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블비> 포스터

영화 <범블비> 포스터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로봇은 한때 남자아이 또는 남자 성인들에게 꿈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지난 수십 년간 유명 장난감 회사들은 남자아이들을 위한 로봇 장난감을 수없이 생산하여 그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키기도 했다. 이 판타지는 생각보다 강력해서, 장난감뿐 아니라 로봇은 많은 애니메이션, 코믹스의 소재로 쓰였고 영화까지 제작됐다. 그만큼 로봇에 대한 판타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콘텐츠다.

현대 들어 로봇에 대한 판타지는 더 이상 남자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여자 아이들도 로봇이나 AI 기술에 환호하고 관련 콘텐츠를 소비한다. 이는 아이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오늘날 로봇 콘텐츠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흥미를 끄는 좋은 소재다.

지난 2007년 첫 편이 개봉된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로봇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의 대표적인 예다. 이후에도 <퍼시픽 림>(2013), <리얼 스틸>(2011) 같은 영화들이 인기를 끌고 계속 제작되는 것만 봐도 로봇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영화 <트랜스포머> 1편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전 세계적으로 높은 흥행 스코어를 기록했다. 마이클 베이가 연출한 이 영화의 성공으로 4편까지 시리즈를 이어갈 수 있었다.

로봇 판타지를 그대로 영상화 한 <트랜스포머> 시리즈

하지만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1편을 제외하면 모든 시리즈가 이야기 구성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1편에서 로봇이 변신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훌륭히 보여줬고 청소년기 남자의 판타지를 그대로 구현하여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했고 당시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이후 후속작이 거듭되면서 스케일을 키우고 많은 로봇을 등장시켰지만, 커진 굉음과 액션 스케일에도 영화의 긴장감은 차츰 떨어져만 갔다.

무엇보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이야기의 힘과 설득력이 현저히 사라져 갔다. 게다가 남성 중심적인 판타지 위주로 영화에 담다 보니 여성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다소 불편했다. 특히 극 중 로봇은 전부 남성(목소리나 성격)으로만 묘사된다. 이런 요소들로 인해 트랜스포머는 인기를 잃어갔고, 시리즈를 이어갈 동력을 점차 상실하게 된 상황이었다.
 
 영화 <범블비> 장면

영화 <범블비> 장면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최근 새로운 <트랜스포머> 시리즈인 <범블비>가 개봉했다. 기존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프리퀄인 이 영화는 여자 주인공 찰리(헤일리 스테인필드)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영화 <범블비>는 범작일 것이란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꽤나 사랑스럽고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의 프롤로그가 시작되면 관객은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디셉티콘(악당)과 오토봇이 그들의 행성에서 엄청난 전투를 벌이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에는 <트랜스포머>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캐릭터인 옵티머스 프라임도 등장해 이목을 끈다. 사실 이 도입부만 보면 이전 시리즈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노란 차량으로 변신하는 범블비가 지구로 오게 되면서 영화는 이전 시리즈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프리퀄 <범블비>

영화 <범블비>는 규모가 큰 영화는 아니다. 찰리와 범블비가 우연히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며, 악역인 디셉티콘 로봇 2대가 등장해 벌이는 소규모 전투가 중심이 된다.

규모를 줄이면서 이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다름 아닌 주인공 찰리의 심리 묘사와 범블비를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둘의 관계다. 유능한 다이빙 선수였던 찰리는 아빠를 심장마비로 떠나보내고 아직 그 그늘 아래에 있는 소녀다. 엄마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 재혼하며 새 출발을 했지만 찰리는 여전히 아빠를 생각하며 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돈다. 찰리가 매달리는 건 아빠와 함께 고치며 운전했던 자동차를 수리하는 일뿐이다.

찰리가 아침에 일어나 아빠 사진을 보고 인사하거나, 양치하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 쉬는 장면은 그가 아직 아빠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던 중 찰리가 우연히 범블비를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 둘은 서서히 가까워진다. 특히 찰리와 범블비가 가족 이야기를 할 때 클로즈업으로 찰리가 우는 얼굴을 보여주고 바로 범블비의 얼굴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범블비가 컴퓨터 그래픽임에도 불구하고 둘의 얼굴을 통해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여기에 큰 역할을 하는 건 찰리로 등장하는 배우 헤일리 스테인필드의 연기력이다.

