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타인 포스터

▲ 완벽한 타인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모든 사람에겐 세 가지 내가 있다고 한다. 내가 아는 나, 남이 보는 나, 그리고 실재하는 나다. 사람마다 이 세 모습 사이에 크고 작은 차이가 있겠으나 괴리가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나는 들어본 바 없다. 이는 우리가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먼 사이는 물론이고 더없이 가까운 가족과 연인, 친구, 심지어는 나 스스로조차 말이다.

이재규 감독의 <완벽한 타인>은 도전적인 영화다. '타인'이라 하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의미하는데 그 앞에 '완벽한'을 붙였다. 나로부터 얼마나 단절된 사람이면 완벽한 타인인지,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 막상 영화가 시작하니 40년 지기 친구들이 등장해 부부 동반 파티를 벌인다. 사소한 고민까지 속속들이 알 법한 가까운 관계로부터 서로가 서로에게 완벽한 타인이란 사실을 이끌어내는 게 이 영화의 목적이다. 얼마나 도전적인가?

얼핏 굳건해 보이는 관계로부터 균열을 일으키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영화가 시작하고 단 15분 만에 40년 지기 친구들 사이엔 미묘한 긴장이 피어난다. 재기발랄한 영화는 관계의 약한 부분부터 두드려가며 곧장 결함을 찾아 나간다. 굳건해 보였던 관계엔 금세 금이 가고 어느 순간부턴 와장창 깨어질 듯 위태롭다.

히치콕 부럽지 않은 서스펜스의 향연
 
완벽한 타인 40년지기 친구들의 집들이 방문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섬뜩한 이야기.

▲ 완벽한 타인 40년지기 친구들의 집들이 방문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섬뜩한 이야기. ⓒ 롯데엔터테인먼트

 
두 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을 지탱하는 건 서스펜스다. 서스펜스에 대해선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을 넘어서는 설명을 떠올리기 어려우니 그의 표현을 빌려다 쓰자. 히치콕은 서스펜스를 설명하기 위해 먼저 서프라이즈의 개념부터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서프라이즈는 이런 것이다. 사람들이 포커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는데 갑자기 폭탄이 터진다. 테이블 밑에 설치돼 있던 폭탄이다. 관객들은 모두 깜짝 놀란다. 이게 바로 서프라이즈다.

다시 사람들이 둘러앉은 포커 테이블을 떠올려 보자. 전처럼 사람들은 포커 게임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관객들이 테이블 아래에 폭탄이 설치된 사실을 알고 있다. 폭탄에 달린 계기판엔 15분이란 시간이 표시돼 있다. 벽에 걸린 시계 초침은 째깍째깍 돌아간다. 관객은 긴장한다. 이게 서스펜스다.

서프라이즈는 폭탄이 터져 관객을 놀라게 하지만 서스펜스는 폭탄이 터지지 않는 동안 관객의 정신을 붙잡아둔다. 이재규 감독은 바로 이 서스펜스에 전적으로 기대어 영화를 이끌어간다. 영화가 지닌 몇 가지, 보는 각도에 따라 꽤나 치명적일 수 있는 단점들을 상쇄해가며 러닝타임을 주도한다. 능숙한 솜씨다.

누구도 다른 누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완벽한 타인 때로는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관계조차도 쉽게 깨어져나가곤 한다.

▲ 완벽한 타인 때로는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관계조차도 쉽게 깨어져나가곤 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저녁식사 시간 동안 모두의 전화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 시간 동안 오는 전화와 문자 모두를 공개하자는 게임이 서스펜스를 빚어낸다. 누구나 몇 개쯤 간직하고 있을 법한 비밀들이 테이블 아래 설치된 폭탄이다. 다른 이와 공유한 적 없는, 공유할 수 없는 크고 작은 비밀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면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은 누군가가 어김없이 상처를 입는다. 서프라이즈 폭탄이 하나 둘 터져갈 수록 테이블 위의 전화기는 더욱 강한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다음 터질 비밀이 더 큰 놈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모두를 붙잡아두는 것이다.

하나씩 터지는 폭탄과 그때마다 박살나는 관계를 통해 영화는 교훈 하나를 던진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오랜 속담과 같은, 그러니까 사람 속을 알자며 막무가내로 덤볐다가는 나부터 빠져죽을 수 있다는 교훈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관계란 우리가 그라고 믿는 사람과 나라고 믿는 이가 맺는 것이다. 그러니 애써 진정한 그와 나의 모든 걸 속속들이 캐내봤자 관계의 진전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는 타인에 대한 우리의 이해라는 게 얼마나 얄팍한지를 인정하게끔 한다. 우리가 이토록 불완전한 이해로부터 얼마나 무거운 관계를 쌓아나가는지도. 정말이지 누구도 다른 누구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심지어는 나 스스로조차.
 
완벽한 타인 우리는 매일 들고 다니는 휴대폰보다 서로를 모르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스스로에 대해서도.

▲ 완벽한 타인 우리는 매일 들고 다니는 휴대폰보다 서로를 모르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스스로에 대해서도. ⓒ 롯데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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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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