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드라마 <최고의 이혼> 포스터

KBS2 드라마 <최고의 이혼> 포스터ⓒ KBS


영화와 달리, TV만 켜면 만날 수 있는 드라마는 내겐 분주한 일상에서 쉼을 제공해주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드라마를 통해 기분을 전환하기도 하고, 감동으로 따스해지는 경험도 하고, 현실의 문제들을 깨닫기도 한다.

올해 나는 많은 드라마를 만났다. 2018년의 시작은 tvN <마더>와 함께 했다. <마더>는 가정폭력의 문제와 모성을 다뤄 묵직한 감동을 안겼다. 봄엔 tvN <라이브>의 홍일지구대 대원들과 함께 한국사회의 현실을 돌아봤고, 초여름엔 JTBC <미스 함무라비>의 경쾌하면서도 깊이 있는 메시지와 함께 보냈다.

그리고 올 가을. 마침내 나는 KBS2 <최고의 이혼>을 만났다. 앞의 세 드라마도 모두 '인생작'이라 할 만큼 좋았지만, <최고의 이혼>은 좀 더 특별했다. <최고의 이혼>의 큰 줄기는 휘루(배두나)-석무(차태현), 유영(이엘)-장현(손석구) 커플이 이혼과정을 통해 개인적, 관계적 성장을 이뤄내는 이야기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통해 상처를 치유해가는 다른 드라마와 달리, 관계에서 거리를 두면서 자신을 알아가고 성장해가는 모습이 매우 신선하면서도 타당하게 느껴졌다(관련 기사 : 결혼생활이 힘들 때, 배두나의 이 말들을 기억할 것 같다 http://omn.kr/1dxbx). 하지만, 내가 이 드라마를 올 해 최고의 드라마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스토리에 있지 않다.

<최고의 이혼>은 스토리를 전개해 가는 내내 따뜻하면서도 열린 시선으로 가족을 바라보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취했다. 또한 정답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가족이 무엇인지에 대해 심도 있는 질문을 던졌다. <최고의 이혼>이 슬쩍 흘리듯 깨닫게 해 준 가족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우린 밥해주다가 인생 종쳤어, 가족이란 게 그런 거였다구"

23회에서 석무의 할머니 미숙(문숙)은 휘루(배두나)에게 친구가 입원한 요양원에 가봐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친구가 치매에 걸렸는데 계속 울면서 뭐라는 줄 알아? 밥하러 가야 한다고. 울면서 계속 밥해주러 가야 한다고. 우린 밥해주다가 인생 종쳤어. 가족이란 게 그런 거였다구." 이는 정서적인 교감보다 역할과 기능만을 강조하는 가족의 모습을 비추는 대사였다.

가족의 시작은 부부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마음, 즉 깊은 정서적 연결로 가족이 탄생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정서적인 공동체에서 기능적인 공동체로 탈바꿈하는 가족이 많아진다. 전통적인 성역할에 근거해, 남편은 돈을 벌어 오는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 여기고, 아내는 가족들의 바깥 생활을 돕기 위해 가사를 전담하며 자신의 삶은 뒤로 미룬다. 아이들은 그저 학생답게 열심히 공부할 것만을 요구받는다. 이런 가정은 겉으로 볼 때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가정에서 정서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사람들 대다수가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끊임없는 공허감에 시달린다.

드라마 속 석무의 가족도 이랬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최정우)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돈을 번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군림했고, 순종적이었던 어머니(남기애)는 소리 없이 주부의 역할을 수행했다. 아이들 석영(윤혜경)과 석무는 이런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돌보지 못한 채 자란다. 각자의 기능에는 충실했지만, 정서적 교감할 수 없었던 이들은 결혼 후에야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데 서툴렀음을 깨닫는다.

다행히 석무의 부모는 자식들의 이혼과정을 거치면서 이런 문제점을 알아챘고, 너무 늦기 전에 이를 수정할 수 있었다. 드라마의 마지막 회에서 석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밥을 차려주는 장면은 드디어 이 가정이 역할과 기능의 족쇄에서 벗어나 정서적으로 교류할 수 있게 됐음을 알리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서 석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처음으로 생기 넘치는 표정을 짓는다. 과거의 무표정한 얼굴로 할 일만 하던 모습과, 살아 있는 감정을 나누는 모습. 어느 쪽이 가족다운 것일까?

"밖에서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내가 집에만 가면 죽일 년 되는 거"
 
 드라마 <최고의 이혼>의 한 장면. 이혼 후 혼자사는 석무의 할머니 미숙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마루와 수경, 휘루와 석무가 함께 모였다.

드라마 <최고의 이혼>의 한 장면. 이혼 후 혼자사는 석무의 할머니 미숙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마루와 수경, 휘루와 석무가 함께 모였다.ⓒ KBS

 
3회 휘루 동생 마루(김혜준)는 책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한다.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가족이라는 게 대체 뭘까요? 나 이 기분 알거든요. 밖에서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내가 집에만 가면 죽일 년 되는 거." 이 대사를 듣자마자 학창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학교에 가면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 여겨졌지만, 집에만 오면 아버지의 잔소리에 위축되고 못난 사람이 된 것 같았던 그 기분. 아마 나와 마루만 아는 느낌은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유난히 중시하는 한국 사회는 예로부터 '체면'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왔다. 또한 가족 구성원을 나와 너로 구분하지 않고 모두 '우리'로 통칭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가족 구성원 사이에 동일시가 강하게 일어남을, 나아가 가족을 '나의 체면'으로 여기기 쉬움을 의미한다.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사회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서적으로 위안을 받는 휴식처라기보다는, 사회에서 나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처럼 다뤄져 왔다.

