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미투'의 해였다. 연초부터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여성들은 자신의 존재를 걸고"(여성학자 권김현영) 공개된 장소에서 성폭력 피해를 증언했고 폭로했다. 특히 자신의 유명세 혹은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은 문화예술계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성폭력 피해를 소수 여성이나 겪는 일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서지현 검사가 나왔다. 기폭제가 된 거다.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눌러왔던 이야기들이 폭발한 거지. 미투는 개인의 피해지만, 집단으로 표출되고 있는 거다."(이나영 중앙대 교수, 관련기사: "미투 제대로 이해 못하니 '음모론'... 남자들도 공부해야" http://omn.kr/r1lu)

1월 29일은 우리 사회 미투를 촉발시킨 상징적인 날이다. 그 중심엔 서지현 검사가 있다. 이날 서 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자신이 강제추행을 당했음을 알리는 글을 올린 뒤, 같은날 오후 한 방송에 나와 성폭력 피해를 담담하게 증언했다.

이후 서지현 검사가 던진 불씨는 이곳 저곳으로 번졌다. 문화예술계 중에선 연극계가 가장 먼저 서지현 검사의 증언에 화답했다. 2월 14일 극단 미인의 대표 김수희씨는 개인 SNS 계정을 통해 '미투'를 외치며 연극 연출가 이윤택의 상습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

"이윤택,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
 
눈 감은 이윤택 예술감독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열린 성추행 사실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에서 사과의 말을 하기에 앞서 눈을 감은채 생각에 잠겨 있다.

▲ 눈 감은 이윤택 예술감독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열린 성추행 사실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에서 사과의 말을 하기에 앞서 눈을 감은채 생각에 잠겨 있다.ⓒ 이정민

 
"연습 중이든 휴식 중이든 꼭 여자 단원에게 안마를 시켰다. 그게 본인의 기를 푸는 방법이라고 했다. ...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

김수희의 폭로 이후 이윤택 연출가가 속한 극단 연희단거리패 내외부의 연극계 여성들이 이윤택 연출가의 성추행 사실을 증언했다. 이윤택은 폭로가 나오고 난 뒤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이 반성하는 취지의 기자회견 또한 리허설을 하는 등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된 것이었다고 알려지자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윤택은 지난 2010년 7월부터 2016년 12월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여성 배우 9명을 25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추행했고 해당 혐의로 기소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는 9월 19일 이윤택의 유사강간치상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했다. 이윤택 연출가는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연출가 이윤택은 미투 운동을 통해 재판을 받은 유명인 중 첫 실형 사례로 기록됐다.

김기덕, 여전히 영화 촬영 중
 
 지난 3월 방송된 <PD수첩>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 편의 한 장면.

지난 3월 방송된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 편의 한 장면.ⓒ MBC

 
영화계에서는 지난 2월 말 배우 조재현이 다수의 여성들로부터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이에 조재현은 "모든 걸 내려놓겠다"며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후 조재현은 방송 중인 드라마에서 하차한 가운데, DMZ 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직에서도 내려오는 등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조재현이 운영하던 극장 수현재씨어터가 폐업 수순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조재현을 가해자로 지목하는 여성들의 진술이 계속 이어졌다.

MBC < PD수첩 >은 지난 3월 감독 김기덕과 그의 페르소나인 조재현의 성폭력 사건을 심도 깊게 다루었다. < PD수첩 >은 김기덕이 함께 영화를 촬영한 여성 배우들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복수의 진술을 확보해 방송을 내보냈다. 김기덕은 이후 방송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 PD수첩 > 제작진과 피해 당사자인 여성 배우들을 고소했다.

"김기덕 감독과 조재현, 조재현의 매니저가 하이에나처럼 밤마다 방문을 두드렸다."

피해자 중 한 사람은 합숙 촬영 중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폭력 폭로들에도 불구하고 김기덕 감독은 현재 카자흐스탄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등 본인의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또 3월에는 2017년까지 청주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학생들을 상습 성추행해 경찰에 소환될 예정이었던 배우 조민기가 사망했다. 이후 모든 수사는 중단됐다.

