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 88/18 > 한 장면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 88/18 > 한 장면ⓒ KBS


지난 9월 KBS가 서울올림픽 3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 방영한 다큐멘터리 < 88/18 >은 여러모로 화제였다. KBS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던 15TB(테라바이트)가량의 방대한 과거 영상자료들을 토대로 만든 < 88/18 >은 미술관의 세련되고 지적인 전시 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어떤 이들은 < 88/18 >을 힙합에 비유하며 이 작품이 가진 '힙'한 요소들을 칭송해 마지않았다.

개인적으로도 < 88/18 >은 올해 본 어떤 한국 영화, 영상보다도 임팩트 있게 느껴졌다. 이 다큐멘터리는 과거 아카이브 영상들을 재구성하여 근사한 영상물로 제작한 점에 있어 동시대 새롭게 등장하는 영화체계, 포스트 시네마와 궤를 같이 한다. 

전두환 정권 당시 허삼수, 허문도와 함께 실세로 군림한 허화평 전 청와대 비서관이 증인으로 출석한 5공 청문회 영상으로 포문을 여는 < 88/18 >은 그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분명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하여 제작된 스포츠 다큐멘터리라고 하는데, 왜 5공 청문회 자료화면이 뜬금없이 처음부터 등장하는 걸까. 하지만 < 88/18 >을 계속 보다 보면, 5공 청문회로 서두를 연 것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해소된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1980년 5.17 쿠데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무력 진압 등으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자신들의 부족한 정통성을 경제 발전과 대중문화로 메우고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려 했다. 이에 부합한 최대 이벤트가 다름 아닌 1988 서울올림픽이었다. 당시 국력으로 보나, 경제적 규모로 보나 올림픽 유치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팽배했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밀어붙이기 좋아하는 전두환 정권은 올림픽 유치를 고집했다. 그 결과 최대 라이벌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올림픽 개최국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룩한다.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 88/18 > 한 장면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 88/18 > 한 장면ⓒ KBS


"지금, 우리 입장에서 올림픽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 88/18 > 과거 영상에 등장한 시민 인터뷰)"

올림픽 개최국으로 선정된 그 순간부터, 대한민국은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전시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TV에는 연일 외국인의 눈에 비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보도되며, 외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도시를 멋스럽게 재정비해야 한다는 정당성을 주입시켰다. 그렇게 빈민층들이 모여살던 목동, 상계동 등이 가시권 재정비, 도시 재개발 등을 이유로 강제 철거되었고 재개발, 재건축을 위한 강제 철거의 잔혹사는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다. 

올림픽은 전두환 독재정권에 대한 반발심, 민주화 요구, 노동 문제 등 각종 사회문제를 단숨에 진압할 수 있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았다. 갈수록 극심해지는 사회 양극화 현상에 정부는 한강에 유람선이 둥둥 떠다니게 된다는 내용의 건전가요 '아! 대한민국'을 장려하며, 원하는 건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 있다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다. (물론 최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완벽한 현실이 되었다.)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 88/18 > 한 장면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 88/18 > 한 장면ⓒ KBS


그렇다고 서울올림픽이 독재정권의 이면을 감추기 위한 부정적인 수단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좋든 싫든 올림픽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바꾸어 놓았고, 올림픽 개최 덕에 정보통신기술 또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서울올림픽은 대한민국 정치, 경제, 문화, 과학(기술) 등 사회 전반적으로 많은 것을 변화시킨 대형 이벤트였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들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 88/18 >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KBS 아카이브에 무분별하게 보관되어있던 1980년대 영상자료들을 엄선하여 한 시간 남짓 흥미로운 영상으로 재구성한 제작진의 능력과 방송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내레이션 없이 복고풍의 타이포 자막으로 내용을 전개한 일종의 실험정신에 있다. 방송국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는 영상자료들을 활용해 과거 시대상을 말하는 시도는 지상파 방송에서도 꾸준히 있었지만, < 88/18 >처럼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실험 영상,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등과 비견되며 화제가 된 사례는 흔하지 않았다.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 88/18 > 한 장면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 88/18 > 한 장면ⓒ KBS


< 88/18 >은 온 나라가 올림픽에 매달린 1980년대 사회상을 일목요연하게 압축하여 보여준 측면 뿐만 아니라, 보는 재미도 확실하고, 서울올림픽이 이후 한국 사회에 가져온 여러 명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서울올림픽이 끝난 이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에 기여했던 사람들은 저마다 남북이 통일되고, 전국이 골고루 잘사는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꾸었던 꿈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 88/18 >은 클로징 장면에서 민해경의 '서기 2000년' 가사를 빌러 가난도 없고 모두의 꿈이 이뤄지는 행복한 그날을 꿈꾸며 막을 내린다. 30년 전 KBS홀 야외무대에서 띄워보낸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나마 1980년대를 여행한 것 같은 묘한 기분. < 88/18 >은 1980년대를 잊고 싶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전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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