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처음에는 부족하고 서툴지만 실수를 반복하면서 성장하게 마련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그냥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성공조차도 단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영화계에서 계속해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했다. 계속해서 비범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거장들의 첫 영화는 그들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을까? 그들은 과연 떡잎부터 달랐을까?" -기자 말-
 
 영화 <리노의 도박사>의 포스터.

영화 <리노의 도박사>의 포스터.ⓒ Goldwyn Films

 
1997년 <부기 나이트>가 세상에 나왔을 때, 포르노 산업을 통해 시대를 통찰한 감독의 탁월한 연출에 사람들은 놀랐다. 그가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넘어서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이해와 감각이 얼마나 뛰어난지, 영화를 본 관객들은 너도 나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폴 토마스 앤더슨. 이제 겨우 스물일곱의 젊은 감독은 불과 일 년 만에 내 놓은 자신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또 한명의 위대한 감독이 탄생했음을 알렸고,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는 한 번의 추락 없이, 다양하고 깊어진 영화들로 채워지고 있다.
 
 영화 <리노의 도박사>의 한 장면

영화 <리노의 도박사>의 한 장면ⓒ Goldwyn Films

 
이른 아침, 어느 식당 앞에 한 젊은 남자가 쭈그리고 앉아 있다. 지난 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의 어깨는 절망으로 짓눌려 있고, 앞으로 다가올 무수한 날들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몰라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이때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그를 향해 다가가고, 남자의 발걸음에 맞춰 카메라도 함께 다가가며 영화가 시작된다.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끌고 가는 그의 이름은 시드니(필립 베이커 홀), 우리는 그와 함께 지난 밤, 도박으로 가진 것을 모두 잃은 존(존 c. 라일리)이의 인생 속으로 들어간다. 

시드니는 커피 한 잔 사마실 돈 조차 없는 존에게 아침식사를 사주며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들을 이어간다. 

"만약 내가 자네에게 50달러를 준다면 그 돈으로 무얼 하겠나?" 
"아마도, 집에 가는 버스표를 사지 않을까요?" 
"그럼 50달러는 그냥 사라져버리잖아."


그래서 50달러를 준다는 말이야? 50달러로 뭘 어쩌라는 거지? 존은 깔끔한 양복에 진중해 보이는 시드니가 베푸는 선의에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저의는 무엇일까? 혹시 절박한 사람들을 이용해서 이익을 취하거나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려는 노인네가 아닐까? 존은 의심을 지울 수 없음에도 시드니를 따라 나선다. 엄마의 장례를 치를 돈을 모두 잃었으니 그 정도의 의심과 불안은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존의 경계심은 느슨해지고, 카지노에 도착해서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시드니를 따르게 된다. 돈이 절실했던 존에게 시드니의 가르침은 구원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영화 <리노의 도박사>의 한 장면

영화 <리노의 도박사>의 한 장면ⓒ Goldwyn Films

 
2년의 세월이 흐르고 시드니와 존은 아버지와 아들 같은 관계로 발전한다. 이들은 호텔에 머물며 카지노를 일터 삼아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존에게 지미(사무엘 L. 잭슨)라는 새로운 친구가 생기고, 카지노에서 서빙을 하는 클레멘타인(귀네스 펠트로)과의 관계가 발전하면서 이들의 평온했던 일상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시드니는 꽤나 미스터리한 사람이다. 그가 이혼을 했고, 자식은 두 명이 있으며 가족들과 왕래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 말고, 우리는 그의 인생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그의 옷차림과 단정한 머리, 게다가 과묵한 성격은 그가 허튼 짓이라고는 절대 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도박사라고 하면 돈을 딸 때의 그 짜릿한 쾌감을 즐길 것 같지만 시드니의 일상은 마치 외부와 단절된 고독한 작가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신문을 읽으며 홀로 식사를 하고, 침묵 속에서 홀로 술을 마신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서빙을 하는 여직원들에게 그 흔한 농담 한 번 던지지 않고, 주사위를 던지며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는 홀로 침착하게 베팅을 건다. 한 마디로 그는 고독한 남자다. 그렇다면 그가 존을 곁에 두고 자신의 도박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것은 외로움 때문일까? 
 
