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라는 게 참 어렵다. 선수들은 국가대표로 선발돼 국제대회에 나가면 당연히 좋은 성적을 기대한다. 하지만 그 선수의 소속팀 관계자나 팬들, 그리고 선수들 가족 입장에서는 성적보다 그저 다치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원하곤 한다. 물론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큰 대회를 유치하는 조직위원회에서 대회기간 동안 '무사고'를 바라는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스포츠는 단순히 정해진 룰 안에서 승부를 겨루는 단순하고 정정당당한 규칙 외에도 많은 이야기와 사연, 그리고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때로는 스포츠 팬들을 실망시키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과연 올 한 해 팬들을 실망시켰던 2018년 한국 스포츠 최악의 장면은 어떤 게 있었을까.

독일전은 승리했지만 월드컵 도전은 또 실패했다
 
장현수 위로하는 손흥민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1-2로 경기가 종료되자 손흥민이 장현수를 위로하며 안아주고 있다. 2018.6.24

지난 6월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1-2로 경기가 종료되자 손흥민이 장현수를 위로하며 안아주고 있다. ⓒ 연합뉴스

야구에서는 아직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세계 야구선수들의 '꿈'으로 자리잡지 못했지만 축구에서 월드컵이 가진 위상은 이와 비교할 수 없다. 러시아 월드컵의 킬리안 음바페(파리 생제르맹)처럼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인지도가 부쩍 올라가는 선수도 있고 독일 대표팀처럼 월드컵에서의 부진으로 명성이 추락하기도 한다. 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를 통해 한국 팬들도 가슴 깊이 느꼈던 부분이다.

2000년대 한국 축구의 성공시대는 박지성이라는 걸출한 스타의 커리어와 함께 한다. 2002년 첫 출전한 월드컵에서 한국을 16강으로 이끄는 환상적인 골을 기록하며 스타로 떠오른 박지성은 유럽 진출 후에도 성공가도를 달렸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프랑스전 동점골을 기록했던 박지성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주장완장을 차고 역대 첫 원정 16강을 견인했다. 한국 축구는 박지성이 있었을 때 한 번도 월드컵에서 부끄러운 성적을 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박지성은 2011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을 떠났고 한국은 박지성 없이 두 번의 월드컵을 치렀다. 그리고 한국 축구는 월드컵 무대에서 아직 박지성의 그늘을 지울 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끌었던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2패로 탈락한 한국은 신태용 감독 체제로 나선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한국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세계 최강 독일을 격파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지만 독일전 승리가 스웨덴, 멕시코전 연패를 뒤집진 못했다. 한국은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던 스웨덴전에서 단 하나의 유효슈팅도 기록하지 못했고 멕시코전에서도 경기 후반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의 개인능력으로 한 골을 만회했을 뿐이다. 결국 한국은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고 이는 '박지성 시대'를 경험했던 축구 팬들에게는 결코 만족하기 힘든 결과였다.

감독과 협회, 정치인들이 합작해 야구계에 끼얹은 찬물
 
야구대표팀 감독 사퇴하는 선동열 감독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위원회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직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11월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위원회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직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야구선수들에게 아시안게임은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실제로 한국 야구는 프로 선수들의 출전이 허용된 1998년 방콕 대회부터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까지 6번의 아시안게임에서 5개의 금메달을 쓸어 담았다. 따라서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해가 되면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발되기 위한 군 미필 선수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다.

이번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한국은 목표했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선동열 감독은 군 미필 선수를 9명만 데려가면서 KBO리그의 정예 멤버로 명단을 꾸렸고 대만과의 첫 경기 패배에도 일본을 연속으로 꺾으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3연패를 달성한 한국야구 대표팀은 팬들에게 전혀 환영 받지 못했다. 이른바 '오지환 사태'로 불리는 선수 선발 과정에서의 잡음 때문이었다.

20대 후반임에도 아직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LG트윈스의 오지환, 삼성 라이온즈의 박해민은 리그에서 인상적인 성적을 내지 못했음에도 대표팀에 선발됐다. 선동열 감독은 대표팀 선발과 관련해 논란이 생기자 대주자와 대수비, 대타 등으로서 오지환과 박해민의 활용가치를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오지환과 박해민은 아시안게임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무임승차'를 한 꼴이 됐다.

대표팀 선발과 관련된 논란은 정치권으로 번져 선동열 감독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국회에 출석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리고 한국 야구 최초의 대표팀 전임 감독이었던 선동열 감독은 지난 11월 14일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코칭스태프의 매끄럽지 못한 선수 선발 과정과 감독에게 모든 책임을 떠안긴 협회, 그리고 정치권의 안일한 태도가 불러온 2018년 한국 야구의 커다란 상처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어진 폭력, 올림픽 영웅이 겪은 고통의 시간들   
 
질문에 답하는 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가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의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해 폭행 피해 사실 진술을 마치고 법원을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조 전 코치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을 상습 폭행한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 질문에 답하는 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가 12월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의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해 폭행 피해 사실 진술을 마치고 법원을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조 전 코치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을 상습 폭행한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 연합뉴스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전. 1바퀴를 남겨두고 중국에 이어 2위로 달리던 한국은 마지막 직선주로에서 최종 주자가 아웃코스로 중국 선수를 추월하며 극적인 역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이 선수는 소치 올림픽 후에도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 월드컵 시리즈 등에서 수많은 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으로 활약했다. 바로 '천재소녀' 심석희가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심석희는 고향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을 불과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충격적인 사건의 주인공이 됐다. 초등학교 때부터 심석희를 지도했던 조재범 코치에게 폭행을 당해 대표팀에서 이탈한 것이다. 심석희는 조 코치가 직무정지를 당한 후에야 다시 대표팀에 복귀했고 평창 올림픽에서 여자 3000m 계주 2연패를 이끌었다. 하지만 개인전에서는 1000m에서 실격, 1500m에서는 중심을 잃고 넘어지며 허무하게 탈락했다.

올림픽이 끝난 후 조재범 코치는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 받고 구속수감됐지만 심석희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17일 항소심 2차 공판에서 피해자 신분으로 출석한 심석희는 충격적인 증언들을 쏟아냈다. 심석희는 쇼트트랙을 시작했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상습적인 폭행을 당했고 아이스하키채로 맞아 손가락 뼈가 골절된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올림픽에서의 부진도 폭행으로 인한 뇌진탕 후유증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사람들은 "지금이 때가 어느 땐데 맞으면서 운동을 하겠어"라고 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무대인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포함해 4개의 메달을 따낸 선수조차 지도자의 상습적인 폭력 앞에 자유롭지 못했다. 지금도 어딘가엔 '선수를 위한 것'이란 이유로 지도자의 폭력 속에 노출된 또 다른 심석희가 있을지 모른다. 동·하계 올림픽을 모두 개최하며 스포츠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한국 스포츠가 가진 부끄러운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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