대개 성폭력은 카메라 뒤에서 일어났지만 폭력신을 찍는다는 이유로 강제 추행을 시도한 이도 있었다. 배우 조덕제는 2015년 초 영화 촬영 중에 상대 배우의 신체를 강제로 추행해 재판을 받았다. 지난 9월 대법원은 배우 조덕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오래 전에 벌어졌던 일이라도
 
 배우 오달수·조재현도 미투 폭로에 휩싸였다.

배우 오달수·조재현도 미투 폭로에 휩싸였다.ⓒ 오마이뉴스

 
이밖에도 영화계에서는 배우 오달수가 25년 전 성추행으로, 방송계에서는 김생민이 10년 전 성추행으로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특히 오달수와 김생민은 오랜 시절 무명으로 지내다가 대중들에 의해 '발견'되자마자라는 점에서 의아함을 자아냈다.

이에 대해 <연합뉴스>는 '"잘나갈수록 체크하라" 연예계 미투에 '유효기한'은 없다'라는 기사에서 "피해자의 고통은 10년이 지나도 현재 진행형인데 가해자는 여전히, 심지어 날이 갈수록 잘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고통을 가중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미투 운동은 업계에서 오랫동안 '선생'이라 불리며 추앙받던 이들 역시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자행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리며 충격을 남기기도 했다. 문학계에서는 최영미 시인이 고은 시인의 상습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고, 연극계에선 연출가 오태석 등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 받아 불명예 퇴장을 했다.

한편 미투 운동은 유명인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이어졌다. 일반 여성들은 SNS 등을 이용해 익명으로 때로는 실명으로 일반인 가해자의 범죄를 폭로하며 자신의 성폭력 피해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2019년, 다시 시작될 '미투' 운동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개소 소감 밝히는 임순례 임순례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센터장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개소 기념행사 및 영화계 성평등 환경 조성을 위한 성폭력·성희롱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개소 소감 밝히는 임순례임순례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센터장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개소 기념행사 및 영화계 성평등 환경 조성을 위한 성폭력·성희롱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투 이후 문화예술계에서는 여러 변화가 있었다. 영화계에서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 개소해 성폭력 상담을 받고 예방 교육을 하고 있다. 또 촬영 현장에서 쓰일 인권 가이드라인 등이 만들어졌다. 영화·방송계에서는 주조연 배우들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어 하차하는 일이 일어나자, 계약서에 (가해 당사자가) 모든 걸 책임지겠다거나 (가해 당사자를) 해고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조항을 포함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임순례 센터장은 27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결국 성희롱이나 성폭력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들이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하고 제도와 법이 바뀌는 등 양방향에서 작동돼야 한다"고 했다. 임 센터장은 든든 차원에서 올 한 해 여러 영화 현장에서 인식을 바꾸고자 예방 교육을 하는 한편, 콘티북 등에 성희롱 예방 수칙을 수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 센터장은 "지금 당장은 눈에 띄는 가시적인 변화의 물결이나 눈에 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여성 스태프가 힘든 일을 처해 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는 알고 있더라"라며 "지금은 어떻게 내부에서 효율적으로 대처하는지 시스템을 잡아가는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또 미투 운동 과정에서 가장 큰 홍역을 치렀던 연극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여성 주연 배우들의 서사와 활약이 돋보인다. 영화계나 방송계 역시 아직 여성 출연자를 기용하는데 이전보다 더 적극적이 됐다.

이러한 여성 주연 배우들의 활약이 반드시 미투 운동의 결과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사실상 여성주의 운동의 흐름 속에 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2018년 일어난 미투 운동이 창작자들에게 유·무형의 영향을 주었음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이미경 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기자와 한 통화에서 "미투 운동은 2019년부터 찬찬히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2018년에 끝날 사안이 아니고 2018년은 발단이며 이제 조금 더 깊이 미투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하나씩 점검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피해자들이 재판에서 진 것이 곧 미투 운동의 패배가 아니"라는 점을 당부하며 "오히려 이는 ('비동의 간음죄' 등) 현행 법의 문제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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