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바이벌 패밀리>의 포스터

영화 <서바이벌 패밀리>의 포스터 ⓒ 박장식


지금의 사회에 대해 여러 단어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최근에는 '초연결 사회'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한다. 통신, 교통 등으로 거미줄 연결되듯 복잡한 세상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가진 이 뜻은 지난 11월 서울 마포구 아현지사 KT 통신구 화재사고로 모든 이들에게 어쩌면 공포스럽게 각인되었을 수도 있다. 

지난 6일 일본과 영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에릭슨 사의 통신망 교환설비가 장애를 일으키면서 일본 소프트뱅크, 영국 O2에 가입된 핸드폰을 포함해 11개국의 다른 통신망도 장애를 일으켜 큰 손실을 입었다. 아현동 사고 때처럼 공중전화 앞에 길게 사람이 늘어서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본의 국민배우인 후카츠 에리와 코히나타 후미요 등이 출연한 영화 <서바이벌 패밀리>가 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한국의 관객을 만나기도 했던 이 영화는 국내 개봉에서 290명의 관객밖에 모으지 못했다. 그러나 도시의 기능이 마비되는 내용은 최근 한국을 비롯해 여러 국가에서 일어난 상황을 그대로 나타낸 것만 같아 인상적이다.

출근도 못 하고, 자동차도 못 타는 이것은 진짜 '재난'
 
 <서바이벌 패밀리> 스틸컷. 영화 <서바이벌 패밀리>에서는 자전거로 '강제 국토종주'를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서바이벌 패밀리> 스틸컷. 영화 <서바이벌 패밀리>에서는 자전거로 '강제 국토종주'를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 박장식

 
TV에, 스마트폰에 밀려 서로 간의 대화가 단절된 도쿄의 한 가족을 둘러싸고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전기가 끊기고, 스마트폰은 켜지지 않으며 시계조차도 울리지 않는다. 자동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고, 전철의 운행은 중단되었으며 자동문이 잠겨 회사에도, 학교에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된다.

국민 모두가 재난에 대비할 준비가 된 일본이라 할지라도 배터리 속의 전기를 쭉쭉 빨아가는 이상한 재난은 버텨낼 수 없다. 은행 앞은 돈을 인출하러 온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되고, 텅 빈 마트에는 사람들이 몰려 얼마 없는 현금을 박박 긁는다. 가족들은 처갓댁인 가고시마로 가기 위해 하네다 공항으로 가지만, 비행기도 움직이지 못한다.

결국 가족은 지도 앱 대신 중고서적에서 구한 사회과부도 교과서를 따라 걸어가기로 작정한다. 고속도로 위를 리어카로, 자전거로, 그마저도 없다면 두 발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흡사 피난민을 연상케 한다. '쓸모없는' 귀금속이나 현금 대신 물물거래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괜시리 쓴웃음도 난다.

이 영화, 꼭 보아야 할 이유
 
 <서바이벌 패밀리> 스틸컷. 가족들은 자동차에 쓰는 배터리 보충액을 물 대신 '스포츠 음료' 마시듯 까먹는다.

<서바이벌 패밀리> 스틸컷. 가족들은 자동차에 쓰는 배터리 보충액을 물 대신 '스포츠 음료' 마시듯 까먹는다. ⓒ 박장식


영화는 내내 코믹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무거운 쌀집 자전거를 끌고 낑낑대며 가는 아버지의 모습도 그렇고, 자동차 정비소에서 '정제수 100%' 표기를 보고 배터리 보충액을 까서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떤 시골집에서 숙박료 대신 담장을 나간 돼지들을 잡아오라는 미션을 완수하는 장면은 영화에 웃음을 피우게 만든다.

이런 영화를 마냥 즐거운 코미디물로만 접하기에는 마음 한구석이 편치는 않다. 가장 먼저 전기만큼이나 중요한 통신이 두절되어 큰 불편을 겪었던 사람들의 경험이 있고, 그리고 가족 간의 대화가 두절되어 한 집 안에서도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편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서바이벌 패밀리>가 큰 의미를 갖는 이유는 초연결 사회에서 한 가지라도 무너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미 사람들이 체감해왔기 때문이다. 단순히 고속도로나 지하철 노선 하나가 말썽이 생겨도 사람들은 큰 불편을 겪는다. 또 여러 이유로 정전 속 불편을 겪어봤으며, 최근에는 통신 장애로 무엇 하나 못 사고, 연락하지 못하는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웃음 뒤 깊은 공감을 남기는 것은 아닐까.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매력은 IPTV나 스마트폰의 VOD로 즐긴 뒤, 괜히 한 번 집의 '두꺼비집'을 열어서 우리 집 전기는 안전한지 확인하게 되는 것에 있다. 두꺼비집을 확인한 뒤 가족들에게 문자를 보내서, '이번 주말에 어디 가까운 곳으로 외식이라도 갈지' 물어보게 만드는 것도 영화가 주는 하나의 선물이 충분히 되지 않을까.
일본 영화 서바이벌 패밀리 영화 국가 기간망 초연결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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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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