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이 현대건설을 제물로 연승행진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박미희 감독이 이끄는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15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8-2019 V리그 3라운드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와의 홈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1(25-21, 23-25, 25-21, 25-19)로 승리했다. 시즌 승점 28점째를 챙긴 흥국생명은 지난 12일 KGC인삼공사를 꺾고 선두에 올랐던 IBK기업은행 알토스(26점)를 제치고 선두 자리를 탈환했다(9승5패).

흥국생명은 토종 에이스 이재영이 46.55%의 공격성공률로 29득점을 기록하며 승리를 이끌었고 현대건설은 외국인 선수 밀라그로스 콜라(등록명 마야)가 37득점을 기록했지만 팀 범실 33개를 저지르며 자멸했다. 그리고 이날 경기에서는 3세트 시작 전 의미 있는 행사가 진행됐다. 프로 원년부터 GS칼텍스 KIXX와 기업은행, 흥국생명을 거치며 활약했던 남지연 리베로의 은퇴식이었다.

기업은행을 신흥 명문으로 끌어 올린 2012년 남지연 트레이드
 
 남지연은 프로 출범 후 김해란과 함께 최고 리베로 자리를 놓고 경쟁한 선의의 라이벌이다.

남지연은 프로 출범 후 김해란과 함께 최고 리베로 자리를 놓고 경쟁한 선의의 라이벌이다. ⓒ 한국배구연맹

 
흔히 배구에서 수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기본기는 대부분 '경험'에서 나오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어릴 때 수비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선수가 경험이 쌓이면서 수비가 부쩍 좋아지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이유다. V리그 현역 리베로 '빅3'로 불리는 김해란(흥국생명)과 임명옥(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오지영(인삼공사)도 모두 80년대에 태어난 베테랑 선수들이다.

그에 비하면 남지연 리베로는 비교적 젊은 나이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물론 2001년 강릉여고를 졸업하고 연습생 신분으로 GS칼텍스(당시 LG정유)에 입단할 때만 해도 남지연은 크게 알려진 선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남지연은 겨울리그 9연패 시대가 끝나고 어수선하던 LG정유에서 주전 리베로로 자리 잡았고 2005년 V리그가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기량이 꽃피기 시작했다. 당시 남지연의 나이는 20대 중반에 불과했다. 

남지연은 프로 원년부터 2006-2007 시즌까지 최고의 리베로에게 주는 수비상을 3시즌 연속 수상했다. 현재 여자배구의 리베로를 상징하는 선수가 김해란이듯 V리그 초창기 최고의 리베로는 단연 남지연이었다. 그리고 남지연은 리베로상을 김해란에게 내준 2007-2008 시즌 챔프전에서 김연경(엑자시바시)이 뛰던 흥국생명을 꺾고 성인배구 입단 후 처음으로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그렇게 GS칼텍스의 확실한 주전 리베로로 활약하던 남지연은 30대가 된 2012년 6월 선수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맞았다. 2011년에 창단한 신생팀 기업은행에서 세터 이나연(기업은행)과 레프트 김지수를 GS칼텍스에 내주고 남지연 리베로와 센터 김언혜를 받는 2:2 트레이드를 단행한 것이다. 남지연에게도 기업은행 이적은 선수생활의 커다란 전환점이 됐지만 기업은행에 남지연 영입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남지연은 기업은행 이적 첫 시즌이었던 2012-2013 시즌 3년 만에 V리그 수비상을 차지하며 기업은행의 첫 챔프전 우승을 이끌었다. 창단 후 첫 우승을 차지한 기업은행은 2016-2017 시즌까지 5시즌 연속 챔프전 진출과 챔프전 3회 우승을 달성하며 명문 구단으로 우뚝 섰다. 주전 리베로로 활약하며 수비의 안정을 가져 온 남지연이 없었다면 결코 쉽게 도달하지 못했을 업적이다.

3개 팀에서 4번의 우승 차지한 후 코치로 새로운 인생 출발
 
 2012년 남지연 영입이 없었다면 오늘날 V리그 3회 우승의 기업은행은 없었을지 모른다.

2012년 남지연 영입이 없었다면 오늘날 V리그 3회 우승의 기업은행은 없었을지 모른다. ⓒ 한국배구연맹

 
하지만 은퇴 후 정직원 채용을 보장 받을 정도로 각별했던 기업은행과 남지연의 인연은 작년 FA시장에서 뜻밖의 변수를 만났다. '토종 거포' 박정아(도로공사)가 팀을 떠난 기업은행에서 FA 센터 김수지와 세터 염혜선을 영입한 것이다. 기업은행은 은퇴가 임박한 남지연을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했지만 흥국생명에서 이 틈을 파고 들어 남지연을 보상 선수로 지명했다.

졸지에 흥국생명은 김해란과 남지현, 한지현(기업은행)을 동시에 보유한 '리베로 왕국'이 됐지만 각기 다른 팀에서 주전으로 뛰었던 리베로 3명의 만남은 결코 효율적인 전력 보강이 아니었다. 리베로가 아닌 공격수로 등록된 남지연은 주전 김해란의 백업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팀 내 비중도 매우 작아졌다. 결국 남지연은 흥국생명 이적 한 시즌 만에 현역 은퇴를 결심하고 이번 시즌부터 기업은행의 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흥국생명은 남지연이 단 한 시즌 동안만 활약한 팀이지만 V리그를 상징하는 리베로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15일 현대건설과의 홈경기에서 은퇴식을 열어줬다. 비록 2세트와 3세트 사이 꽃다발과 선물을 주고 기념사진을 찍는 정도의 조촐한(?) 은퇴식이었지만 남지연에게는 상당히 의미 있는 자리였다. 남지연은 은퇴식을 마련해준 흥국생명 구단에 고마움을 전하며 "새로운 인생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날 남지연은 경기를 치른 흥국생명의 박미희 감독과 현대건설의 이도희 감독, 그리고 남지연의 은퇴식을 위해 일부러 자리를 찾은 기업은행의 이정철 감독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 이정철 감독은 남지연과 3번의 우승을 만든 감독이고 이도희 감독과는 2010-2011 시즌 GS칼텍스의 코치와 선수로 함께 생활했다. 박미희 감독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함께 한 사령탑이다.

리베로 포지션의 선수 대부분이 그렇지만 남지연 역시 화려한 선수 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리그 정상급 리베로로 평가 받으면서도 21세기 여자배구 최고의 순간이었던 2012년 런던 올림픽 4강에도 함께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지연은 현역 시절 통산 4번의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V리그 경력은 누구 못지않게 화려하다. 앞으로 한국 여자배구에서 남지연 정도의 커리어를 가진 리베로가 나오려면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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