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맨> 영화 포스터

▲ <아쿠아맨>영화 포스터ⓒ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계의 흐름을 보자면, 우리는 슈퍼히어로의 시대에 살고 있다. 1980년대는 <레이더스><이티>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와 <스타워즈> 시리즈를 연출한 조지 루카스 시대였다. 1990년대는 <미녀와 야수><알라딘><라이온 킹> 등 디즈니의 셀 애니메이션 시대였다. 2000년대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해리 포터> 시리즈로 대표되는 판타지 영화 시대였다.

2010년대 할리우드를 움직이는 힘은 슈퍼히어로 장르다. 매년 북미 박스오피스 10위권에서 슈퍼히어로 영화는 절반 가까이에 달한다. 올해도 <블랙 팬서><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데드풀 2><앤트맨과 와스프><베놈>이 상위권에 올랐다.

지금 슈퍼히어로 장르는 마블 코믹스에서 출간한 만화를 원작으로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마블 코믹스의 엑스맨을 원작으로 20세기폭스(※지금은 디즈니로 판권이 넘어갔다)가 만드는 '엑스맨 실사영화 시리즈', 그리고 DC코믹스에 나오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은 'DC 확장 유니버스'가 지탱한다.

2008년 <아이언맨>부터 2018년 <앤트맨과 와스프>까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작품성과 흥행을 함께 거머쥐곤 했다. 엑스맨 실사영화 시리즈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로건> 등 걸작을 남겼다.

반면에 2013년 <맨 오브 스틸>로 시작한 DC 확장 유니버스는 몰락을 거듭했다. 2016년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수어사이드 스쿼드>, 2017년 <원더우먼>과 <저스티스 리그>를 선보였지만, <원더우먼>을 제외하고는 좋은 평가를 받질 못했다. 흥행 성적 면에서도 이름값을 못 했다. DC 확장 유니버스가 좌초 위기에 놓였다는 평가마저 나오자 제작사 워너 브라더스는 한 사람에게 긴급히 SOS를 외친다. 구원투수로 나선 이는 바로 '제임스 완'이다.

<저스티스 리그> 이후 마침내 모습 드러낸 '아쿠아맨'
 
<아쿠아맨> 영화의 한 장면

▲ <아쿠아맨>영화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제임스 완은 세계 영화의 흐름을 만드는 감독 겸 제작자다. 2004년에 개봉한 <쏘우>는 호러 영화의 경향을 '고문 스릴러'로 바꾸었다. 이후에는 <인시디어스> 시리즈와 <컨저링><애니벨><더 넌> 등 '컨저링 유니버스'는 오컬트 영화 붐을 일으켰다.

2015년 연출한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은 그가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드는 데에 일가견이 있음을 증명했다. 워너 브라더스는 제임스 완이 어떤 장르에서도 자신만의 비전을 갖는다는 걸 믿고 심해에서 활약하는 슈퍼히어로 <아쿠아맨>의 메가폰을 맡긴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배트맨이 렉스 루터의 파일을 보는 장면으로 아쿠아맨은 DC 확장 유니버스에 첫 등장했다. <저스티스 리그>에선 지구를 구하는 슈퍼특공대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저스티스 리그> 다음 시간대인 <아쿠아맨>은 반은 땅의 인간이고 반은 바다의 아틀란티스인인 아서(제이슨 모모아 분)가 심해의 수호자인 슈퍼히어로 아쿠아맨으로 새로이 태어나는 여정을 다룬다.

'아쿠아맨'은 1941년에 처음 코믹스로 소개되었다. DC 코믹스의 세계에서 여러 설정으로 활동하던 '아쿠아맨' 가운데 영화는 2011년에 출간한 제프 존스의 '아쿠아맨' 시리즈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각본에도 참여한 제임스 완 감독은 "아쿠아맨은 강력한 캐릭터이며 신과 같은 스케일로 액션을 다룰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점은 아쿠아맨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가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점이다"라고 느낀 바를 이야기한다.

아쿠아맨은 거창한 이유를 대며 세계를 구하진 않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나설 뿐이다. 지상 세계와 수중 세계를 오가며 두 세계를 통합할 왕이 될 운명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지만, 그 속에서 중심이 되는 건 가족이다.

여러 장르의 혼합, 그 안에서 독창성을 찾아나가다
 
<아쿠아맨> 영화의 한 장면

▲ <아쿠아맨>영화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아서가 이복형제인 옴(패트릭 윌슨 분)과 아틀란티스의 왕위를 놓고 겨루는 <아쿠아맨>의 서사는 마블의 <토르>나 <블랙 팬서>를 연상케 한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지구의 수호자가 되어 침략자에 맞선다는 설정은 앞서 <슈퍼맨>이 사용했다.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이미 써먹은 내용이란 문제 앞에서 제임스 완은 해법을 모색한다. 그는 장르의 융합, CGI로 만든 수중 세계, 시대와 조응하는 설정을 넣어 독창성을 얻었다.

