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말 가수 산이는 'FEMINIST'를 시작으로 세 곡의 노래를 연달아 발표했으며 소속사의 연말 콘서트에서는 '워마든 독, 페미니스트 No, 너네 정신병'이라고 발언, 결국 소속사와 결별하게 되었다.
 
 래퍼 산이 트위터 화면 캡처. 산이는 지난 15일 신곡 '페미니스트'를 자신의 SNS에 올렸다.

래퍼 산이 트위터 화면 캡처. 산이는 지난 11월 15일 '페미니스트'라는 곡을 발표했다고 자신의 SNS에 올렸다.ⓒ 산이 트위터

 
이 일련의 과정들은 개인적으로 내게 매우 불가사의한 사건으로 남을 것 같다. 물론 당시에 이수역 폭행사건을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여성 혐오냐 남성 혐오냐'하는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긴 했다. 하지만 사건이 준 충격과는 별개로 이런 일을 중심에 놓고 사람들이 충돌하는 양상이 새로웠냐고 질문한다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메갈리아에서 출발한 여성혐오에 대한 첨예한 문제의식과 '미러링'으로 명명되는 적극적 대응 전략은 적어도 지금 세대 일부의 확고한 정서나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그 흐름이 들끓어 오르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한마디로 많은 수의 여성들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을 넘어서 변화를 끝낸지 시간이 꽤 흘렀다.

산이의 행보가 헛발질인 것과는 별개로 유난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그래서다. 왜 굳이 지금 저럴까 싶어지는 것이다.
 
 산이의 'Wannabe rapper'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산이의 'Wannabe rapper'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브랜뉴뮤직

 
사실 산이의 최근 행보가 모두 그랬다. 그는 뜬금없이 차일디쉬 감비노의 'This Is America'를 오마주 한다며 'Wannabe Rapper'라는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발표했다. 하지만 '오마주를 했다'는 정보가 없었다면 비교를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질적 차이가 심각했다. 아마 이 노래가 40년 전에 발표되었다면 꽤나 도발적이라고 여겨졌을 것이고 30년 전에 발표되었다면 들을 재미는 있다고 평가 받았을 것이다. 이미 사회를 예리하게 비판하는 노래들이 여럿 발표된 지 오래다. 각종 사회 문제를 그저 겉핥기식으로 나열만하고 심지어 소수자로서 여성들이 벌인 저항활동을 혐오와 폭력으로 등치시킨 이 노래는 얄팍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I'm feminist'라는 가사 뒤에 'I love them bitches' 노랫말이 등장할 때는 실소를 감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성 중 어느 누가 그런 말을 쓰겠는가) 이 노래는 너무 늦게 도착했으며 심지어 지금의 세태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에도 실패했다.

'읽지 않는 남자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위험신호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산이가 특별히 퇴보하고 낡아진 게 아니라 이 사회의 보편적인 남성들이 그러한 것은 아닐까? 이 생각이 든 것은 얼마 전 인터넷 서점 YES24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을 보면서였다. YES24가 운영하는 웹진 채널예스는 책 <한국, 남자>를 출간한 최태섭 문화평론가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리고 소동은 웹진이 이 인터뷰를 담은 '어쩜 그렇게 한(국)남(자)스럽니?'라는 제목의 뉴스레터를 보내며 일어났다. 남성들은 이를 '남성 혐오'라고 규정하며 YES24 불매운동에 나섰고 집단으로 탈퇴를 인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마주한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우려나 분노가 아니라 냉소였다.

실제로 SNS상에서는 여성들과 남성들의 터무니없이 차이가 나는 도서 구매 비율을 비교하며 '남자들이 아무리 불매를 한다고 무슨 타격이 있겠느냐'는 식의 조롱이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나 또한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위험신호는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단순히 도서구매율만을 놓고 두 사회 집단을 비교하는 것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다. 한 권의 책을 완독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다량의 정보를 맥락에 맞게 정리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기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세상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하는 훈련을 한다. 여기에 실패한 사람이 변화하는 세상을 제대로 통찰할 수 있을 리 없다. 한 마디로 지금의 공동체에 걸맞게 사회화 되는데 실패하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 남성들이 그런 존재냐고? 나는 이 사실을 언급함으로서 답을 대신하고 싶다. 일단 이들은 '어쩜 그렇게 한(국)남(자)스럽니?'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데도 실패했다.

