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범블비>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디셉티콘과 전쟁에서 위기에 몰린 오토봇의 리더 옵티머스 프라임(피터 쿨렌 목소리)은 B-127(딜런 오브라이언 목소리)에게 지구로 가서 오토봇 조직을 재편성하란 임무를 맡긴다. 지구에 온 B-127은 인간과 디셉티콘의 공격을 받아 기억을 잃고 낡은 비틀로 변신하여 은둔하다가 우연히 찰리(헤일리 스테인펠드 분)를 만난다. 찰리는 B-127에게 '범블비'란 이름을 지어주고 둘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 범블비를 뒤쫓던 디셉티콘 셰터(안젤라 바셋 목소리)와 드롭킥(저스틴 서룩스 목소리)이 오며 지구는 위험에 처한다.
2007년 <트랜스포머>가 보여준 변신 로봇은 <반지의 제왕>의 골룸, <아이언맨>의 슈트, <아바타>의 판도라와 함께 2000년대 할리우드의 기술력을 대표한다. 전 세계 영화 팬들은 <트랜스포머>의 시각 효과에 열광했고 그 결과 7억 달러(한화 약 8천억 원)라는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속편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2009)는 8억 3천만 달러를 기록했고 3편 <트랜스포머 3>(2011)과 4편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2014)는 각각 11억 달러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는 흥행 성적과 반비례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편이 거듭될수록 각본은 앙상해졌고 폭발의 수치만 올랐다. 2017년에 개봉한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는 6억 달러라는 시리즈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마침내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 프랜차이즈의 종말을 고했다.
영화 <범블비>는 로봇 완구 '트랜스포머'를 소재로 한 여섯 번째 작품이다. <범블비>는 '트랜스포머'의 캐릭터인 범블비를 주인공으로 삼았기에 '스핀오프' 혹은 '프리퀄'로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범블비>는 전작의 연속성을 거부하고 시리즈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드는 '리부트'로 제작됐다.
▲ 영화 <범블비>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범블비>의 연출은 폭발과 액션으로 대표되는 마이클 베이 감독에서 <파라노만>(2012)과 <박스트롤>(2014)을 제작하고 <쿠보와 전설의 악기>(2016)를 연출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대가인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단순한 감독 교체가 아니다. 액션 블록버스터로 만들어졌던 '트랜스포머'를 성장 영화로 바꾸겠다는 변화를 의미한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부터 <범블비>까지 프로듀서로 참여한 로렌조 디 보나벤츄라는 "많은 사랑을 받는 범블비를 한층 더 깊이 있고 다채롭게 그려냈다"면서 "찰리와의 관계를 통해 생명력을 불어넣고 완전히 새로워진 이야기를 통해 범블비와 사랑에 빠질 기회를 선사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메가폰을 잡은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은 "범블비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충실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한다.
<범블비>는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싸움, 십대 청소년의 첫 자동차가 변신 로봇이란 상황, 변신 로봇을 추적하는 군인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범블비가 라디오의 음악을 이용하여 의사 표현을 하는 설정 등에서 <트랜스포머>(2007)와 상당히 닮았다. 각본가 크리스티나 호드슨은 <트랜스포머>를 존중하는 바탕 아래 몇 가지 키워드를 활용하여 <범블비>를 썼다. 그리고 '트랜스포머'의 이야기이자 '범블비'의 이야기이고 '찰리'의 이야기를 완성했다.
▲ 영화 <범블비>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첫 번째 키워드 '우정'이다. <범블비>는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전투에 초점을 맞추던 전작들과 달리, 인간 찰리와 로봇 범블비의 유대 관계를 중심에 놓는다. 전투 시퀀스는 두어 차례에 불과하고 규모나 로봇 숫자도 전작보다 소박한 수준이다. <범블비>에서 찰리와 범블비가 교감을 나누는 과정을 보노라면 자연스럽게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티>(1982)의 소년 엘리어트와 외계인 이티의 우정이 떠오른다. 마치 '트랜스포머'로 다시 만든 <이티>, 또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DNA를 담은 '트랜스포머' 같다.
두 번째 키워드는 '성장'이다. 찰리와 범블비는 닮은 구석이 많다. 둘은 외롭다. 또한, 기억하기를 거부하거나(찰리) 잃은(범블비) 존재다. 닫힌 상태였던 둘은 우정을 통해 마음을 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기억과 목소리를 되찾는 건 곧 자아의 획득이다.
극 중에서 영화 <조찬 클럽>(1985)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마지막엔 범블비가 그대로 따라 하는 건 단지 198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함이 아니다. 겉돌던 아이들이 마음을 터놓고 관계를 형성하며 앞으로 나갈 힘을 얻는다는 <조찬 클럽>처럼 <범블비>도 선언한다. 찰리와 범블비가 서로를 의지하며 내일로 전진한다고.
▲ 영화 <범블비>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세 번째 키워드는 '여성'이다. 이전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여성은 조연이거나 시각적 소비에 머물렀다. <범블비>는 남성이 중심이 되었던 전작을 탈피하여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찰리는 남성에게 의존하는 수동적인 인물이 아니다. 스스로 부딪히며 문제를 해결하는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다.
<범블비>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와 <고스트버스터즈>(2016)에 이어 여성이 중심에 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다.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은 '씨네플레이'와 나눈 인터뷰에서 <코렐라인: 비밀의 문>을 제작할 적에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지원을 받고자 문을 두드렸으나 "여자 주인공은 애니메이션에서 있을 수 없다. 단, 요정이거나 공주라면 가능하다"는 반응을 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런 문제들을 우리가 먼저 해결하면 다음 번엔 반응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범블비>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유리 천장을 깨기 위한 의미 있는 도전인 셈이다.
네 번째 키워드는 '눈'이다. 과거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숱한 로봇을 등장시켰지만, 그들에게선 어떤 생명력도 느껴지질 않았다. 감정을 제대로 묘사하는 장면 없이 오로지 전투 장면을 위한 CG로 소비되었을 따름이다. <범블비>는 다르다. 아마도 로봇 애니메이션의 걸작 <아이언 자이언트>(2000)에게 영감을 받은 듯 보이는 범블비의 '눈'엔 감정이 실려 있다. 범블비는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표현하는 존재다. 영화는 범블비의 감정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가득하다.
▲ <범블비> 영화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다섯 번째 키워드는 '1980년대'다. <범블비>의 시간적인 배경은 1987년이다. 왜 1980년대로 갔을까? 우선 <범블비>의 전개가 휴대폰이 보급되지 않았던 1980년대에 알맞다. 미드 <기묘한 이야기>가 일으킨 1980년대 복고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트랜스포머> 애니메이션은 처음으로 방송되었던 시기가 1984년임을 기억한다면 영화가 첫 '트랜스포머'의 시간,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범블비>는 21세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한 자기반성이자 문제 제기로 볼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줄곧 제작했던 사람이다. 당연히 형편없는 블록버스터를 만든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더 포스트>(2017)로 현재의 언론을 조명하고 <레디 플레이어 원>(2018)으로 현재의 인터넷을 다루었다. 이젠 <범블비>로 현재의 할리우드를 돌아본다. 그리고 '엠블린' 영화들과 <이티>를 기억하며 변화를 꾀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범블비>는 변신 로봇의 즐거움, 우정과 성장으로 써내려간 서사,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 1980년대 풍경과 근사한 사운드 트랙으로 프랜차이즈 팬들에게 향수와 새로움, 재미와 감동을 안겨준다. 이런 리부트는 대환영이다. 2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