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가사들이 간직한 심리학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감정을 공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까지 생각하는 '공감'을 통해 음악을 보다 풍요롭게 느껴보세요. - 기자 말"

흔히, 아끼는 사람이 생기면 좋은 건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나에게 맛있는 음식은 그 사람에게도 맛있을 것 같고, 내가 본 재밌는 영화를 그 사람도 재밌어 할 것 같다. 내게 좋은 것이 사랑하는 이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믿음. 좋은 의도로 좋은 것을 함께 하고픈 마음이 항상 옳은 걸까?

지난 11월 발표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새 앨범 수록곡인 '나란히 나란히(작사 장기하, 작곡 장기하)'는 이런 믿음이 '착각'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나의 선의가 때로는 상대방을 떠나가게 하는 원인이 되는 이유를 '나란히 나란히'의 가사와 함께 살펴본다.

너를 위해 한 모든 좋은 것들

이 모든 것들은 실은 좋은 것들이었다. 나는 네가 힘들지 않게 '너를 등에다가 업어 걸어보기도' 했다. 조금 더 먼 곳에 가기 위해 '자동차에다 태워서 달려보기도 하고' 더 큰 돈을 써서 '헬리콥터를 빌려 같이 날아 다니기도 하고' 너에게 좋은 모든 것을 다 해줬다. 때로는 낭만적인 여행을 위해 '돛단배를 타고 끝없는 바다를 건너보기도 했었'다.

장기하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이 모든 것들을 하면서 아마도 무척 만족스러웠나 보다. 걷는 것에서 자동차를 타고, 헬리콥터를 빌리고, 돛단배까지 점차 규모가 커져가는 걸 보니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만족감을 근거로 이런 것들을 제공받는 상대방 역시 몹시 만족스러울 것이라 확신했을 것이다.

만족감에 젖은 장기하는 마침내 더 크고 좋은 것을 주기 위해 '달나라로 가는 우주선을 예약'하려 한다. 그런데 그 때 너무나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뒤를 돌아보니 네가 보이질 않는 것이다. 너무나 갑작스런 영문도 모르는 이별에 장기하는 '나는 깜짝 놀랐어. 이미 너는 떠나가고 없었어'라고 한탄한다. 대체 이처럼 최선을 다해 너를 즐겁게 해주었는데 너는 왜 떠나간 것일까?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걸까?

최선을 다했던 관계에서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이별을 당한 장기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서 말도 안 된다 혼잣말' 하며 망연자실 한다. 그리고 이렇게 노래한다. '너의 얼굴을 그려보는데 이상하게도 잘 떠오르질 않네'라고. 바로 이것. '떠오르지 않는 너의 얼굴'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별의 합당한 이유다.
 
 '나란히 나란히'가 수록된 장기하와 얼굴들의 앨범 'mono'

'나란히 나란히'가 수록된 장기하와 얼굴들의 앨범 'mono'ⓒ (주)지니뮤직, Stone Music Ente


친밀할수록 더 잊기 쉬운 상대방의 관점

사랑한 이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 이는 단지 겉모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원했고, 어떤 취향을 가졌으며,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노래 속 장기하가 아는 사랑하는 이는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본, 나의 욕구가 투사된, 내가 좋아하는 대로 해석한 사람일 뿐이었다. 즉, 상대방이 자신과 다른 관점과 취향을 가지고 있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타인의 마음, 생각, 느낌 등을 상대방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능력을 '조망수용능력'이라고 한다. 아동의 인지발달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피아제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세 개의 산 모형을 두고 반대편에 앉은 인형이 보게 될 산의 모양을 추측해보도록 했다. 이 실험 결과, 4~6세 아동들은 인형 역시 자신이 보는 산의 모양과 똑같은 모양을 볼 거라 답했지만, 9~10세 아동들은 인형과 자신이 보는 산의 모양이 다를 수 있음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후 조망수용 능력에 대한 연구는 언어와 정서조망능력 등으로 확대되었고, 피아제의 실험보다 더 어린 나이에 조망수용의 발달이 시작됨을 밝혀냈다. 이 같은 조망수용능력은 사회적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예측하며, 공감을 가능하게 하는 대인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노래에서 장기하는 조망수용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물론, 어릴 적부터 발달되는 조망수용능력 자체가 부족하지는 않았을 테다. 하지만, 너무나 사랑하는 친밀한 관계에서는 정상적으로 조망수용능력을 발달시킨 사람일지라도 이를 잘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의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채우거나, 자신의 욕구들을 투사하는 무의식적 과정이 강렬하게 일어난다. 때문에 자신의 욕구와 타인의 욕구를 구별하는 것이 어렵고, 조망수용능력은 이런 욕구 속에 묻혀버린다.

