민의 < Your Home >

올 한 해 가장 독창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한 수민의 < Your Home >ⓒ YG Plus


수민은 올 한 해 여성 싱어송라이터 중 가장 과감하고 너른 역량을 펼쳐 보였다.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자유로움에 케이팝의 장르 교배와 구조 변화를 받아들인 < Your Home >은 좋은 일렉트로닉 앨범이기도, 좋은 알앤비 앨범이기도, 좋은 케이팝 앨범이기도 하다. '설탕분수'의 무지갯빛 찬란함과 '너네 집'의 명료한 선율, '통닭'의 통통 튀는 메시지 등 형형색색 음악 팔레트는 조금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방탄소년단, 레드 벨벳, 진보를 거쳐 보아까지 닿은 메이저 시장과의 접점, 술탄 오브 더 디스코 같은 밴드와도 이질 없이 융합되는 범용성 역시 긍정적이다. 레트로부터 혁신까지 어느 틀에 맞춰도 본연의 색을 발하는 재주는 꾸준한 히트를 기대케 한다. 탄탄한 짜릿함으로 가득한 '너네 집'에서 자꾸만 살고 싶다. 
 
김심야와 손대현 - < Moonshine >
 
 김심야와 손대현의 < Moonshine > 앨범 커버.

김심야와 손대현의 < Moonshine > 앨범 커버.ⓒ BANA

 
이것은 패배의 기록이다. 야망으로 가득했던 젊은 래퍼가 현실의 무관심에 좌절한 후, 격렬한 분노를 쏟아내 보았지만 끝내 공허한 황무지에서 구도의 길을 걸어가는 작품이다. 저항과 언더그라운드를 외쳤던 한국 힙합은 거대한 연예 기획사가 됐고, 유명하지 않은 래퍼, 제도권에 목매지 않는 래퍼는 '팔리지 않을 앨범'을 만든다. 

XXX의 김심야와 TDE 레코즈의 손대현(D.Sanders)은 자본과 미디어에 종속된 한국 힙합 신에서 철저히 이방인이다. '안 먹히는 음악을 왜 할까나? / 그것밖에 못하니까'라는 자조와 푸념은 '지금 은퇴해도 내 위치는 Locked and good'처럼 굳은 자신감과 실력이 가능하기에 정당성을 확보한다.

고요함 속 이따금의 분노를 내비치는 손대현의 비트와 누구도 말하지 않는 메시지를 거칠고 유려한 플로우로 선보이는 김심야의 랩은 영화 <매트릭스> 속 한 장면처럼 진실의 빨간약과 순응의 파란 약을 교차 제시한다. < Moonshine >은 오래도록 회자될 패배의 기록이다. 
 
박지민 'April Fools(0401)'
 
 솔로 EP < jiminxjamie >로 독특한 본인의 색을 그려낸 박지민

솔로 EP < jiminxjamie >로 독특한 본인의 색을 그려낸 박지민ⓒ JYP엔터테인먼트

 
'히트하는 음악보다 나만의 음악으로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는 박지민의 다짐이 담겼다. 긴 공백기에 조급하지도,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강박으로 과하지도 않았다. 차분한 감정선으로 출발해 특유의 탄력적인 보컬 역량을 선보인 'April fools(0401)'는 '좋은 음악'을 고민하는 젊은 아티스트의 절제가 인상적이다. 폭발적 고음과 가창력을 쏟아내던 어린 소녀가 '참아내는' 매력을 깨우친 것이다. 

본인의 경험을 소재로 삼아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한 이 곡은 제목의 '만우절 농담'과 배치되는 깊은 잔향으로 빛난다. 퓨처 알앤비의 유행을 수용하면서도 마니아적 감성에 치우치지 않고, 대중성을 확보하면서도 오디션 프로그램의 고정관념을 자연스럽게 허문다. 무엇보다 '박지민의 음악'이란 점이 고무적이다. 성장과 가능성을 본다. 
 
