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니>에서 납치된 동생 은혜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언니 인애 역을 맡은 배우 이시영.

영화 <언니>에서 납치된 동생 은혜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언니 인애 역을 맡은 배우 이시영.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국가대표 복싱 선수 출신 배우. 누군가 한국에서 여성 원톱을 내세운 액션 영화를 기획한다면, 가장 먼저 떠올릴 인물은 이시영일 것이다. 운동선수 출신 배우야 많지만, 이시영은 단막극을 위해 배운 복싱으로 국가대표 타이틀까지 달았고, 실업팀에 소속돼 활동하기까지 했다. 그 운동신경이야 더 말해 뭐할까. 위기에 빠진 동생을 구하기 위해 맨몸으로 맞서는 전직 경호원 인애 역에, 제작진 역시 이시영 외에 다른 어떤 이름을 떠올리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는 1일 1일 개봉을 앞둔 영화 <언니>의 이시영을 만났다. 이시영은 이 작품에서 장기인 복싱을 비롯, 주짓수와 카체이싱, 도구 활용 액션 등 영화 속 대부분의 장면을 대역 없이 소화해냈다. 비좁은 차 안에서 일대일로 벌이는 치열한 액션부터 17:1로 덩치 큰 남자들을 무찌르는 액션까지, 영화 <언니>에는 이시영이 구사할 수 있는 모든 액션 기술이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조금씩 보여드린 적은 있지만, 제가 본격 액션물을 하게 되면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 같았어요. 되게 잘해야 할 것 같고, 다르게 해야 할 것 같고... 그런데 그런 작품을 만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언니>는 그런 와중에 만난 작품이었죠." 

빨간 원피스에 하이힐... 이시영도 궁금했다 "굳이 왜?"  
 
 영화 <언니> 포스터

영화 <언니> 포스터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타이트한 빨간 미니 원피스에 빨간 하이힐. 인애의 전투 복장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치맛단과 하이힐 굽을 이용한 공격 등은 분명 기존 남성 액션물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림이라 새롭긴 했다. 하지만 굳이 보기에도 불편하고 여성성이 강조된 의상을 입어야만 했을까? 이시영 역시 감독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의상은 감독님과 가장 많이 이야기한 부분이었어요. 빨간 색상의 원피스와 하이힐은 여성성의 극치를 표현하는 느낌이잖아요. 그래서 처음엔 좀 불편했어요. 굳이 왜 이렇게까지 보여줘야 하나 싶었거든요.

가장 반대한 건 액션 감독님이셨어요. 제가 아무리 운동을 했다 해도 전문 액션 배우는 아니잖아요. 몸매가 다 드러나니까 모든 동작이 정확하지 않으면 어설퍼 보일 수밖에 없어요. 옷의 부피감으로 작은 체격을 커버해야 하는데 그 방법도 쓸 수 없었고요. 하이힐을 신으면 중심 잡기가 어려워서 휘청휘청할 수밖에 없고요.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한 달 넘게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이시영은 자신이 이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받았던 강렬했던 첫인상과 감독이 추구하는 메시지를 따르기로 했다. 

"보통 배우들이 액션을 한다고 하면 막연히 가죽 재킷이나 어두운 계열의 의상, 아니면 편안한 트레이닝 복장처럼 누가 봐도 곧 액션할 것 같은 의상을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이건 첫 장부터 빨간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고 오함마를 끌고 가더라고요. 굉장히 강렬했고, 그 다음이 궁금했죠. 

감독님은 여성성이 극대화된 이미지를 통해서 이렇게 약하고 연약해 보이는 여자에게 얼마나 부서질 수 있는지, 분노가 사람을 얼마나 힘 있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으셨대요. 의상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저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죠. 제가 다 해야 하니까요. 액션 스쿨도 더 열심히 다니면서 어설프게 보이지 않도록 긴장을 많이 했어요."


가해자 응징, 더 세게 하고 싶었다 
 
 영화 <언니>에서 납치된 동생 은혜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언니 인애 역을 맡은 배우 이시영.

