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사망한 하청업체 비정규직 김용균씨의 작업복.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사망한 하청업체 비정규직 김용균씨의 작업복. ⓒ 전국공공운수노조

 
"뭘 얘기 나오면 그거 가지고 확대 재생산 하는 사람들이 기자들 아니야? 걔네들은 이쪽 사정을 잘 모르니까 엉뚱하게 얘기 들을 수도 있잖아, 그렇지?"
 

스물넷 비정규직 청년의 죽음보다 입단속이 먼저였을까. 태안화력발전소 한국서부발전 측 관계자가 고 김용균씨 사망 직후 직원들의 입단속을 지시했다는 녹취 내용은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백번 양보해 회사 측 입장을 고려한다고 해도, 언론 취재부터 신경 썼던 모습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김용균씨의 직장 선배 이성훈씨는 한국서부발전 관계자의 음성 내용을 공개했다. 고 김용균씨의 입사 당시 신입 교육을 맡았다는 이성훈씨는 녹취 공개 후 곤란해지면 어떡하느냐는 물음에 "여기서 회사 생활 안 합니다"라며 아래와 같이 부연했다.
 
"제가 사고 11일 날 아침에 9시 한 40분쯤에 집에 와가지고 정신도 없고 막 그런 상황에서 전화해서 밑에 애들 입단속 잘해라. 그리고 기자들 만나면 인터뷰하지 마라. 기자들 만나면 그 기사들을 그 사람들은 오보해서 쓸 수가 있으니까 인터뷰하지 마라라는 식으로 저한테 멘트를 하고 있거든요, 전화를 해서."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한국서부발전의 이러한 안일한 대응은 김용균씨가 숨진 지 5일 만에 공개한 대국민 사과문에도 잘 드러난다. 일요일이던 16일 오후 7시에 기자들에게 메일 형태로 보낸 사과문은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관련 기사 : 일요일 저녁 7시에 기자들 메일로 사과한 서부발전).
 
시민대책위는 이에 대해 "딱 열 문장으로 구성된 사과문에서 자신의 잘못은 한 가지도 밝히지 않았다"며 "속 빈 강정 같은 사과문"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서부발전의 사과문은 17일 오전 일간지 광고로 실렸다. 이날 오전 이성훈씨가 한 인터뷰를 보면, 이러한 사측의 대응이 어디로부터 연원하는지, 김용균씨의 사망 현장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왜 스물넷 청년은 죽음을 맞이해야 했는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끔찍했던 현장, 참담한 사측 대응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 매주 토요일 범국민추모대회 개최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와 김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매주 토요일 범국민추모대회를 개최한다고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 매주 토요일 범국민추모대회 개최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와 김 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매주 토요일 범국민추모대회를 개최한다고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현장은 (오전) 3시 24분쯤에 발견했고요. 그 밑에서 수색 작업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 옆의 동을. 그래서 그걸 듣고서 거기로 뛰어 올라간 게 3시 40분쯤 됩니다. 그래서 용균이가 컨베이어 벨트 밑에 끼어 있는 걸 어떻게 꺼내 가지고 인공호흡이라도 하려고 몸을 잡는 순간 걔 머리가... 너무 사건 현장은 처참했고요. 정말 말로 표현하긴 어렵습니다, 이건. 너무 끔찍해서."
 
비록 음성을 통해 묘사된 현장이지만, 그 처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이 현장은 이미 예견된 참상이었다. 이에 대해 이씨는 "설비 개선 장치를 요구를 계속해도 원청회사인 한국서부발전에서는 그거를 갖다 묵살해 버렸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장에 김용균씨는 고작 3일간의 교육을 받고 투입됐고, 사측은 그마저도 길다고 독촉을 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교육 담당이었다는 이씨는 이렇게 자책하기도 했다.
 
"조금 더 내가 붙들고 교육을 시키고 조금 더 이런 건 조심하고 더 그걸 갖다가 좀 더... 좀 더 자세히 가르쳐줬으면 이런 사고 안 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이 듭니다. (교육 기간이) 3개월도 짧습니다. 3개월도 짧은데 3일만, 3일도 그것도 말이 3일이지 그 전날부터 위에 팀장이나 실장님은 '야, 빨리 현장 투입해, 현장 투입해'. 아니, 얘를 일주일도 아니고 그 시간이 뭐가 아쉬워서 투입하라고 그렇게 독촉을 하는지."