직장이나 다른 관계에서는 타인을 잘 배려하는 사람이 가족이나 연인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너무나 친밀하기에 나와 같게 느낄 것이라 지레 짐작하거나, 아니면 짐작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대하는 것이다. 특히, 부모-자녀 관계에서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원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 채 자신이 선망하는 길을 가길 강요하는 것 역시 같은 기제로 볼 수 있다.

이별 후에야 보이는 상대방의 관점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상대방을 소유하려는 마음, 나의 욕구를 대신 이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즉,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조망수용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노래에서 장기하 역시 그랬다. 노래의 시작부분 '너를 등에 업고 다녀보기도' 했다는 것은 지나치게 밀착된 관계를 의미한다. 즉, 상대방과 나의 욕구를 구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노래에서 장기하는 갑작스런 이별을 당하고, 이별로 인해 거리가 생긴 후에야 상대방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다.

이별을 맞닥뜨린 장기하는 이제 '나란히 나란히 걸어다닐 걸 그랬어'이라고 후회한다. 나의 관점이 아닌 너의 관점에서 '나란히' 세상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 게 필요했다는 깨달음이다. '마주보며 웃을 걸 그랬어'는 내가 웃을 때 너도 웃는지 살펴봐줄 걸 하는 후회다. '자주 손을 잡을 걸 그랬어'는 너의 체온을 느끼며 그 감정에 공감해주지 못했음을 깨닫는 장면이다. 이어 장기하는 근본적인 이별의 이유를 알아차린다. '어쩌면 나는 결국 네가 정말로 원하는 건 단 한 번도 제대로 해줘본 적이 없는 건지도 몰라'라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좋아할 거라 믿고 행동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건 나의 취향을 강요한 것밖에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깨달음이다.

조금만 더 일찍 눈치 채고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별 후 깨달음은 더 큰 아쉬움만 남긴다. '진짜로 그랬는지 아닌지는 이제는 물어볼 수조차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가만히 누워 외로워하는 것뿐이네'라는 장기하의 목소리는 그래서 더 처절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지금 사랑하는 이의 눈을 한 번 바라보면 어떨까? 나의 연인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내가 보는 것과 같은지 한 번 주의를 기울여보자. 부모라면, 내가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자녀가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은지 잘 살펴보자. 심리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내가 좋아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 있음을 아는 '정서 조망 수용능력'은 생후 18개월 경부터 발달한다고 한다. 성인이 된 지금. 어린 시절 발달시켰던 이 능력을 다시금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정말 좋아하는 것을 물어보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을 때, 부모가 자녀가 원하는 것에 귀 기울여 줄 때, 관계는 더욱 탄탄해지고 이별의 기운은 저 멀리 사라질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사랑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보는 것'이라고. 즉, 상대방의 관점에서 함께 바라봐주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이도 좋아할 것이라는 믿음. 이는 착각이다. '나란히 나란히'를 잊지 말자.

"나는 너를 등에다가
업고 걸어 보기도 하고
자동차에다가
태워서 달려 보기도 하고
헬리콥터를 빌려
같이 날아다니기도 하고
돛단배를 타고
끝없는 바다를 건너 보기도 했었네

달나라로 가는
우주선을 예약하고 있을 때
나는 깜짝 놀랐어
이미 너는 떠나가고 없었어

한참 동안을 멍하니 앉아서
말도 안 된다 혼잣말 하다
너의 얼굴을 그려 보려는데
이상하게도 잘 떠오르질 않네

나란히 나란히 걸어다닐 걸 그랬어
마주보며 웃을 걸 그랬어
나란히 나란히 걸어다닐 걸 그랬어
자주 손을 잡을 걸 그랬어
가만히 가만히 생각해 볼 걸 그랬어
정말로 네가 뭘 원하는지
나란히 나란히 걸어다닐 걸 그랬어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어쩌면 나는 결국 네가 정말로 원하는 건
단 한 번도 제대로 해줘본 적이 없는 건지도 몰라
진짜로 그랬는지 아닌지는 이제는 물어볼 수조차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가만히 누워 외로워하는 것뿐이네
(후략)"
- 장기하와 얼굴들, '나란히 나란히' 가사 중에서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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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로 세상을 관찰하며 살다, 지금은 사람의 마음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체가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며, '생명감수성'과 '마음의 성장'을 일상과 문화콘텐츠를 통해 공유하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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