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의 여러 문제 가운데 하나로 지적돼온 것이 '후속 보도'의 취약성이다. 한 번 혹은 한때의 보도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추가 취재 및 후속 보도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대개 새 이슈가 기존 이슈를 덮기도 하고, 더 파급력 있는 사건이 터지기도 하면서 흐지부지되는 사건도 부지기수다. 가끔 어떤 사건의 결말이 궁금해 기사를 검색해 보기도 하지만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는 사건도 꽤 있다.

그런데 지난 11일과 18일 2회에 걸쳐 연말특집으로 방송된 MBC < PD수첩 >에선 올 한 해의 굵직한 사건들을 재조명하고, 추가 취재해 후속 보도하면서 많은 시청자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뿐만 아니라 보도를 통해 해결되거나 변화된 사건도 적지 않음을 알렸다.   
 
 부동산 강의에서 수강생들은 부가세 포함 1100만원의 수강료를 내고 강의를 들었다.

부동산 강의에서 수강생들은 부가세 포함 1100만원의 수강료를 내고 강의를 들었다.ⓒ MBC

 
지난 10월 2부작으로 방송된 <미친 아파트값의 비밀> 이후 방송 내용에 대한 항의가 나오거나 다른 의견이 제시됐다. 그러나 18일 방송에 따르면 부동산 강의를 중단한 강사가 나왔다. 또 방송 이후 주택임대 사업자의 재산세·양도소득세·종합부동산세 등 세제 혜택을 폐지하는 법안을 박주현 바른미래당 의원이 발의하기도 했다. 국세청이 부동산 스타 강사 21명의 세무조사에 착수, 고액 강의료 탈세 혐의와 불법 다운 계약서가 드러나기도 했다.   

국회의원의 해외출장비와 특수활동비, 국회사무처 문제를 다룬 <국회는 시크릿 가든> 편을 통해 특활비 문제가 공론화됐고, 이는 지난 8월 중순, 특활비 폐지로 이어졌다. 지난 5월 초 방송된 조계종 비리 의혹 제기를 통해 설정 스님이 총무원장에서 사임하기도 했다. 설정 스님은 서울대 졸업 학력 위조와 은처자 의혹 등이 제기됐다. 

제작진은 한국전력 협력업체가 한전으로부터 밀린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하자 직접 한전 홍보팀과 접촉해 관련 답변을 듣기도 했다. 취재에 응한 한전 홍보팀은 "공사대금 1700억 원을 향후 3차례에 걸쳐 지급하겠다"고 답변했다. 

방송에 따르면, 이들 협력업체는 지난 9월 위험의 외주화를 다룬 <한국전력의 일회용 인간들> 취재에 협조했다가 한전으로부터 공사대금을 약 4개월간 받지 못하는 보복을 당했다.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감전이나 추락사고 같은 업무상 재해를 많이 당하지만 적절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지난 10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사고가 또 다시 일어났다. 
            
방송은 관련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와 방송이 아무리 많아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실천하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린 셈이다. 위험의 외주화는 사실 해묵은 문제 제기다. 이것을 개인의 불운으로 치부하며 방관한다면 고 김용균씨 같은 이의 죽음은 다시 나타날 수밖에 없고, 우리는 공범이 될 수밖에 없음을 그의 죽음은 말하고 있다. 

방송을 통해 문제 제기는 했지만 여전히 해결이 더딘 문제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가 가장 더딘 분야가 노동 및 기업 문제, 여성인권, 종교 분야라는 것을 < PD수첩 > 연말특집이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특히 종교 분야는 비리나 잘못이 있어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성직자를 신의 대리자쯤으로 여기는 일부 신도들의 왜곡된 믿음으로 인해 신도들의 집단 항의 및 소송 등이 뒤따르곤 한다. 그럼에도 < PD수첩 >은 프로그램이 처음 생긴 1990년부터 현재까지 종교 관련 비리를 꾸준히 취재·방송해왔다.
  
