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빌리 코건(Billy Corgan)과 제임스 이하(James Iha)가 함께 있는 사진을 본 팬들은 '세기의 화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놀라워했다. 2000년 < Machina/The Machines of God >을 발표하고 투어를 펼칠 당시 둘의 관계는 한국 겨울 날씨처럼 냉랭했기 때문이다.

강렬한 사운드와 깊은 감성으로 3천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며 20세기를 평정했던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는 2000년 12월 2일, 고향 시카고에서 마지막 공연을 펼치고 해체했다. 이후 빌리는 지미 체임벌린(Jimmy Chamberlin)과 즈완(Zwan)을 결성해 활동했고, 솔로 앨범도 발표했다. 2007년에는 지미와 함께 다시 스매싱 펌킨스로 < Zeitgeist >를 발표했으나 기대만큼의 반응은 얻지 못했다. 2009년에는 지미마저 밴드를 떠났다.

그래도 빌리는 스매싱 펌킨스를 놓지 않았다. 2012년 새로운 라인업으로 밴드를 재정비하고 < Oceania >를 발표했다. 이후 빌리와 제프 슈뢰더(Jeff Schroeder)만이 남은 상태에서 < Monuments To An Elegy >를 2014년에 발표했다. 하지만 예전 같은 뜨거운 반응을 얻지 못하고, 여러모로 심경이 복잡했던 빌리는 밴드 해체를 암시했는데,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팬은 많지 않았다.
   
 스매싱 펌킨스

스매싱 펌킨스 ⓒ Linda Stawberry / Press

 
18년 만에 다시 뭉친 친구들이 완성한 반가운 새 앨범

2015년 두 차례 밴드를 떠났던 지미가 돌아왔다. 제임스는 2016년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했고, 빌리는 17년여 만에 다아시 레츠키(D'arcy Wretzky)와 대화를 재개했다. 원년 멤버로 다시 활동하는 것에 신중한 반응을 보인 빌리는 2017년 두 번째 솔로 앨범 < Ogilala >를 발표했다. 그리고 결성 30주년을 맞은 올해 2월 15일, 스매싱 펌킨스는 지미와 제임스의 합류를 공식화했다. 아쉽게도 다아시는 밴드에 합류하지 않게 됐다.

거물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을 섭외한 밴드는 2월부터 약 4개월간 새 앨범을 작업했다. 애초 계획은 네 곡이 수록된 EP를 제작하는 것이었는데, 예상보다 더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쌓여 한 장의 앨범이 나오게 됐다. 'Shiny and Oh So Bright' 투어는 지난 7월부터 시작됐다.

빌리는 꽤 오래전부터 본인이 추구해온 방식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완벽하고 거대한 작품을 향한 집착이 현재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 Monuments To An Elegy >를 만들 때부터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하게 줄였다. 여덟 곡을 수록한, 30분이 조금 넘는 새 앨범 < Shiny and Oh So Bright, Vol. 1 / LP: No Past. No Future. No Sun. > 역시 간결함을 추구한다.
 
 앨범 Shiny and Oh So Bright, Vol. 1 / LP: No Past. No Future. No Sun.

앨범 Shiny and Oh So Bright, Vol. 1 / LP: No Past. No Future. No Sun. ⓒ Napalm Records

 
가장 먼저 공개한 것은 위풍당당한 록 트랙 '솔라라(Solara)'다. 강렬한 기타와 리듬을 내세운 이 곡은 지난 앨범에 수록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밴드 사운드의 핵심인 지미가 가세하면서 더 큰 추진력을 얻었다. 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스매싱 펌킨스의 마법이 다시 시작됐다는 찬사와 현실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공존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90년대 대표 히트곡 '1979'의 미묘한 감성과 감미로운 멜로디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후속 싱글 '실버리 섬타임즈(Silvery Sometimes)'를 향한 반응은 한결 우호적이었다. 팬들은 오랜 친구와 재회했을 때 같은 반가운 마음으로 과거의 영광을 추억했다. 빌리는 이 곡에서 뮤직비디오 감독도 맡았다.

스트링 섹션과 여성 보컬이 가미된 드라마틱한 톱 트랙 '나이츠 오브 몰타(Knights of Malta)'는 밴드의 현재를 보여준다. 우울한 정서가 흐르는 '트래블스(Travels)'는 과거보다 부드럽고 사려 깊으며 능란한 보컬을 선사하는 로큰롤 '마칭 온(Marchin' On)'의 구성도 빼어나다. 몽환적인 아르페지오와 깔끔한 사운드, 온화한 멜로디가 인상적인 '위드 심파시(With Sympathy)'는 지미가 작곡가로 이름을 올렸다. 멤버 개개인의 특성이 잘 융합되면서 다양성을 갖는 앨범을 완성하는 데 힘을 보탠 프로듀서 릭의 역량이 돋보인다.

빌리와 제임스는 오랜만에 함께 식사했을 때 밴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스스럼없이 어울렸던 오랜 친구로 다시 만난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재회는 과거의 좋은 기억을 되살렸고, 빌리는 활력을 찾았다. 단지 스매싱 펌킨스로 다시 함께하고 싶어 시작한 앨범은 내년에 후속편까지 발표할 예정이다.

빌리는 최근 인터뷰에서 언젠가 크리스마스 앨범도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만약 그게 성사된다면 거친 록이 아닌, 아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에 둘러앉아 들을 수 있는 잔잔한 음악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음악 스매싱 펌킨스 SMASHING PUMPKINS 빌리 코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