<아쿠아맨>은 몇 개의 영화를 합한 느낌을 준다. 아서와 옴을 둘러싼 가족사의 비극은 셰익스피어에 기초한다. 둘이 충돌하는 장면은 로마 검투사의 대결처럼 꾸며졌다. 전설의 삼지창은 아서왕의 엑스칼리버 신화를 참고한 것 같다. 삼지창을 찾는 모험엔 <인디아나존스><미이라> 같은 액션 어드벤처 장르를 덧붙인 듯하다.

아서와 메라(엠버 허드 분)가 트렌치 왕국에 들어가는 장면은 공포로 가득하다. <캐리비안의 해적> 또는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의 영향도 볼 수 있다. 옴이 보낸 친위대에게선 <파워레인저>의 향기가 풍기다. 마지막 전투 장면은 <반지의 제왕>이 겹쳐진다. 수중에서도 <분노의 질주>처럼 카체이스를 펼친다. 아서와 메라의 로맨스도 곁들였다. 애나벨 인형을 넣는 재치도 발휘한다.

제임스 완 감독은 액션, 공포, 로맨스, 판타지, 어드벤처,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의 혼재 속에서 모방을 벗어나 고유함을 찾아간다. 지금까지 DC 확장 유니버스 작품들은 줄곧 무겁고 어두웠다. 하지만, <아쿠아맨>은 밝고 유쾌하다. 때론 뻔뻔할 정도라서 대형 예산으로 만든 1980년대스러운 B무비로 보인다. <토르-라그나로크>처럼 말이다. <아쿠아맨>이 찾은 '밝고 유쾌함'이란 톤 앤 매너는 DC 확장 유니버스에 다양성을 마침내 더했다.

"21세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란 무엇인가?"에 답을 내놓은 영화
 
<아쿠아맨> 영화의 한 장면

▲ <아쿠아맨>영화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아쿠아맨>의 가장 놀라운 성취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는 사실이다. 물은 CGI로 표현하기 가장 까다롭다고 한다. 심해의 영웅담인 <아쿠아맨> 제작은 CGI가 발전하지 않았다면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아쿠아맨>은 실제 세트와 디지털 효과를 모두 사용하여 수중 세계를 구현했다. 지상에서 촬영한 배우의 머리카락을 CG로 다시 수정하고 여러 장비로 배우를 움직이면서 물속의 비슷하게 연출했다.

엄청난 규모의 CGI로 완성한 <아쿠아맨>의 시각효과는 <스타워즈><트론><쥬라기공원><아바타>에 이어 이전까지 관객이 만나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90% 정도 분량을 아이맥스로 촬영했기 때문에 <아쿠아맨>의 수중 세계를 온전히 체험하는 최적의 선택은 당연히 아이맥스 관람이다.

<아쿠아맨>의 시대와 조응하는 설정도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아서는 반은 인간이고 반은 아틀란티스인이다. 그는 육지와 바다를 잇는 다리가 된다.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난 동양인이나 호주에서 자란 제임스 완과 하와이에서 태어나 미국 중부에서 자란 제이슨 모모아이기 때문에 두 문화에 뿌리를 두는 아쿠아맨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세계 또는 종이 다투지 않고 조화를 이루려는 지도자상은 오늘날 트럼프의 분열 정치를 정면으로 겨눈 듯하다. 인간이 바다를 오염시켰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옴의 논리는 증오로 만연한 사회 공기를 담는다. 동시에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한 미국 트럼프 정부를 비판한다. 제임스 완은 "이 작품은 공감을 살 만한 이야기고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나에게는 현시대에 말을 거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쿠아맨>은 변화하는 여성상도 그렸다. 영화에서 아서의 어머니인 아틀라나 여왕(니콜 키드먼 분)과 메라는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나아간다. 엠버 허드는 "남녀를 동등하게 다루는 <아쿠아맨>의 대본을 보고 기뻤다"며 "처음부터 두 주인공은 파트너다. 둘이 함께 힘을 모았기 때문에 아쿠아맨이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운명을 깨닫게 된다"고 소감을 전한다.
 
<아쿠아맨> 영화의 한 장면

▲ <아쿠아맨>영화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2018년은 슈퍼히어로 장르 역사에서 흥미로운 해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마블 10년사에 등장한 슈퍼히어로를 기존 기승전결 문법을 벗어난 형태로 한 영화에 담았다. <블랙 팬서>는 슈퍼히어로 장르에 흑인 영화를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스파이더맨의 새 이야기를 썼다. 이들은 지금까지와 다른 결을 지닌 슈퍼히어로를 보여주었다.

<아쿠아맨>은 경이로운 수중 세계로 슈퍼히어로 장르의 경험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서사의 아쉬움은 분명 남지만, 여러 이야기와 장르를 시끌벅적한 수중쇼로 합한 제임스 완의 스토리텔링과 시각적인 구성은 실로 놀랍다.

눈을 즐겁게 하는 시각 효과,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 액션 장면, 현대의 신화로 각색된 슈퍼히어로, 그 속에 담긴 정치, 사회적 메시지와 은유 등 <아쿠아맨>은 "21세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멋진 해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DC 확장 유니버스의 방향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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