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의 품격>.

<황후의 품격>. ⓒ SBS

  
SBS 수목 드라마 <황후의 품격> 속에서는 대한제국이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미 유물이 된 군주정이 이 드라마에서는 마치 현실처럼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민주공화정이 대세인데도, 아직도 적지 않은 나라에서 '유물'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이다. 영국왕은 헌법이 부여하는 범위에서만 임금 노릇을 할 수 있는 입헌군주이지만, 본국뿐 아니라 일부 영연방 회원국들에서까지 국가원수 대우를 받고 있다.
 
영국은 핵보유국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세계 5대 강대국에 든다. 영연방 회원국인 호주·캐나다도 만만치 않은 나라들이다. 이런 나라들로부터 국가원수 예우를 받고 있으니, 영국왕은 실권은 없어도 막강한 권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영국왕이란 존재는 우리에게 의문을 던질 만하다. 1700년대 후반부터 미국과 프랑스에서 민주공화정이 시작되어, 이제는 이 체제가 세계적 대세가 됐다. 이런 속에서 영국왕은 이미 오래 전에 실권을 상실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국가원수 대우를 받고 있으니, 그 비결이 뭔지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권력을 상실하고 하산하는 정치인에 대해, 동료 정치인보다 일반 대중이 싸늘한 눈길을 보낼 때가 많다. 추락한 정치인이 대중의 멸시와 냉대를 받는 일은 이제껏 수도 없이 일어났다. 일례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잠시 약해지는 바람에 권력을 상실한 친일파 거물 김홍집은 1896년 2월에 광화문 앞에서 군중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참극을 당했다. 권력을 잃은 자는 경쟁자보다도 대중을 더 두려워해야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살벌한 정치 환경에서 영국 왕실은 이미 오래 전에 권력을 상실하고도 여전히 권위를 유지하고 있다. 권력의 정상에서 추락하고도 대중의 멸시와 냉대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존경과 환대를 받고 있다.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클래식 영국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중민주주의의 도래와 더불어 왕실의 역할이 오히려 더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잉글랜드의 역대 국왕들이 신민(臣民)의 사랑을 받은 경우는 드물었다. (중략) 오늘날 왕실은 국민적 통일의 상징이다. 국왕의 권력은 거의 무(無)에 가깝지만, 상징적 의미는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왕정 시대에도 받지 못했던 사랑을, 오늘날의 영국 왕실은 자기 나라에서뿐 아니라 일부 영연방 국가들에서도 받고 있다. 이 왕실에서 벌어지는 혼사도 세계적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1981년에 거행된 다이애나 세자빈(20세)과 찰스 세자(33세)의 결혼식은 지금도 세계인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권력을 잃은 가문이 거창한 행사를 열면 욕을 먹기 십상인데, 이 집안은 그럴 때마다 오히려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서곤 한다. 
 
 영국왕 엘리자베스 2세.

영국왕 엘리자베스 2세. ⓒ 위키백과

  
이런 기이한 일이 벌어지는 원인을 '찰스 세자'가 아니라 '찰스 다윈'의 관점으로 풀이하면, 적자생존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부르주아 계급에게 권력이 넘어가고 프롤레타리아들이 권력에 도전함에 따라 왕실이 소외되던 1800년대 전반에 영국 왕실이 살아남은 비결은 새로운 환경에 스스로를 맞추려는 치열한 노력에 있었다.
 
이 시기의 영국 왕실은 국민들에게 잘 보이는 방법으로 위기를 타개하고자 했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힘으로 억누를 수 없었기에, 백성들한테 '아부'하는 방법으로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용민 건국대 중국연구원 특임교수의 논문 '영국의 복지군주제-입헌군주제의 현대적 변화와 적응'은 그 같은 영국 왕실의 노력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신흥 부르주아들의 의회 진출을 용이하게 하는 1832년 선거법 개정에 대한 영국 왕실의 대처법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1832년 영국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군주로서의 정치적 역할이 축소되고 입헌군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드러내야 했던 빅토리아 여왕과, 자선사업에서 단결과 소속감과 목적의 순수함을 선전해야 했던 중산계급의 선호가 일치하여, 현대적 의미의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군주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14년에 영국사학회가 발행한 <영국 연구> 제31권에 수록.