 영화 <리노의 도박사>의 한 장면

영화 <리노의 도박사>의 한 장면ⓒ Goldwyn Films

 
존과 클레멘타인이 위기에 빠졌을 때 이들을 돕는 것 역시 시드니다. 그는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고서까지 이 젊고 어리석은 커플이 벌인 말도 안 되는 모텔 납치극(부업으로 매춘을 하던 클레멘타인의 고객이 돈을 지불하지 않자 그를 폭행하고 납치를 한 것이다)에서 이들을 구해주고, 이들이 도피 여행을 떠나있는 동안 사건을 조용히 정리하는데 이토록 존에게 헌신적인 시드니의 모습은 처음에 그의 불순한 저의를 의심했던 것이 미안할 정도다. 하지만 그에 대한 궁금증은 (오히려) 더욱 증폭된다. 도대체 왜 그는 존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것일까? 

첫 만남에서부터 불쾌한 기운을 내뿜던 지미가 시드니의 과거를 알고 있다며 그를 협박할 때 우리는 '그럼 그렇지!' 손뼉을 치는 동시에, 지미가 묘사하는 시드니의 과거가 그의 현재와 너무도 달라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침묵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전후사정은 생략되었지만 어쨌든 결론은 그가 존의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였다는 사실이다. 
 
 영화 <리노의 도박사>의 한 장면

영화 <리노의 도박사>의 한 장면ⓒ Goldwyn Films

 
모든 것을 잃고 식당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존에게 그가 다가간 것은 선의가 아니라 죄책감에서였다. 자신이 존의 인생에서 앗아간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든 채우려했던 시드니의 책임감은 존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부성애로 깊어지게 된다. 가족이기에, 사랑하기에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고 그것이 요구하는 행동들을 해 나감에 따라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이다.

존과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었건 간에 존은 이제 그의 아들과 다름없는데, 지미의 협박은 어쩌면 그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상기시킨다. 어리석지만 선하고, 자신을 영웅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받드는 존을 그리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는 극단의 선택을 취한다. 

지미를 죽이고 떠나기로 한 그의 선택은 단호하고 행동에는 주저함이 없다. 모든 일을 끝내고 이른 아침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는 시드니의 주름지고 차가운 얼굴은 존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 더 피로하고 무거워 보이는 정도? 한 번도 흐트러진 적 없었던 시드니의 완벽한 옷소매엔 지난 밤 살인의 흔적이 남았고, 그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리노를 떠나 어디로 갈까? 그의 다음 행선지를 알려주지 않고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리노의 도박사>의 한 장면

영화 <리노의 도박사>의 한 장면ⓒ Goldwyn Films

 
그를 따라 존의 인생으로 들어간 줄 알았는데, 우리가 줄곧 본 것은 시드니의 인생이었다.(감독이 처음에 원했던 제목이 <시드니>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중단편 영화였으면 인물과 이야기에 대한 임팩트가 훨씬 강렬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몇몇 장면(특히 납치극이 벌어지던 모텔 씬) 같은 경우는 불필요하게 길다는 감상을 지울 수가 없다. 시드니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캐릭터가 비교적 평면적이라는 아쉬움도 남지만 굉장히 세련된 영화의 리듬(편집과 카메라의 움직임)에서 감독의 타고난 감각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가능성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놀라운 결과물 <부기 나이트>로 증명된다. 그리고 2년 후 <매그놀리아>라는 대작이 만들어지고, 그의 이름 앞에는 천재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늘 함께 하게 된다. 

아무리 대단한 재능이라도 특히 영화처럼 간섭(제작자, 투자자, 잘나가는 배우, 등등의)이 끊이지 않는 공동작업에서 영화 제작의 전 과정을 컨트롤하고 꾸준히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제작 과정의 어려움을 알고 싶다면 폴 토마스 앤더슨이 존경해 마지않았던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플레이어>.1992를 보시길!) 하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은 첫 작품 이후로는 자신의 모든 영화에 제작자로 참여하면서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어 오고 있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하나이다. 화려한 개인기들로 자신의 재능을 뽐내던 영화 천재는 이제 조금의 움직임만으로도 캐릭터와 이야기의 깊이를 전달하는 우아한 거장이 되었다. 

그의 신작은 영화 팬들을 언제나 흥분시킨다. 이 다음은 뭘까? 이 이상은 없겠지? 영화를 보고나면 괜한 짓궂음일 뿐인 무의미한 물음표들은 사라지고 수많은 느낌표들이 가슴을 채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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