 1999년 MBC PD수첩 방송 중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이 방송사에 들이닥쳐 방송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1999년 MBC PD수첩 방송 중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이 방송사에 들이닥쳐 방송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MBC

           
앞서 밝혔듯 방송 보도를 통해 설정 스님은 물러났지만 성폭력·상습도박 등 의혹의 중심에 선 여타 스님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 PD수첩 >에 따르면 < PD수첩 >에 제기된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은 현재까지 총 6건으로, 모두 기각됐다. 그러나 1999년 5월 방영된 이재록 만민중앙교회 목사의 비리에 관한 방송 편에서 교회 측 주장이 일부 인용되면서 이 목사의 성폭력 의혹 제기 부분이 편집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방송 중 교회 신도들이 MBC 주조정실에 난입해 방송을 중단시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성폭력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록 목사는 지난 11월 1심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법원은 이 목사의 성폭력 의혹이 방송되면 그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다며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이후 더 많은 피해자가 양산됐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MBC PD수첩 방송 화면 캡처.

MBC PD수첩 방송 화면 캡처.ⓒ MBC

   
올해는 미투 운동이 크게 촉발된 한 해로 기억될 해라고 할 수 있다. < PD수첩 > 제작진은 연말특집을 통해 미투 운동 관련 보도의 성과에 대해 자부심을 보였다. 김기덕 감독과 배우 조재현을 다룬 <거장의 민낯> 편과 <고 장자연> 편이 그것이다. < PD수첩 > 제작진은 일련의 보도에서 새로운 사실을 보충 취재해 널리 알렸다. 특히 <고 장자연> 편에선 관련자들의 실명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해외 언론의 경우 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일찌감치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이름은 물론 거주지와 머그샷(Mug Shot, 피의자 전신사진) 등이 여과없이 공개된다. 경찰이 사건 수사 단계에서 언론에 피의자 정보를 넘기면 언론이 해당 정보를 받아 보도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이것은 해외 특파원 경험이 있는 기자들이 흔히 언급하는 것들이다. 즉 재판에 넘겨지지 않아도 수사 단계에서 이미 피의자 신상을 일반에 공개하는 것이다. 이는 범죄 피의자의 인권보다 시민의 알 권리 및 범죄 재발 방지 등 공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수사기관이 피의사실 공표나 수사정보 누설 등 사실상 사문화된 법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관련 정보 공개에 다소 보수적이다. 수사기관이 그렇다 보니 언론도 오랫동안 그런 관행을 만들고 따랐다. 그런 상황에서 필자는 < PD수첩 >의 관련자 실명 공개가 용기있고 혁신적인 행위로 느껴졌다. 개인적으론 앞으로 보다 많은 국내 언론이 피의자 실명을 공개하는 보도를 해나가길 바란다.          
 
 PD수첩 제작진과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이 나눈 대화 내용. 권 전 장관은 이날 방송에서 고 장자연씨를 술자리에서 만난 것으로 지목됐다.

PD수첩 제작진과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이 나눈 대화 내용. 권 전 장관은 이날 방송에서 고 장자연씨를 술자리에서 만난 것으로 지목됐다.ⓒ MBC

 
촛불 혁명과 정권 교체 이후 올해에도 굵직한 사건이 많았다. 특히 사법농단 사건의 충격파가 컸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현재 소재를 파악할 수 없고, 관련자 중 구속된 법관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유일하다. 법관 8명에 대한 징계가 결정됐지만 시민들의 요구와 눈높이에 한참 못 미친다. 이외에도 주요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 요구가 절실하지만 얼마나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그동안 떠들썩한 보도 뒤 얼마간 바싹 엎드려 있던 가해자 혹은 비리 의혹이 제기된 권력자가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거리를 활보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언론이 후속 보도를 게을리하는 사이 사람들에게 잊히면서 예전의 지위와 권력을 회복하곤 했다.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언론이 감시를 소홀히해선 안 된다.  

이번 연말특집 편을 보면서 국내 언론의 탐사 보도가 점차 발전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불이익과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언론에 제보한 시민들과 언론의 취재에 응한 이들이 없었다면 깊이 있는 탐사 보도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취재한 기자와 피디들의 노고도 칭찬받아야 하지만 정의를 실현하고 사회 발전과 개혁을 가져온 이들은 제보자들이다. 언론도 시민도 이러한 제보자들의 용기와 노고에 주목해야 한다.
 
 임종헌 전 법원 행정처 차장이 검찰 조사에 앞서 취재진과 대면하고 있다.

임종헌 전 법원 행정처 차장이 검찰 조사에 앞서 취재진과 대면하고 있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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