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사수>(2018) 한 장면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사수>(2018) 한 장면 ⓒ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2년 전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광화문 광장 한쪽 구석에서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을 규탄하는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의 팻말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유성 기업이라는 회사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왜 그들이 정몽구 회장을 비판하는 팻말을 들고 광장에 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유성기업이라는 곳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핑계를 대자면 그때는 이름도 낯선 유성기업 외에도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왔으니. 그렇게 유성기업은 잠깐 스쳐가는 존재로 남을 뻔 했다. 

그로부터 2년 뒤,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한 <사수>(2018)를 보면서, 2년 전 광화문 광장에서 잠깐 스쳐간 유성기업에 관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사수>를 보고 나서야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인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왜 광장에 나와 한 노동자의 사진을 앞세워, 유성기업 노조파괴에 대한 정몽구 회장의 책임을 추궁하며 그를 규탄하는 팻말을 설치했는지 알 수 있었다. 

영화 <사수>에 따르면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에도 사측의 노조탄압 움직임은 종종 있었지만 2011년 대규모 파업 투쟁과 파업에 적극 참여한 노조원들의 징계 해고 사건 이후, 회사와 해고 노동자간의 갈등은 더욱 격렬해진다. 

당시 해고 당한 노동자들은 즉각 회사를 상대로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냈고, 복직을 위한 여러 움직임에 돌입했지만 사측의 반응은 요지부동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리한 싸움 중 2016년 3월 노동조합의 대의원 중 한 명이었던 한광호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남은 노동자들은 그의 장례도 미룬 채 죽은 한광호 열사를 앞세워 거센 투쟁에 돌입한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사수>(2018) 한 장면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사수>(2018) 한 장면 ⓒ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죽은 동료의 죽음을 투쟁에 적극 활용하는 이들의 선택은 그리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영화에는 아예 한광호 열사의 가족이기도 한 국석호씨의 입에서 '시체팔이'라는 노골적인 말까지 나온다. 지난 11월 22일에는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회사 임원에게 폭력을 휘두른 불미스러운 사건도 발생했다. 영화에도 종종 등장하긴 했지만, 유성기업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은 보통 사람들의 상식선을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회사와 끝이 보이지 않는 복직 투쟁을 이어왔기 때문에, 회사 간부를 폭행한 노동자들의 잘못에 면죄부를 주자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8년 동안 진흙탕 싸움처럼 지속된 유성기업 문제는 지난 22일 발생한 폭행 사태의 가해 노동자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으로 말끔히 해결되지 않는다.

<사수>에도 등장한 이야기이지만 유성기업 노조파괴는 노동조합 파괴 전문 노무법인 회사로 악명높았던 창조컨설팅과 유성기업, 현대차 그룹의 결탁으로 이뤄졌다는 정황이 밝혀졌고, 지난 2017년 유시영 유성기업 대표이사가 직장폐쇄와 노조탄압 등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인정받아 법정구속까지 받았다. 그러나 유성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사측의 탄압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유성기업 해고 노동자들의 7년간의 투쟁을 기록한 <사수>는 사측의 노조탄압과 해고 등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망가지고 피폐해졌는지 가감없이 보여 준다. 때로는 그 가감없는 솔직한 장면들 때문에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지난 8년동안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겪었던 사건들에 비하면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사수>(2018) 한 장면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사수>(2018) 한 장면 ⓒ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거칠고 폭력적인 시위와 투쟁으로 일부 비판도 받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이지만 이들도 처음부터 거칠고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지난 7년여간의 싸움 동안 유성기업 해고 노동자들 대다수는 분노조절장애를 앓게 되었고, 우울증, 공황장애 등 각종 정신적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그렇다고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저지른 잘못들을 무조건 이해하고 감싸주자는 말은 아니다. 허나,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극단적인 투쟁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배경과 과정들은 보다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싶다. 

카메라 앞에 선 노동자들은 갈수록 격렬해지는 사측의 노조탄압과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종종 이상 증세를 보이는 스스로를 책망한다. 7년간의 다사다난한 싸움이 아니었다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로 별탈 없이 살았을 이들이 그럼에도 노동조합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노동환경, 노동자에 대한 부당대우, 노조파괴가 만연한 현실에서 노동자들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싸우고, 그들의 삶을 걸고 죽을 힘을 다해 싸운다. <사수>는 아직도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는 유성기업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불안한 현실 속에서 안심하면서 살아갈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지난 7년간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사수>는 지난 7일 폐막한 44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 시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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