 
 
군주의 역할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영국 왕실이 자선사업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스스로 복지군주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다. 이런 왕실의 전략이, 자선사업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의 팽창을 추구하던 부르주아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그 같은 이해관계의 일치 속에서 일부 자본가들은 왕실과 함께 자선사업을 벌이는 방법으로, 자신들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누그러뜨렸다. 왕실은 자본가들의 자선사업 참여를 유도하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작위를 하사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가진 자들을 돕고 한편으로는 가진 자와 없는 자 양측을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영국 왕실은 '지배하는 왕실'이 아니라 '세상에 봉사하는 왕실'이란 이미지를 구축해 나갈 수 있었다.
 
비슷한 장면이 드라마 <황후의 품격> 제1회에서도 묘사됐다. 황제 이혁(신성록 분)은 사회적 약자들을 궁에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이 연회에 초대됐다가 황제와 결혼까지 하게 된 인물이 드라마 주인공인 오써니(장나라 분)다.
 
이미지를 바꿔 대중에 접근하는 영국 왕실의 전략은 주효했다. 1850년대에는 '도와달라'는 노동자들의 편지가 왕궁으로 쇄도할 정도였다. 왕실 입장에서는 재정적 곤란이 수반되는 일이었지만, '즐거운 비명'을 지를 만했다. 백성들이 "물러나라!"고 요구하지 않고 "도와달라!"고 요구하게 됐으니, 그 점만으로도 위안이 될 수 있었다. 왕실 금고에 돈이 부족하면, 돈 있는 사람들한테 작위를 수여해서라도 복지 비용을 충당하면 그만이었다.
 
왕실은 처음에는 수동적 입장에서 복지 문제를 처리했다. 도와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때만 지원을 제공했다. 그러다가 1800년대 후반에는 전담 관리를 두고 복지 수요를 찾아나서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능동적 입장에서 복지 사무를 처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에는 군주의 이미지가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에 봉사하는 자'로 바뀌어 있었고, 공주와 왕자들도 세상의 특혜를 받는 신분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신분으로 비치고 있었다. 위 논문은 아래와 같이 말한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문장 속의 단어 몇 개를 생략했다.
 
"이 시기에 다다르면, 왕족이란 자리가 즐거움과 권력을 가져다주는 자리가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소환된 자리라는 확실한 사고의 전환이 확립됐다."
 
 
지금은 고인이 된 다이애나는 세자빈 시절에 자선 활동에서 두각을 보였다. 그의 활동은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그런 선행은 그 자신의 심성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영국 왕실의 전통과 지원에 입각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전 세자빈 다이애나.

전 세자빈 다이애나.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그런데 복지 사무는 정부의 소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왕실의 복지 사무가 정부 쪽과 중복되면 왕실 쪽이 역할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비해 영국 왕실은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을 찾아다녔다. 정부의 복지정책은 집권당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왕실은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 정부가 손대기 힘든 곳들을 찾아내 복지정책을 펼쳤다. 이런 방법으로 영국 왕실은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영국 사회에 각인시킬 수 있었다.
 
물론 의도는 순수하지 않지만, 꾸준한 선행은 왕실이 민주주의의 확산 속에서도 살아남는 원동력이 됐다. 왕실 폐지론을 선전하는 캠페인이 계속 벌어졌지만, 그런 운동이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은 왕실의 선행이 영국 사회에 좋은 본보기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 재벌들도 좋은 일을 많이 한다. 하지만 좋은 소리는 못 듣는다. 이는 그들이 노동자들에게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강제하고, 국민 혈세로 받은 지원금을 부동산 투기에 사용하는 등의 비행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또 '지배하는 자'의 위상을 즐기면서 갑질을 수도 없이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자선은 오히려 위선으로 비치기 쉽다.
 
그에 반해, 영국 왕실은 살아남으려고 자선과 복지에 뛰어들었다. 거기서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찾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선행은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재벌들은 절실한 마음으로 자선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돈을 쓰고도 욕을 먹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 위에 군림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므로 영국에서든 어디서든 군주제는 반드시 소멸돼야 마땅하다. 대부분의 인류가 이런 이치에 공감하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영국 왕실은 정부나 집권당이 하지 못하는 복지 수요를 찾아 선행을 베푼 결과로 지위와 명예를 이어올 수 있었다. '지배하는 자'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시대적 흐름을 신속히 포착하고, 스스로를 '세상에 봉사하는 자'로 자리매김하는 '적자생존' 기술을 발휘한 덕분에 오늘날까지 수명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황후의 품격 입헌군주제 영국 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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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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