부모는 자식의 성적이나 직업 등이 변변치 않을 경우 창피하다 여기고, 자식은 부모의 직업을 부끄러워한다. 바깥에서는 활기차고 사랑받는 느낌이 들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이런 가족 구성원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오히려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일터보다도 편안하지 못한 가족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드라마 속 석무의 원가족(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가족), 마루의 원가족, 수경(하윤경)의 원가족은 이런 패턴을 보여줬다. 석무 아버지는 서울대를 나와 보안업체 일을 하는 석무를 '창피하다'며 늘 나무라고, 마루는 성격이 유별나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냉대를 받는다. 수경 역시 자신의 성정체감을 가족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집안의 '창피한 존재'가 되어 내쳐진다.

반면 남남인 수경과 마루, 석무의 할머니는 카페에서 함께 일하며 서로를 보살피면서도, 각자의 영역을 존중해주며 지낸다. 생물학적, 법적으로 연결된 가족이지만 서로를 체면치레로 여기는 모습과 완전히 다른 남이지만 서로 보듬으며 존중하는 모습. 23회 "잘 생각해봐요. 어디가 더 가족그림인가"라는 석무 어머니의 대사는 예사롭지 않았다.

"이혼은 둘이 하는 게 아니잖아요"
 
 휘루와 석무는 이혼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중 양가가 함께 한 가족사진을 촬영한다.

휘루와 석무는 이혼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중 양가가 함께 한 가족사진을 촬영한다.ⓒ KBS


드라마에서 석무와 휘루는 이혼을 결정한 후 가족들에게 알리는 문제로 고민을 한다. 서로 대화가 엇나가고 비난만 하던 커플이 가족들에게 알리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대화다운 대화를 시작한다. 가족들이 모두 이혼 사실을 알게 되는 드라마의 말미가 될 때까지 이들은 가족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간다. 이처럼 가족들은 부부의 사랑을 이어주는 보호막이자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는 내내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왜 이혼을 가족에게 알리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일까? 왜 성인 남녀가 숙고해 결정한 이혼인데도 가족의 허락이 필요한 걸까? 하는 질문이었다. 드라마에서 휘루와 석무의 이혼을 맞닥뜨린 가족들은 다짜고짜 소리부터 지르며 반대하려 든다. 이런 부분들은 과거 대가족 시절의 문화가 여전히 핵가족이 대세인 현재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요즈음 한국의 가정은 대다수가 핵가족이다. 과거처럼 집안끼리 결혼을 결정짓는 일은 흔치 않다. 자율적인 연애와 사랑에 기초해 부부가 되고 가족을 구성한다. 그렇다면, 가정의 중심은 부부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그려졌듯, 한국사회에서는 부부중심의 가정에서조차 원가족에서 부여받은 아들과 딸, 사위와 며느리로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시된다. 이는 유교적 대가족 문화를 여전히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결혼한 후에도 아들과 딸의 역할을 우선시하며 정작 중요한 부부관계는 가꾸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과도하게 부여받는 며느리와 사위 역할은 종종 부부관계를 위협하곤 한다. 이런 문화 때문에 드라마의 휘루와 석무 역시 이혼 자체보다 아들과 딸, 사위와 며느리로서 양가 부모를 실망시키는 것을 더 두려워했을 것이다.

다행히 휘루와 석무는 부모의 반응을 두려워하면서도 각자의 부모에게 "나 어린애 아니야.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부모 역시 처음엔 감정적으로 나왔지만, "서로를 승격시키면서 살고 있는지"(휘루 아버지, 23회)를 생각해 보고 "애들 인생은 애들 인생이야, 우리 손 벗어났어요"(석무 어머니, 28회)라고 말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둘은 사위와 며느리의 역할에 갇히지 않고 보다 독립된 사람으로 성장하고 관계를 발전시켜갈 수 있었을 것이다.
 
 KBS 2TV 드라마 <최고의 이혼>의 한 장면. <최고의 이혼>에서 남기애는 배두나의 이혼을 이해하려는 엄마 역으로 분했다.

KBS 2TV 드라마 <최고의 이혼>의 한 장면. 이혼을 하겠다는 아들 부부를 인정하며 석무 엄마(남기애)가 남긴 대사가 마음에 꽂혔다.ⓒ KBS

 
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와 내 주변의 가족들을 비춰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가 남이지. 모두가 다 남이지. 남이 만나서 친구도 되고 부부도 되고 가족도 되지만, 모양만 다른 거지 결국 다 남인 거지." 9회 미숙이 남긴 이 대사가 가족 문제의 핵심을 담고 있음을.

가족의 친밀감이 획일성을 강요하는 것으로 변질될 때 즉, 가족 구성원이 서로 다른 개인임을 망각할 때, 가정 안에서 정서적 교류는 사라지고, 가족은 구성원의 체면을 유지해주는 도구가 되어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또한, 결혼해 자녀가 꾸린 새로운 가정과 부모의 가정을 분리하지 못할 때 가족의 중심이 되어야 할 부부는 설 자리를 잃는다. 반면 마루, 수경, 석영과 석영의 아들로 구성된 가족처럼 서로의 '다름'과 '거리'를 존중하는 가족은 정서적으로 잘 연결되어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준다.
 
이렇듯, <최고의 이혼>은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열린 시각으로 가족의 의미를 조명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드라마 속 가족과 인물들의 변화는 열린 시선 덕분에 더 매력적이고 감동적이었다. 내가 올해 최고의 드라마로 <최고의 이혼>을 꼽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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