어겐스트 올 로직(Against All Logic) < 2012 - 2017 >

'가진 거라곤 이 오래된 하우스뿐(This old house is all i have)'. 역설적인 제목이다. 어겐스트 올 로직(Against All Logic)의 이름 아래 있는 아티스트는 앰비언트, 테크노 펑크, 아방가르드와 브레이크 비트를 천재적으로 혼합해온 디제이 니콜라스 자(Nicholas Jaar)다. 역설과 예측 불가능한 매력으로 빛나던 그는 새로운 자아의 이름처럼 '모든 논리에 맞선'다. 그 도구는 고전 펑크(Funk)와 소울로부터 추출해낸, 정격적인 댄스 음악이다. 

< 2012- 2017 >은 정치적이고 실험적이었던 아티스트가 '각 잡고 만든' 고밀도의 댄스 플로어 플레이리스트다. 때로는 직선적으로, 때로는 몽환적으로 다가가는 2012년부터 2017년의 기록물들은 놀랍도록 정교하며 각 트랙마다 선명한 무형의 상을 하나씩 각인시킨다.

뿌연 드라이아이스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새벽의 클럽 아우라, 그 사이를 뚫고 달려오는 신스 루프와 사운드 샘플의 쾌감은 11 트랙 내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는 명제를 증명한 천재 프로듀서의 몸풀기 앨범. 
 
앤더슨 팩(Anderson. Paak) < Oxnard >
 
 애플 홈팟 광고의 'Till it's over'와 <블랙팬서> OST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 앤더슨 팩의 새 앨범 < Oxnard >

애플 홈팟 광고의 'Till it's over'와 <블랙팬서> OST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 앤더슨 팩의 새 앨범 < Oxnard >ⓒ 워너뮤직코리아

 
영화 <블랙 팬서> OST로 출발한 앤더슨 팩의 2018년은 애플 스마트 스피커 홈팟(Homepod)의 광고 배경음악으로 나온 감각적인 싱글 'Till it's over'로부터 켄드릭 라마와의 매끈한 협업 'Tints',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정규 앨범 < Liberation >을 거쳐 < Oxnard >로 방점을 찍는다. 독창적 리듬과 규격화되지 않은 아이디어로 가득한 이 아티스트와 그의 밴드 프리 내셔널스(Free Nationals)는 새 시대의 펑크(Funk)와 힙합을 조율해내는 감각을 날 것 그대로 발산해 보인다. 

예측을 거부하는 비트 전개와 정제되지 않은 본능적 외침, 불협을 미학적으로 구성하는 재주가 즐겁다. 미니멀 힙합으로부터 낭만적인 알앤비로의 성공적인 전환 '6 summers'와 복고적인 소울 트랙 'Anywhere', 'Mansa musa'의 멈춤 없는 그루브 모두 앤더슨 팩의 드럼 스틱 위에서 춤을 춘다. < Oxnard >는 2018년 베스트 믹스에 역동성을 추가한다. 
 
차일디시 감비노(Childish Gambino) 'This is america'
 
 2018년 가장 뜨거운 화제의 곡 중 하나였던 차일디시 감비노의 'This is america'

2018년 가장 뜨거운 화제의 곡 중 하나였던 차일디시 감비노의 'This is america'ⓒ 차일디시 감비노 유튜브 캡쳐


2018년의 미국은 누군가에겐 지옥이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공식 표어로 삼는 트럼프 시대, 차일디시 감비노가 홀연히 공개한 'This is america'는 이 위대한 국가의 추악한 민낯을 잔인한 투명 렌즈로 적나라하게 헤집어댔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뒤통수에 총알이 박히는 나라, 누군가가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는 와중에도 흥겨운 댄스파티를 벌이는 나라, 부와 권력의 프레임으로 이 모두를 은폐하는 나라. 디스 이즈 아메리카. 정신 바짝 차려.

2016년 비욘세가 저항의 대형을 갖추고('Formation') 작년 켄드릭 라마가 부조리한 현실을 조목조목 짚었다면(< DAMN >) 차일디시 감비노는 블랙 커뮤니티가 바라보는 아비지옥(阿鼻地獄)을 감각적인 미디어 아트로 선보였다. 한 해를 정의했고 한 해를 상징했다. 2018년의 미국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중음악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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