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른이 되면>의 한 장면.

영화 <어른이 되면>의 한 장면.ⓒ 시네마달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한 일들이 누군가에겐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각자의 삶에만 갇히지 말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다. 발달장애인 동생과 자신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꾹꾹 눌러 담아온 장혜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은 고정관념처럼 굳어진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시선과 생각을 한 폭 더 넓혀줄 작품.

유년 시절 동생을 돌보곤 했던 장혜영 감독은 시설로 보내진 동생과 긴 시간을 떨어져 지냈다. 그리고 다시 동생과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기까지 18년이 걸렸다. 그렇게 장혜영-장혜정 자매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영화는 시설에서 동생을 데려온 이후 복지 사각지대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야 했던 두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타심 아닌 이기심에서 시작"
 
 영화 <어른이 되면>의 장혜영 감독.

영화 <어른이 되면>을 연출한 장혜영 감독ⓒ 시네마달

 
"동생이 유년기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시설에서 생활했다. 터전을 옮기는 데 거부감이 있을 것 같아 설득하는 과정을 1년 정도 가졌다. 각오를 단단히 했지. 경제적인 준비도 해야 했고, 일을 안 할 결심도 해야 했다. 동생을 집으로 데려왔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을 생각해봤다. 시설에서 나와 동생 상태가 훨씬 안 좋아진다고 해도 탈시설을 할 것인지 엄청 고민했다. 또 얼마 전 부산에서 발달장애인 관련 범죄도 있었잖나. 그런 상황들까지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정이라 후회한다거나 지금의 생각이 흔들리거나 하진 않는다. 

혜정에게 '언니랑 살래' 물었는데 선뜻 좋다고 했지만 다른 시설로 가는 줄 알더라. 그만큼 삶의 폭이 좁아져 있는 거였다. 함께 집을 보러 다니다 보니 시설에서 나와 언니랑 산다는 걸 이해하더라. 여주에서 서울로 이사 오면서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서울이 장애인 지원을 나름 적극적으로 하는 지자체인데 6개월 이상 거주라는 단서가 붙더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동생과 버텨야 했다. 좋아 버텨주지! 결심하니 그 시간이 다르게 보이더라. 이 시간을 다큐멘터리 형태로 공유하면 어떨까 싶어서 지금의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발달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함께 고민하고,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기록하는 차원이었지만 원칙은 분명했다. 장혜영 감독은 "작품보단 우리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게 우선이었다"고 말했다. 장 감독의 고등학교 후배, 사회생활 하며 인연을 맺은 소중한 지인들이 힘을 보탰다.  

"영화에 나오는 친구들과 모두 좋은 관계이긴 했는데 사적으로 친밀한 이들은 아니었다. 제가 속얘길 잘 안 하는 사람이었거든. 고독하게 사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동생과 살면서 시간 앞에 개인은 무력하다는 걸 느꼈다.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한 사람씩 만나기 시작했다. 고맙게도 영화에 나온 사람들은 제 옆에 있어 준 거지. 만화 <원피스>처럼 '너! 내 동료가 돼라!' 이거였거든(웃음).

영화를 두고 이타심에 의한 프로젝트라 생각하는 분이 있는데 절대적으로 이기심에서 출발했다고 말하고 다닌다. 나답게, 그리고 동생이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게 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가 도움을 요청하는 개념도 좀 다른 것 같다. 네가 덜 힘드니 날 도와달라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가 불평등하니 함께 개선해보자는 식이다. 그래야 너 역시 누군가에게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삶을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외과적인 처치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의 주역들. 왼쪽부터 장혜영 감독, 장혜정, 윤정민 촬영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의 주역들. 왼쪽부터 장혜영 감독, 장혜정, 윤정민 촬영감독.ⓒ 시네마달


다행히도 장 감독의 지인은 촬영감독이 되거나 혜정의 음악 선생 등을 자처하며 시간과 마음을 함께 나눴다. "제 친구라는 건 동생 혜정의 친구이기도 하다"며 감독은 "그렇게 동생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길 원했다"고 속마음을 밝혔다. 

"혜정이는 시설에 살면서 친구를 만날 기회 자체를 박탈당했다. 친구라는 건 서로의 정체성을 공유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개인적이고 내밀한 시간이 필요하잖나. 시설에서 혜정은 익명의 개인으로 살았기에 제 친구를 통한 일종의 외과적 처치를 한 셈이다. 제 친구을 얼기설기 혜정에게 이어놓은 것이지. 감사한 건 처음 지인들을 인터뷰했을 때 혜정을 두고 '선배 친구, 언니 친구'라고 했었는데 다큐가 끝나고 나서는 친구로 받아들여 주더라." 

자칫 헷갈릴 수 있다. 국내 복지 정책상 장애인 시설을 정부가 지원하는 상황에서 탈시설을 주장하는 장 감독이 자칫 낯설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 복지 선진국 사례와 각종 논문을 공부하면서 장혜영 감독은 발달장애인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활동 범위를 좁히는 지금의 정책 방향이 잘못된 것임을 확신했다. 물론 동생을 데려오기까지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오롯이 동생을 보살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했다"며 장 감독은 운을 뗐다.
 
 영화 <어른이 되면>의 장혜영 감독.