녹취를 공개한 이성훈씨는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밝혔다. 이씨는 "내 눈 앞에서 그 어린애를 컨베이어 벨트에서, 맨정신으로 벨트에 끼어서 죽은 모습을 봤는데 이 회사를 더 이상 어떻게 다닙니까?"라며 "밤에 저는 불 끄고 자지도 못해요, 지금 무서워서. 너무 끔찍했어요, 현장이"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현재 이씨가 겪고 있다는 고통은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서부발전에서 일하고 있을 동료 노동자들도 비껴갈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지 않을까. 아울러 "현장을 한번 와보시면 사람이 일할 수 있는 그런 구조가 아니다"라고 단언한 이씨는 현장 개선 요구가 묵살됐다며 사측의 안일한 대응이 계속된다면 향후 또 다른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그 동료들도 지금 여기서 일하다가 저는 또 사고가 날 거라는 걸 100% 자신합니다. 그래서 동료들한테... 여기 있는 애들 나이 평균이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이거든요. 너무 어린애들이잖아요.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 애들이 현장에서 이게 안전 조치며 무슨 개선사항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이상은 이런 사고를 떠안고 걔들은 또 일을 해야 되거든요."
 
"구의역은 지상의 세월호였다"고 했던 문 대통령이 직접 들어야 할 인터뷰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최근 태안화력에서 발생한 비정규직 고 김용군씨의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 군의 부모 뒤로 사고 현장 사진이 나오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최근 태안화력에서 발생한 비정규직 고 김용군씨의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 군의 부모 뒤로 사고 현장 사진이 나오고 있다. ⓒ 이희훈

 
"최근의 KTX 사고와 열송수관 사고, 특히 하청업체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일으킨 태안 화력발전소의 사고는 공기업의 운영이 효율보다 공공성과 안전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경각심을 다시 우리에게 주었다."
 
한편 한국서부발전의 사과문이 게재한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고(故) 김용균(24) 씨의 사망 사고를 처음으로 언급했다. 이날 오전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해서다. 문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특히 위험·안전분야의 외주화 방지를 위해 더욱 노력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여당도 목소리를 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위험의 외주화로 여러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당이 적극 나서 대처해야 할 것 같다"며 "이번 주 당 민생연석회의 주관으로 당정 협의를 하고 공공기관 전체를 대상으로 개선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정확한 진상조사와 사실관계를 파악,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앞선 16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역시 김용균씨 사망 사건에 대해 성명을 발표,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원청 사업주는 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를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와 국회는 법·제도적 보완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천명했다.
 
일견 다행이다. 스물넷 청년 김용균씨의 사망이 전 국민적인 안타까움과 공분을 자아내면서 위험의 외주화로 불리는 하청 문제와 청년 비정규직의 실태가 현안으로 부각된 것이다. 하지만, 2년 전 구의역 사건 때도 그랬다. 언론이 집중 조명했고 여론은 불붙었으며, 정치인들의 재발 방지 약속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김용균씨는 지금 세상에 없다.
 
"구의역은 지상의 세월호였다."
 

2년 전이던 2016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구의역 사고와 위험의 외주화와 관련해 "새누리당 정권은 공기업과 공공기관마저 효율성과 수익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도록 몰아갔다"며 "최소한 안전과 관련한 업무만큼은 직접 고용 정규직이 맡아야 한다는 야당의 요구도 외면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이제 세월호 참사를 반성하며 안전한 대한민국,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드는 일은 정권 교체 후 우리가 해내야 할 과제가 됐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아마도 김용균씨가 생전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었던 것도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러한 문 대통령의 다짐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하늘에 가 있는 용균이가 라디오 방송이 전파가 제 목소리가 훨씬 멀리 퍼지니까 용균이한테 한마디 하고 싶어요. 용균아, 목소리 들리지? 너도 거기서는 먼지 뒤집어쓰지 말고 이제는 거기서 편히 쉬어. 어머니, 아버지는 내가 위로해 드리고 보살펴드릴 수 있게끔 해 줄게. 용균아, 미안해. 너무 미안해, 용균아. 잘 지내, 거기서."

김용균씨의 선배 노동자인 이씨는 인터뷰 말미 미안함을 전하며 이렇게 울먹였다. 듣는 이도 울컥하게 만드는 음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울먹임은 마치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 법적·제도적 보완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김용균씨가 편히 쉬지 못할 거라는 역설처럼 들려왔다.
 
이러한 호소를 우리는 이미 2년 전에도, 그 이전에도 숱하게 들어왔기 때문이리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2년 전 다짐을 실현시킬 때다. 우선 이 인터뷰부터 직접 들어 보시기를. 더 이상 청년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 없지 않겠는가. 
김용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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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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