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한국 피겨에 본격적인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23일 막을 내린 '2018 KB금융 피겨스케이팅 회장배 랭킹대회'에서 2000년 이후에 출생한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대주들이 대거 시상대에 서면서, 한국 피겨를 이끌어 나갈 재목들의 얼굴이 바뀌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차준환의 갈라직후 모습

차준환의 갈라직후 모습 ⓒ 박영진

 
베이징 세대 본격 약진

이번에 남녀 1그룹 우승을 차지했던 차준환(17·휘문고)과 임은수(15·한강중) 등은 모두 2000년 이후에 태어난 매우 어린 선수들이다. 특히 여자 1그룹에서 10위 이내에 든 선수 가운데 무려 9명이 모두 2000년대에 태어났으며, 맏언니인 박소연(21·단국대)만이 97년생으로 나이가 가장 많았다.
 
특히 베이징에서 전성기를 맞이할 선수들인 2003~4년생 선수들이 대거 시상대에 점령했는데 1위에 오른 임은수를 비롯해, 2위였던 유영(14·과천중), 김예림(15·도장중) 등이 모두 이때 태어났다.
 
 임은수의 갈라쇼 모습

임은수의 갈라쇼 모습 ⓒ 박영진

 
더욱 놀라운 것은 '베이징 트로이카'로 불리는 이들보다 더욱 어린 선수들이 이번에 대거 상위권에 오른 것이다. 올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에 데뷔해 메달권에 진입했던 이해인(한강중)을 비롯해, 위서영(도장중)을 비롯해, 과거 SBS의 피겨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지서연(신흥초), 이시원(과천중) 등이 모두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모두 160~170점대의 점수를 받아 유영, 김예림과도 큰 격차를 보이지 않았다.
 
 이해인의 프리 연기 모습

이해인의 프리 연기 모습 ⓒ 박영진

 
이는 곧 향후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을 두고 경쟁이 더욱 가열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쟁자들 입장에서는 더욱 피가 마르고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 평창 이후 새로운 새싹들이 지속해서 등장하면서, 한국 피겨를 이끌어 나갈 재목들의 얼굴도 새롭게 바뀌어 가고 있다.
 
얕디얕은 남자 싱글, 선수 육성 시급해

올 시즌 차준환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사상 최초로 그랑프리 메달과 그랑프리 파이널 메달까지 거머쥐면서 한국 남자피겨도 세계의 벽을 허물고 '하면 된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김연아와 같은 선수가 나온 것은 분명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국내대회 마다 출전 선수가 열 명 남짓한 남자피겨에서 차준환과 같은 정상급 기량을 갖춘 선수가 등장한 것도 매우 아이러니하다. 과거 김연아가 시니어에 올라온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국 피겨 인구에 대해 묻는 질문에 "어바웃 텐? (열명 정도?)"이라고 답했던 슬픈 현실이 지금의 한국 남자피겨다.
 
 차영현의 프리 연기 모습

차영현의 프리 연기 모습 ⓒ 박영진

 
차준환의 성장은 황무지 같았던 한국 남자 피겨에 한 줄기 희망이자 기쁨과 같다. 그러나 문제는 이후다. 차준환이 계속해서 성장하면서 국내 선수들과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고, 차준환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선수가 아직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한국 남자피겨 선수는 트리플 악셀 점프나 트리플-트리플 점프 등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아직 4회전 점프와는 거리가 멀다.
 
이들이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이 절실하다. 차준환의 선례에서 보듯 한국 남자피겨도 분명 세계 피겨에서 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번에 차준환과 함께 시상대에 섰던 차영현(15·대화중)은 190점대를 돌파했고 트리플 악셀 점프를 제외한 대부분의 트리플 점프에서 실수 없이 매끄럽게 연기를 펼쳤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매우 안정적인 연기에 한국적인 음색에 맞춰 연기하면서 큰 박수를 받았다. 이외에도 박성훈(판곡고), 변세종(경희대) 등이 트리플 악셀을 실전에서 꾸준히 도전하는 등 더디지만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이들에게 체계적인 시스템만 갖춰진다면 차준환과 같은 정상급 기량을 갖춘 선수가 등장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김연아에 이어 차준환까지 희박한 확률을 뚫고 나타난 기적과 요행만 바랄 것이 아니라, 연맹 등 체육인들이 나서 전문적인 시스템을 마련해 나가야만 한다.
 
 박소연의 프리 연기 모습

박소연의 프리 연기 모습 ⓒ 박영진

 
 
맏형-맏언니의 소중함

한편 이번 경기에서 거의 유일하게 1990년대생 출전 선수였던 여자 싱글에 박소연(21·단국대)과 남자 싱글의 이준형(22·단국대)은 각각 8위와 2위에 오르며 선전을 펼쳤다. 두 선수 모두 지난 2010년경부터 약 8년째 국가대표 타이틀을 유지해온 베테랑들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마지막을 장식했던 김연아(28)가 떠난 이후 평창까지 한국 피겨의 명맥을 이어온 주인공이다.
 
박소연은 평창을 앞두고 2016년 말 발목 골절이라는 심한 부상을 당했다. 세 번의 수술과 세 번의 올림픽 선발전을 도전했지만 아쉽게도 자신의 두 번째 올림픽 꿈을 이루진 못했다. 선수 생명에 위기가 갈 정도의 큰 부상이었지만, 이후 박소연은 꾸준히 재활을 통해 재기를 다짐했고 올 시즌에는 새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까지 공개했다. 최선의 연기는 아니었지만, 몇 차례 점프 실수가 있었음에도 국가대표 컷 마지노선인 8위에 오르면서 여전히 상당한 저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준형의 프리 연기 모습

이준형의 프리 연기 모습 ⓒ 박영진

 
이준형은 16년 만에 올림픽 티켓을 따낸 주인공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평창에 서지 못했다. 그는 베이징을 향해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끈을 동여맸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차준환이 등장하기 전 오랜 기간 함께 경쟁했던 김진서(22·한국체대)도 출전하지 않아 이준형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컸다.
 
두 선수가 소중했던 이유는 또 하나 있다. 한국 피겨 선수들은 대부분 대학에 입학하고 난 후 기량 저하나 부상 등을 이유로 은퇴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즉 대학입학이 은퇴인 셈일 정도로 대학진학 이후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들은 10년가량 태극마크를 꾸준히 달면서 기량을 유지하고 있어, 대학 진학 이후에도 얼마든지 선수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며 좋은 선례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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