영화 <어른이 되면>을 연출한 장혜영 감독.ⓒ 시네마달


"(발달장애인) 시설은 일종의 기형적 형태다. 조선시대 땐 그들이 차별받았을지언정 사람들 틈에서 함께 살았지만 현대에선 장애인들을 따로 모아놓고 살게하겠다는 거잖나. 신자유주의 개념이다. 형태 자체는 모던하지만 그런 방식은 장애인들이 마치 스스로 생각할 수 없고,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 수 없는 존재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이걸 놓고 복지라고 하는데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시설을 지원하는 건 좀 아귀가 안 맞는 것이지. 

장애인 시설은 고도 산업 사회의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기능할 수 없는 인간은 한쪽으로 치워놓자는 전제가 깔렸다고 본다. 시설 문제를 지적하면 비장애인들은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전 자신 있게 상관이 있는 문제라고 말한다. 요즘 사람들 대부분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다. 자기 삶의 취약한 부분 때문이다. 연약하게 되는 걸 두려워하는 사회다. 내가 아프거나 다치면 결국 스스로 돌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분들이 자신의 친구들에게 늙으면 같이 요양원에 들어가자고 하는 말들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건강한 시기임에도 자신을 사회에서 격리할 생각부터 하는 셈이다."


장애인 복지 정책에 대해 장혜영 감독의 생각은 분명했다. 함께 살자는 것이다. "탈시설이라는 건 연약한 사람을 사회가 함께 껴안자는 것"이라며 장 감독은 "고등학생들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듯 활동지원가 역시 어떤 숭고한 결심 혹은 이타적 성향이나 능력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불행과 불평등의 차이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 여기고, 비장애인은 일종의 은혜, 혜택을 베푸는 존재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강하다. 비영리국제기구 역시 기아나 빈곤에 허덕이는 이들을 내세워 지원을 호소하곤 한다. 그 시각 안에선 아무리 강력한 의지가 있더라도 방향이 잘못된 복지시스템이 등장하기 쉽다는 게 장혜영 감독의 생각이었다. 

"장애라는 게 사실 연민의 감정을 일으키니 그걸 강조하면 시혜적 시선에 머물기 쉽지. 내가 그 장애에 속할 가능성이 없기에 일정 부분 비장애인들은 (도움을 주면서도) 장애인들을 관람하기 십상이다. 도움을 주다가도 어떤 이유로 안 주면 또 그만이거든. 근데 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시민은 최소한 평등해야 하거든. 그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자는 건데 많은 분들이 장애인은 불행하다는 관점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자유에 대해선 많이들 얘기하고 이해도 또한 높은 편인데 평등에 대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저선, 안전망을 만들자는 얘기다. 그 안전망이 우리 사회에 없기에 비장애인들 역시 뭔가 새롭게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다. 실패했을 때 자신이 어디까지 떨어질지 예상할 수 없거든. 근데 '실패해도 사실 딱 요만큼만 뒤처질 뿐이야~'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사회라면 더 많은 사람이 살면서 도전하는 걸 즐기지 않을까 싶다."

 
 영화 <어른이 되면>의 장혜영 감독.

장혜영 감독ⓒ 시네마달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장혜영 감독은 "의지가 없어서 못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올해는 장애인 운동의 일종의 백래시(반발)의 해였다고 생각한다"고 지난 6월 정부가 발표한 '발달장애인 평생 케어 종합대책'에 대해 언급했다. 장혜영 감독 역시 당시 청와대 간담회에 초청받아 참석한 바 있다. 

"시혜적 관점에서 나름 정부는 열심히 하는 것이거든. 근데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여성운동에서 백래시는 페미니즘의 얼굴을 하고 온다는 말이 있듯 장애인운동에서도 백래시는 일종의 인권의 얼굴을 하고 온다고 생각한다. '장애인등급제를 폐지시켰는데 무슨 문제야?' 혹은 '정부가 이렇게 대책을 발표했는데 뭐가 불만이야' 하는 시각이 있다. 가짜 해결을 진짜 해결로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솔직히 청와대 안에 있는 분들의 관점이 바뀌진 않을 것 같다. 결국 국민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자는 게 이 영화의 취지기도 하다."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
 
 영화 <어른이 되면>의 한 장면.

영화 <어른이 되면>의 한 장면.ⓒ 시네마달

 
장혜영 감독은 지금의 영화 이후 중년, 노년이 되어서까지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우리가 그때까지 잘 살고 있다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변화했다는 뜻이니까"라며 그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게 영화를 완성해 개봉을 앞둔 오늘 현재 역시 동생과의 일상, 자신의 생각을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나누고 있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항상 하는 말 중 하나가 자식보다 하루 더 살고 싶다는 것이잖나.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편히 더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웃음). 저나 혜정의 조건으로 한국 사회를 산다는 건 명백하게 적자인 삶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이혼한) 부모는 부동산 하나 가진 게 없었고, 내가 벌지 않으면 당장 다음 달 월세를 내줄 사람이 없는 삶이다. 

이런 삶을 주어진 대로 산다는 건 천천히 불행의 길로 가는 것이나 마찬가진데 불행히 명백하게 예견돼 있을 땐 상황을 최대한 불확실하게 만들어서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기 계획을 하기 보단 6개월, 1년 단위로 바라보며 지금 안 했던 걸 해나가면 한 달 후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웃음)."

 
 영화 <어른이 되면>의 장혜영 감독.

장혜영 감독ⓒ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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