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의 품격> 오써니(장나라 분).

<황후의 품격> 오써니(장나라 분).ⓒ SBS

  
SBS 수목 드라마 <황후의 품격> 오써니(장나라 분)는 '좌불안석' 정도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극도로 불안한 처지에 놓여 있다. 가상의 대한제국 황실이 설정된 이 드라마에서, 황후 오써니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써니는 한밤중에 황실 경호원 천우빈(최진혁 분)과 함께, 황제 이혁(신성록 분)과 황제비서팀장 민유라(이엘리야 분)의 밀회 현장을 뒤쫒다가 되려 불륜을 저질렀다는 오해를 받았다. 한밤중에 경호원과 함께 있은 사실로 인해 역공을 받은 것이다.
 
태왕태후 조씨(박원숙 분)를 살해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황제와 태후 강씨(신은경 분)와 민유라는 자신들이 벌인 태왕태후 살해를 오써니에게 뒤집어씌웠다.
 
이뿐 아니다. 황제 손에 죽을 뻔도 했다. 황제·태후·민유라는 오써니가 황실에서 나가주기만을 바라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버틴다. 시집 식구들의 음모에 맞서 싸우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 속에서 타들어가는 마음고생을 참아내는 것도 대단하다.
 
오써니 못지않게 마음고생 심했던 역사 속 왕후들

드라마 속 상황과는 많이 다르지만, 오써니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마음고생을 했던 실제 역사 속의 왕후들은 무수히 많다. 그중 한 사람은 우리가 매우 잘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살았으리라고는 쉽게 생각하기도 힘든 사람이다. 바로, 세종대왕의 부인인 소헌왕후 심씨다. <황후의 품격>에 나오는 이혁의 전처는 소'현'왕후(신고은 분)이고, 세종대왕의 부인은 소'헌'왕후다.
 
조선 건국 3년 뒤인 1395년에 출생한 소헌왕후 심씨는 13세 때인 1408년에 11세의 왕자 이도(훗날의 세종)와 결혼했다. 이 해에 이도는 충녕군이 된다. 충녕대군이 된 것은 1412년이다.
 
결혼한 해에 심씨는 경숙옹주로 책봉됐다. 옹주란 용어는 나중에는 후궁의 딸을 뜻하는 표현으로 굳어지지만, 이때는 다양한 의미로 쓰였다. 심씨는 결혼 9년 뒤인 1417년에는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으로 책봉됐다.
 
결혼 10년 뒤인 1418년이었다. 23세가 된 심씨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속내를 드러낼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시아주버니인 세자 이제(훗날의 양녕대군)가 시아버지 태종 이방원의 미움을 사서 폐세자되고, 남편 이도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1418년 7월 6일(음력 6월 3일)의 일이다.
 
임금이 된 남편, 영의정이 된 아버지

상황 전개는 급박했다. 남편은 왕세자 수업을 받을 겨를도 없이 2개월 만인 9월 9일(음력 8월 10일) 주상 자리에 올랐다. 물론 완벽한 의미의 주상은 아니었다. 상왕인 시아버지가 병권을 갖는 것에 더해 주요 국정현안에 대한 처결권까지 갖는 것을 전제로 남편 세종이 임금이 됐을 뿐이다. 70% 정도는 이방원이 여전히 왕이고, 30% 정도만 세종이 왕인 구도였다.
 
상왕 이방원은 '주상이 서른 살이 되기까지는 내가 병권 기타 주요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못을 박아놓았다. 그런데 상왕의 심복인 병조참판 강상인이 무슨 생각에서인지 태종이 아닌 세종에게 업무보고를 했다. 이 때문에 세종 즉위 보름만에 병조참판이 투옥되는 불상사가 생겼지만, 남편 세종한테는 별 문제가 없었다.
 
이 당시는 쿠데타가 빈발하고 왕위계승이 불안정하던 시대였다. 이런 상황에서, 시아주버니의 왕위계승권이 평화적 방법으로 남편한테 넘어오고 이에 따라 남편이 별 탈 없이 임금 자리에 오른 것만 해도 소헌왕후로서는 다행스런 일이었다.
 
