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역할이든 제 것처럼 연기하는 '연기왕' 송강호에게 많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역시 '어떻게 매번 믿을 만한 연기를 보여주는지'가 아닐까. 여기에 송강호가 대답했다. 18일 오전 서울 팔판동 인근에서 열린 영화 <마약왕> 개봉 전 인터뷰에서다.

송강호는 근 10년 동안 <변호인> <택시운전사> 등 대중 앞에 선보인 "소시민적이고 정의로움을 갈구하는 인물"에서 벗어나 위험한 욕망과 집착을 가진 인물 이두삼을 연기한다. 송강호에게도 <마약왕>의 '마약왕' 이두삼은 "새로운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그렇기에 "두려웠다"고 한다.
 
 배우 송강호

배우 송강호 ⓒ 쇼박스

 
송강호는 '어떻게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나도 궁금하다. 그걸 어떻게 설명해드려야 할까"라면서 '허허'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송강호는 "대본 연습을 통한 이론적인 부분이 절반이라면 현장에서 이를 실행할 때의 감각처럼 알 수 없는 부분이 절반이다. 그렇게 반반 섞여서 한 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나온다"고 말했다.

영화 <마약왕>의 후반부, 송강호가 잔뜩 목이 쉰 채로 연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두고 송강호는 "처음부터 '목이 쉰 채로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어떤 상황과 어떤 감정에 처해있구나 생각이 드니 몸이 저절로 느끼는 게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그 준비된 이론과 현장의 감각이 '반반씩'이 섞여 이두삼이라는 인물이 탄생했다. 송강호는 <마약왕>에서 마약을 수출해도 '수출 역군'으로 대우받던 1970년대 마약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마약왕'이 되는 이두삼을 연기했다. 송강호는 격동의 시기를 지나가는 이두삼의 10여 년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반가운 건 20년 전 <넘버3>나 <초록물고기> 때 보여준 유쾌한 송강호의 모습이 자유롭게 변주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송강호의 오래된, 반가운 얼굴을 다시 보는 기쁨도 있고 새로운 얼굴을 만나는 기쁨도 있을 것이다."

'도전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송강호는 웃으면서 "그건 관객 분들이 판단해주실 것"이라고 답했다.

"전반부와 후반부 느낌 달라... 살도 찌워"
 
 배우 송강호

배우 송강호 ⓒ 쇼박스

 
 배우 송강호

배우 송강호 ⓒ 쇼박스

 
 배우 송강호

배우 송강호 ⓒ 쇼박스

 
송강호는 인터뷰 내내 <마약왕>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눠서 설명했다. 그는 영화 초반 밀수업자로 나올 때는 "가벼운 느낌으로 연기하기 위해 체중을 감량"했으나 "후반부에는 피폐하고 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수염을 기르고 살도 불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연기처럼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 톤이 다르다. 전반부는 경쾌하고 가벼워 종종 웃음이 나게 하지만 후반부는 무겁고 어두워 쉽사리 웃음이 나지 않는다. 송강호는 "전반부에 재밌게 보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나도 모르게 긴장과 몰입이 됐다"며 "영화가 끝났을 때 기분 좋게 진이 빠진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송강호는 <마약왕>을 두고 "물론 제목이 '마약왕'이긴 하지만 마약의 세계보다는 한 인간의 비틀린 욕망과 집착, 파멸을 다루고 있는 영화"라며 "한 인간의 흥망성쇠, 희로애락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이두삼의 전사(前史)를 설명하면서 "이두삼이라는 인물도 처음부터 마약왕으로서의 야심을 갖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하다 보니, 먹고 살기 위해서일 것"이라며 "정상적이고 건강한 방식이라는 말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이후 이두삼이라는 인물이 마약 세계에 빠져드는 과정은 파괴적이고 공격적"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그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후반부 감정이 형성됐다"고 전했다.

이어 "이 범죄의 바닥이라는 것이 한 번 수렁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지 않나. 인간의 어떤 비틀린 욕망과 집착을 가진 인물이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배우 송강호

배우 송강호 ⓒ 쇼박스


송강호는 <마약왕> 후반부를 주로 혼자 이끌어간다. 그는 후반부의 장면을 두고 "연극적인 구성"이라며 "한국 영화에서 이런 구성과 방식들은 쉽게 보기 어렵다. 보는 관객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을 했다.

"<마약왕>은 후반부에서 새로운 양식으로 관객들에게 이두삼이라는 인물의 파멸을 보여준다. 생경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고 두려움도 있었다. 강렬하고 새로운 방식이 관객들에게 낯설 수는 있겠으나 한국 영화의 새로운 모습이라고 자부한다.

실제로는 더 길게 촬영했다. 오리지널본으로 들어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압축해서 임팩트 있게 편집됐더라. 기존 상업 영화의 익숙한 리듬이 있는데 감독님께서 용감하게 승부를 걸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만족한다."


하지만 송강호는 후반부 촬영을 주로 혼자 하게 되면서 "외로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후반부 촬영은 정말 혼자만의 고독한 몸부림이었다. 연기란 것이 결국은 혼자 해내야 하고 혼자 책임을 져야 하는 작업이고 옆에서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유달리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는 기억에 남는 대사로 역시 후반부에 등장하는 아내인 성숙경(김소진 분)과의 통화신을 꼽았다.

"'내가 너(아내)한테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대사는 가장 이두삼스러운 말이다. 회한과 파멸의 중심부에 섰을 때, 소중한 것을 그리워하면서도 잡지 못하는 것. 어떤 삶을 꿈꿔왔지만 되돌아갈 수 없는 위치에 있을 때의 회환과 좌절, 절망을 집약하는 대사가 아닐까 싶다."

"<복수는 나의 것> 출연 세 번 거절해"
 
 배우 송강호

배우 송강호 ⓒ 쇼박스

 
송강호는 <택시운전사> 촬영 당시 <마약왕>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이 찾아와 '당신이 어떻게 이두삼을 구현할지 궁금합니다'라고 한 말에 출연을 최종 결정했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는 "박찬욱 감독님의 <복수는 나의 것>(2002)이라는 작품을 선택할 때 세 번을 거절하고 네 번째에는 내가 내 발로 하겠다고 찾아갔다"며 "그런데 거절했을 때의 이유와 하고 싶을 때의 이유가 동일하다. 막연하고 두렵기 때문에 거절하고 또 막연하고 두렵기 때문에 하고 싶다"는 의미심장한 답을 했다.

이어 "과연 이 세계를 어떻게 그려낼까 두렵기도 했지만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송강호는 '이두삼처럼 욕망과 집착을 가진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은 욕망과 집착이 있다. 또 좋은 사람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송강호는 "내년에는 본의 아니게 (관객들을) 자주 봬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배우 송강호의 주연작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나랏말쌈이>라는 작품이 6월과 7월, 차례로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송강호는 두 작품을 소개하며 "<마약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오히려 관객들 입장에서는 반가워하실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미소지었다.
마약왕 송강호 변호인 택시운전사 복수는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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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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