송민호의 '아낙네'가 드러낸 고루한 문제점
 
 Mnet <쇼미더머니4> 출연 당시 가사 내용으로 논란이 된 송민호의 랩

Mnet <쇼미더머니4> 출연 당시 가사 내용으로 논란이 된 송민호의 랩ⓒ Mnet


이런 시기에 한편에서는 아이돌 그룹 위너의 멤버인 송민호가 새 노래를 발표했다. 그는 이미 2015년에 출연한 <쇼미더머니4>에서 'MINO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랩을 해서 여성혐오가 담긴 노래를 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 사건으로 무언가 배운 게 있을까 싶었지만 2017년에는 또 다시 'Motherfucker만 써도 이젠 혐이라 하는 시대, shit'이라는 가사를 써서 달라진 것이 전혀 없음을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2018년에는? 낡은 것이 '아낙네'라는 노래 제목뿐이라면 좋겠지만 결과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물론 가수 개인이 '예쁜 여성'을 좋아하고 찬양하는 것을 두고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한 곡에 담긴 노래의 내용이 그게 전부라면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자신을 물을 먹여줘야할 '밑 빠진 Dog'으로 은유하고 여성은 단지 부끄러움에 몸을 배배꼬는 상대로 묘사하는 가사에 이르자 질문이 들었다. 이 가수에게 이상적인 여성과 남성의 관계란 무엇일까.

문제는 여러 비판에 직면했던 뮤직비디오에서도 이어진다. 남성이라곤 송민호만 등장하는 이 뮤직비디오에서 유일하게 옷을 제대로 갖춰 입은 사람이 본인 혼자뿐임은 가장 큰 문제도 아니다. 여성 출연진들의 노출이 그들의 몸을 부각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궁궐을 배경으로 왕의 옷을 입은 송민호가 다수의 여성들과 출연할 때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 장면에서 헐벗은 여성들은 그저 가만히 앉아있고 송민호는 이 사이를 몸을 흔들며 돌아다닌다. 또한 이어지는 장면에서 여성출연진들은 송민호의 주변에 앉아 오직 그의 즐거움만을 위해 웃고 재롱을 부리기를 반복한다.

의미심장하게도 이 장면에서 모든 여성출연진들의 눈은 가려져있다. 자신에게 복종하고 즐거움을 주면서 그 무엇도 보지 못하는 인물들에게 무슨 캐릭터가 있고 개성이 있고 주체성이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여성들은 단지 '예쁜 몸' 이상의 지위를 가지지 못한다. 인격이 소거된 것이다. 권력자인 남성의 지위가 강조되고 여성은 오직 몸만이 부각되는 구도가 위계적이지 않을 리가 없다. 말하자면 이건 낡고 고루하고 유해한 욕망이다. 하나도 새롭지도 재밌지도 않다.
 
 송민호의 '아낙네'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송민호의 '아낙네'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YG 엔터테인먼트


왜 산이는 사회적 소수자의 존재를 부인하는가

수동적이고 고분고분하며 그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여성에 대한 욕망. 나는 '아낙네'의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통해 표현된 것들이 산이가 최근 보여준 행보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산이는 최근에 발표한 노래 '웅앵웅'에 '악한 자가 약 한 척하며 가짜 만든 정의뿐'이라는 모멸적인 가사를 담았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산이가 '메갈'과 '워마드'라고 지칭한 여성들이 그가 발표한 노래를 이유로 분노를 드러내고 조롱을 표출했기 때문에 '악한 자'라는 뜻일까? 이를 이유로 그들을 '약한 자'가 아니고 그저 악랄한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누군가가 사회적 약자이거나 소수자인 것은 그들이 처한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지위나 위치에 따라 판가름 되는 것이지 취하는 행동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산이가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비판과 야유에 동의를 하든 못하든 달라지지 않는다.
 
