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래비티> 포스터.

영화 <그래비티> 포스터.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2009년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로 시작된 3D 혁명, 그 유산은 2012년 이안의 <라이프 오브 파이>와 2013년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3D 혁명의 유산을 목적 아닌 수단으로 이용했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삶'의 경이로움을 말하는데, 평생 뇌리에 남을 기적 같은 비주얼을 선사한다. 또한 두 작품 모두 공교롭게도 올해 사이좋게 재개봉을 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올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마>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2013년 <그래비티>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데 이어 5년 만인 2018년 또 한 번 최고로 등극한 것. 그의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지만, 그는 굉장히 '과작'을 하는 감독이다. 기획과 제작하는 영화에 비해 연출하는 영화는 많지 않다. 

1990년대 최고의 음수대 키스신으로 유명한 <위대한 유산>, '해리포터' 시리즈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지만 어두운 톤 때문에 흥행성적은 가장 낮았던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그래비티>의 성공 이후 10년 만에 국내에 개봉되었던 명작 <칠드런 오브 맨> 등이 그의 작품이다. 

그는 감독 데뷔 후 25년여 동안 열 작품 정도 내놓은 게 전부다. 그러나 그는 <그래비티>라는 영화 역사상 컴퓨터 그래픽과 '우주 영화'라는 장르에 있어서 기준이 될 만한 중요한 영화를 만들었다. 또한 <그래비티>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 개인의 필모그래피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영화일 것이다. 

'편안한' 죽음과 '힘든' 삶 사이에서
 
 '편안한' 죽음인가, '힘든' 삶인가.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편안한' 죽음인가, '힘든' 삶인가.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우주 왕복선 익스플로러에 탑승해 우주에서의 첫 번째 임무인 허블 망원경 수리를 작업 중인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 분), 그녀와 함께 마지막 임무를 수행 중인 우주 비행사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분). 임무를 마칠 때까지 아직 한 시간 정도 소요될 예정인 상황에서, 휴스턴의 우주비행 관제센터에서 경고가 날아온다. 

러시아 측에서 자국의 사용하지 않는 인공위성을 부술 요량으로 미사일을 쏴 거대하고 많은 파편들이 생성되어 빠른 속도로 지구 궤도를 돌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즉시 임무를 중지할 것과 익스플로러에 탑승해 빨리 지구 궤도로 재진입할 것을 명한다. 하지만 이내 파편들이 그들을 덮쳐 뿔뿔이 흩어진다. 

우주미아가 된 스톤,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그녀에게 맷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곧 그녀를 구해준다. 익스플로러로 돌아가봤으나 모두 죽고 모두 박살났다. 그들은 비록 산소가 다 떨어져 가지만 멀리 떨어진 국제 우주 정거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때까지 그들은 '함께'지만 과연 언제까지 함께일 수 있을까. 

90분마다 더 거대하고 많은 파편들이 더 빠른 속도로 그들을 덮칠 예정인 와중에 산소는 다 떨어져 간다.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실날 같은 방법을, 기적을 수없이 되풀이해야만 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힘든' 삶을 영위할 것인가. 

삶과 죽음의 대치들
 
 영화에 수많은 삶과 죽음의 대치들이 보인다.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영화에 수많은 삶과 죽음의 대치들이 보인다.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드넓다' 또는 '끝없다'는 표현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지구 궤도 밖 우주 한복판, 삶과 죽음에 어떤 차이도 의미도 찾을 수 없는 그곳에서, 티끌보다 작고 못한 존재인 한 인간이 있다. 그녀, 라이언 스톤 박사는 지구에서 어린 딸을 허무하게 잃고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주의 고요함이 좋다. 

영화는 광활한 우주와 아름다운 지구가 주 배경이다. 동시에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절대적이다. 또한 우주와 지구 사이를 여러 가지 의미들로 대치시켜 놓는다. 기본적으로 이 재난 상황과 스톤 박사의 상황에 비춰볼 때, 우주는 죽음으로 지구는 삶으로 대치할 수 있겠다. 

그리고 티끌 같은 소리 한 점 찾을 수 없는 우주적 고요함을 역시 죽음과 다름 없는 단절 상황에, 시시콜콜 끝없이 얘기를 주고받는 스톤, 맷, 우주비행 관제센터 간의 대화는 우주적 고요의 단절과 대비되는 연결 상황으로 바꿔 생각해볼 수 있다. 

여기에 이르면 드디어 제목 '그래비티'의 의미에 다다른다. 지구로 향하는 끝없는 타의지인 중력은 다름 아닌 '삶' 그 자체이다. 반면, 우주미아가 되어 우주를 유영할 때나 죽어서 우주를 허망하게 떠돌 때나 모두 무중력 상태에 처하게 되는데, 다름 아닌 '죽음'과 다름 아니다. 영화는 이처럼 모든 것들에 삶과 죽음이 대치되어 있다. 

삶을 받아들이게 하는 영화
 
 결국, '삶'이다. 그래도, '삶'이다.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결국, '삶'이다. 그래도, '삶'이다.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이 영화가 CG와 3D의 영화 외적으로 영화사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충분히 느끼고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진정 '위대'한 점은, 영화 내적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에서 '삶'에의 끝없고 끈기있는 나아감을 받아들이게 한다는 점이다. 

영화가 계속 죽음을, 그러니까 우주의 고요함과 재난 상황과 제어할 수 없는 무중력과 이어지는 죽음, 단절을 보여주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인간은 죽음에 가장 직면했을 때 비로소 삶의 진면목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 어차피 혼자다'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쓴웃음을 유발시키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이 명제를, 영화는 진지하게 그래서 끔찍하다고 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삶의 '당연함'이 아닌 그럼에도 '살고 싶다' '살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단절된 혼자와 연결된 혼자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과 외로움을 동반하는 절대적 큰 차이가 있다. 

결론에 비춰 영화에서 말하는 '삶'을 조금 더 들어가보면, 스톤 박사의 상황은 단순히 죽음에서 삶으로의 방향 선회가 아닌 죽음에 몇 번이고 이르렀다가 다시 사는 부활 또는 재탄생의 의미가 있다. 그녀는 적어도 세 번(우주미아, 산소부족, 연료부족) 이상 사실상의 죽음에 이르렀는데, 다시 살게 된다. 

삶에의 향함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이성적 본능인 것일까, 본능적 이성인 것일까. 스톤 박사가 다시 살게 되는 몇 번의 장면들은 이성 또는 본능 어느 한 면만으로는 완벽한 설명이 부족한 그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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