좋은 일은 계속 생겼다. 강상인이 체포되기 이틀 전, 그러니까 남편이 왕이 된 지 13일 뒤인 9월 22일(음력 8월 23일), 아버지 심온이 명나라에 파견될 사신으로 임명됐다. 뒤이어 9월 30일(음력 9월 1일)에는 아버지가 시아버지의 전송을 받으며 명나라로 출발하더니, 10월 2일(음력 9월 3일)에는 여행 중인 아버지가 영의정으로 임명되기까지 했다. 남편은 임금이 되고 아버지는 영의정이 됐으니, 소헌왕후 머릿속에서 만사형통이란 글자가 떠올랐을 만도 하다.
 
소헌왕후 집안을 쑥대밭 만들려는 이방원의 '계략'
 소헌왕후와 세종대왕의 합장릉인 영릉. 경기도 여주시에 있다.

소헌왕후와 세종대왕의 합장릉인 영릉. 경기도 여주시에 있다.ⓒ 김종성

  
하지만 이 모든 일에는 나쁜 말로 '계략'이 깔려 있었다. 소헌왕후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기 위한 태종 이방원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이방원은 심복인 강상인을 모반대역죄로 몰았다. 상왕의 권한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그렇게까지 몰아간 것이다. 그런데 강상인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권력이 상왕이 아닌 주상한테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서 주상에게 병조사무를 보고했으며, 영의정이 되어 명나라로 떠난 심온이 자기와 뜻을 함께했다고 진술해버린 것이다.
 
말이 상왕이지, 사실은 이방원이 왕이었다. 병권과 기타 주요 권한을 갖고 있었으므로, 법적으로는 이방원이 훨씬 더 임금에 가까웠다. 그런 이방원의 권한을 무시하는 일에 소헌왕후의 친정아버지가 가담했다는 진술이 나온 것이다.
 
이런 줄도 모르고 명나라에서 일을 마치고 귀국한 심온은, 국경 지방인 의주에 도착하자마자 수사 당국에 체포됐다. 강상인은 참수되고 심온은 사사(賜死)됐다. 심온은 모반대역의 우두머리로 지목됐지만, 왕실과의 관계 때문에 사약을 마시고 죽는 것으로 처리됐다.
 
<황후의 품격> 오써니한테는 아버지와 동생이라도 있지만, 소헌왕후 심씨한테는 그런 의지처도 찾기 힘들었다. 친정집이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 궁궐에 갇혀 쥐 죽은 듯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남 보는 데서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기도 힘들었다. 오써니 이상으로 마음고생을 했을 게 분명하다.
 
왕이 된 뒤에도 외척을 경계한 이방원

사실, 심온의 죄를 찾기는 힘들었다. 강상인과 관련됐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그런데도 태종 이방원이 일말의 동정도 베풀지 않고 심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은, 아들 세종의 왕권을 든든히 하기 위해서였다. 학자 기질이 강한 세종이 이방원 사후에도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려면 외척(왕실 사돈)의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이방원의 개인적 경험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방원은 정몽주를 암살함으로써 조선왕조 건국에 결정적 공로를 세웠지만, 계모인 신덕왕후 강씨가 정도전과 손잡고 친아들 이방석을 세자로 미는 바람에 배신감을 느낀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쿠데타를 일으켜 정도전과 이방석을 죽이기까지 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이방원은 왕이 된 뒤에도 외척을 무척이나 경계했다. 부인인 민경왕후 민씨가 쿠데타 성공에 크게 기여했는데도, 처남인 민무구·민무질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민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다.
 
이 연장선상에서 이방원은 며느리 소헌왕후 심씨의 집안마저 그렇게 만들어놓았다. 세종을 세자로 만들고 주상으로 앉히는 그 2개월 사이에, 심온 집안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했을 가능성이 있다. 심온을 영의정으로 높이고 명나라에 보낸 것은 본심을 숨기기 위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남편이 왕이 되자마자 친정집이 파탄났기 때문에 소헌왕후는 극도로 조심하면서 살아야 했다. 그의 마음고생은 <황후의 품격> 오써니 못지않은, 아니 그 이상의 것이었다. 시집살이가 아니라 감옥살이 같았을 수도 있다.
 
현대 한국인들은 남편인 세종의 이미지가 훌륭하기 때문에 소헌왕후가 그렇게 살았으리라고는 쉽게 생각하기 못한다. 하지만, 23세 이후 몇 년간 소헌왕후는 심장 속까지 타들어가는 마음고생을 인내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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