영화 <언니>에서 납치된 동생 은혜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언니 인애 역을 맡은 배우 이시영.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이시영과 제작진이 가장 애를 쓴 부분은 '설득력'이었다. 여성인 인애가 조폭 수십 명을 홀로 해치우는 설정을 관객이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특공 무술에도 능한 전직 경호원 출신이라는 배경 설정도 있었지만, 인애를 더 강력하게 만든 건 앞서 언급한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컸다. 동생의 흔적을 쫓을수록 동생이 견뎌야 했던 끔찍한 상황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한 분노와 동생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향한 자책이 인애의 전투력을 상승시킬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 '설득력'을 위해 은혜의 피해 상황이 너무 많이, 너무 자세하게 묘사된 데 있었다. 피해자의 피해에 비해 가해자에 대한 응징이 너무 약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건 이시영 액션 연기의 문제가 아니라, 응징 수위에 대한 부분이다. 인애의 목적은 가해자 응징이 아니라 동생을 찾는 것이었다지만, 2% 부족한 복수에 해소될 길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누르기 때문이다. 

"처음 감독님을 만났을 때, 어떤 시사 프로그램을 보고 이 작품을 구상하셨다고 들었어요. 현실에서는 아무리 도움을 요청해도 공권력의 도움을 받기 쉽지 않고, 결국 피해자만 남는 상황이 많다는 걸 보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라는 마음이 드셨대요.

저 역시도 현실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라는 생각에 더 분노하면서 연기했어요. 액션에도 분노를 더 표현하고 싶었는데, 제 신체적 한계 때문에 벽에 부딪힐 때 제일 답답했어요. 대역 없이 가다 보니 제가 못 하는 액션은 영화에도 담을 수 없는 거잖아요. 결말도, 원래 시나리오에는 영화보다 더 응징의 정도가 셌어요. 더 처절하게 응징해주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수위가 조금씩 낮아졌어요. 저 역시도 아쉬운 부분이에요."


아쉬운 <언니>, 그럼에도 
 
 영화 <언니> 스틸컷

영화 <언니> 스틸컷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많이 나아졌다고, 이젠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여성'은 적은 기회, 많은 제약, 높은 벽과 싸워야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영화계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할리우드 여자 배우들도 성차별과 싸우고 있노라 이야기하는데, 우리 영화계에서야 오죽할까. 

이런 환경에서 여성 원톱 액션 영화가 만들어지기 얼마나 힘든지, 여성 원톱 영화에 쏠리는 기대(혹은 의심)가 얼마나 큰지는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언니> 주인공으로서 이시영이 느꼈던 책임감과 부담감의 무게는 대부분 여기에 있었다. 이시영은 "주인공의 무게는 늘 무거웠지만, 이 영화에서는 최고였다"고 고백했다. 

"상업 영화다 보니 결과에 따라 많은 것들이 좌지우지되잖아요. 전에는 이런 게 부담이었다면, 이번엔 두려움이 됐어요. 한 번 이런 영화가 잘 안 되면 한동안은 씨가 마르니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니까... 그래도 최근 들어 여성을 내세운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해요. <언니>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고요." 
  
 영화 <언니>에서 납치된 동생 은혜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언니 인애 역을 맡은 배우 이시영.

영화 <언니>에서 납치된 동생 은혜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언니 인애 역을 맡은 배우 이시영.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이시영은 "<언니>가 여성 영화로서 얼마만큼의 영향력이 있을진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언니>를 시작으로 스스로가 더 발전할 수 있고, 액션 영화 장르에서 활약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저도 다른 (여자) 선배님들 작품 보면서 응원하고 있어요. 좋은 결과가 이어지면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생길 테고, 그럼 보여드릴 수 있는 작품도 많아질 테니까요. 지금은 제가 뭘 고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에요. 그저 많이 보여드리고 싶을 뿐이죠. 선택과 기회의 폭이 넓어지면, 저뿐만 아니라 많은 여배우들이 더 좋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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