 산이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 이 영상에는 지난 2일 진행된 브랜뉴뮤직 레이블 합동 콘서트 '브랜뉴이어 2018' 당시 논란이 된 본인의 발언이 담겼다.

산이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 이 영상에는 지난 2일 진행된 브랜뉴뮤직 레이블 합동 콘서트 '브랜뉴이어 2018' 당시 논란이 된 본인의 발언이 담겼다.ⓒ 산이 유튜브 갈무리


그리고 당연한 사실이지만 사회적 소수자들도 감정이 있고, 그래서 화를 낼 수 있다. 특히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에게 있어서는 그러지 않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각종 지표만 훑어보아도 치안·노동·복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여성의 권리와 지위는 무시가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었으며 동시대의 여성들은 이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산이 본인도 노래 'FEMINST'에서 '강남역'을 언급했으니 이러한 현실에 완전히 무지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분노했다고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산이에게 여성이란 어떤 집단인가. 스스로를 향한 차별과 혐오에도 여전히 얌전한 태도를 유지하며 누구에게도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무해한 존재로 남고자 하는 사람들? 어떤 성인군자에게도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다. 비슷한 결론이지만 이건 인격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과연 남자들은 변화하고 있는가?

사실 페미니즘에 대한 얄팍한 인식과 짙은 여성혐오 그리고 래퍼라는 직업을 제외하면 산이와 송민호 사이에 그다지 연결고리는 없다. 이들의 활동영역이나 대상으로 하는 팬층도 그다지 겹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둘은 성격이 다른 인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두 사람이 여성에 대한 태도에서 공통점을 드러낼 때 불안해진다. 특히나 이들은 세대도 다르다. 그렇다면 그 시간이 흐르도록 남자들은 별로 변한 게 없다는 암담한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한 쪽에서 산이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분노하는 여성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걸 수용하고 자기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를 포기한다. 그리고 다른 한 쪽에서 송민호는 그저 몸만 남아 수동적으로 자신의 찬양과 선택을 기다리는 여성에 대한 욕망을 전시한다. 말하자면 두 남자 모두 여성들이 감정도 생각도 인격도 없는 상태에서 그저 자신들의 시혜를 고분고분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2018년 12월 2일 SBS <인기가요>에 출연해 '아낙네'를 부르는 송민호의 모습

2018년 12월 2일 SBS <인기가요>에 출연해 '아낙네'를 부르는 송민호의 모습ⓒ SBS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 열풍이 불어온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시대를 온전히 정리하는 것은 다소간 시간이 흐른 후에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많은 수의 여성들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흐름은 전혀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필연적인 것이었다. 페미니즘의 인식 틀을 빌리지 않고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여성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가 지나치게 깊어졌기 때문이다. 이 현실을 견디기 위해서는 사회가 내재시키려는 편견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게 여성들에겐 필요했다.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여성들이 다시 페미니즘을 이야기 한 것은 무엇보다 생존을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즉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채널예스의 이른바 '남성 혐오' 사태 그리고 산이와 송민호의 행보를 보면 그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성들 역시도 함께 변화하고 있는가? 하나의 사회 집단이 급격한 변화를 겪음은 결국 그 사회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남자들은 그렇게 달라진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왜 그렇게 되었는지 파악하고 있을까? 그래서 달라졌을까?

아마 앞으로 송민호가 '아낙네'를 통해 욕망했던 여성들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살았던 여성들이 결국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 지금 세대는 몸서리치게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 서있는 산이가 거부했던 여성들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남자들은 변화하지 않는다. 심각할 정도로 흘러가는 세대가 무색하게 그대로다. 이것이 남자들이 '한(국) 남(성)'이라는 단어에 발끈하고 페미니즘을 정신병으로 매도하며 한편으로는 '아낙네'를 찾는 2018년의 혼란한 끝자락에서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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