헤일리 스테인필드가 연기한 10대의 찰리는 영화 내내 불안정한 심리를 드러내고 가족들에게 짜증을 낸다. 그는 학교에서도 가족에게도 왕따를 당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범블비가 지구에서 배척받는 처지에 있는 것과 일치한다. 이 상황은 둘을 더욱 끈끈하게 이어준다. 두 캐릭터가 위기를 헤쳐나가고, 서로를 지키기 위해 힘을 다해 달리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과거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달리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과 범블비 둘의 캐릭터가 더욱 생동감 있게 살아 숨쉰다.
 
 영화 <범블비> 장면

영화 <범블비> 장면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주인공 찰리의 심리묘사에 집중하며 사랑스러움을 더한 영화

그리고 이 영화의 유머도 꽤나 사랑스럽다. 기억을 잃은 범블비가 찰리에게 주의 사항을 전달받으며 하는 귀여운 행동들은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찰리의 옆집 친구인 메모(조지 렌드보그 주니어)가 등장하면서 함께 벌이는 그들의 장난들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극 중 여러 상황들은 자연스럽게 관객의 마음을 파고들고 유머러스한 분위기까지 더해져 영화를 사랑스럽게 만든다. 

특히 <범블비>는 여성이 주인공을 맡았다는 점에서 기존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차별화된다. 과거 시리즈의 1편이 남자 청소년의 판타지를 구체화한 영화였다면, <범블비>는 그 판타지가 남자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10대 여성인 찰리에게는 자동차를 수리할 수 있는 기술이 있고 안목이 있다. 자동차 수리센터에서 남성 정비사 곁을 슬쩍 지나가며 수리에 적절한 공구를 역제안하는 장면은 찰리가 가진 능력을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트랜스포머>의 주인공 샘 윗위키(라이아 샤보프)가 분명한 목적 없이 로봇을 돕는 캐릭터라면, 찰리에게는 범블비를 돕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또한 그 목적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줄 알고 주변인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찰리의 구체적인 목적 안에 범블비가 명확히 들어와 있다.

영화 속 악당인 디셉티콘의 로봇으로 등장하는 두 로봇 중 하나는 여성의 목소리로 말한다. 또한 지난 시리즈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여성 로봇이 처음 등장한 것도 눈여겨 볼 점이다. 이는 과거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악당부터 주인공 로봇들까지 모두 남성의 정체성으로 구성했던 것을 돌아보게 하는데, 지난 <트랜스 포머>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 영화인지를 알 수 있게 만드는 설정이다. 덕분에 악당 로봇 둘과 범블비가 번갈아 전투를 벌이는 장면도 목소리가 달라 어떤 액션 장면인지 관객이 더 정확히 파악하 수 있어 혼란을 줄인다. 그리고 액션이 작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이 넘치는 것도 긍정적이다.

탄탄하게 쌓아 올라가는 찰리와 범블비 캐릭터

<범블비> 속 긴장감은 무엇보다 두 캐릭터의 관계가 관객이 보기에도 자연스럽게 영화 내내 탄탄하게 쌓아 올려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둘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신뢰와 감정을 공유하는 과정은 우리가 새로운 친구를 만나 '베스트 프렌드'가 되는 과정과 동일하다. 찰리와 범블비는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지켜준다. 그리고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각자의 전투를 하면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게 된다.
 
 영화 <범블비> 장면

영화 <범블비> 장면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범블비>는 찰리의 성장담이다. 영화에서 범블비는 찰리의 친구이기도 하지만 죽은 아빠의 대리인이기도 하다. 아빠의 죽음 이후 만난 범블비는 찰리에게 그만두었던 다이빙을 시도하게 만들고, 포기하고 있는 그를 계속 북돋아준다. 결국 그는 찰리를 다시 다이빙 선수로서의 가능성을 열어주게 된다. 영화 내내 찰리의 심리묘사나 관계에 대한 것들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범블비>는 찰리가 성장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영화 <범블비>는 <트랜스포머>의 성공적인 프리퀄로 보인다. 기존 시리즈가 가지지 못한 감성과 설득력을 채워 이야기를 풍성하게 했고, 1987년을 배경으로 당시 유행하던 팝송들을 영화 배경에 깔아 매력을 더한다. 또한 스필버그의 영화 < ET >(1982)를 보는 것처럼, 인간이 외계의 존재와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최고작이라고 할 만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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