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월 하고도 반이 지나갔다. 2018년을 시작하며, 새롭게 마음먹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시간은 또 이렇게 흘러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즈음 각종 송년회에 참석하며  '다사다난'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일어난 것이 과연 '사건'만일까? 우리가 겪는 다사다난한 일들은 그에 따른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감정들은 그 사건 자체보다 더 오래도록 마음과 몸에 남아 있곤 한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내가 느껴왔던 감정들을 떠올려봤다. 기쁘고, 즐거울 때도 많았지만, 그 사이사이 나는 수많은 부정적 감정들을 느껴왔다. 지금 돌아보면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이지만, 당시에는 우울하고 불안하고 슬프게 느껴졌던 일들도 많았다. 힘든 감정들이 덮쳐 올 때마다 난 스마트폰 앱을 열고 노래를 틀었다. 이 노래들이 있었기에 힘들었던 시간은 '순간'이 되었고, 그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사건들은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다. 올 한 해 힘든 감정을 견디게 해주었던 노래들을 소개한다.

우울할 때 : 신승훈의 'Hello, Hello, Hello'

지난 1년간 일상에 가장 많이 찾아온 부정적 감정은 우울이었던 듯싶다. 수고한 것을 가족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 애써 써내려간 글을 스스로 지워버려야 했을 때, 공들여 준비한 집단상담 프로그램이 별 효과를 발휘하지 않았을 때 난 우울해졌다. 특히 시간의 덧없음 속에 점차 나이 들어가는 나의 모습을 실감할 때 불쑥불쑥 우울이 찾아왔다. 심리학에서는 우울이 자신과 세상이 무가치하다는 생각에서 생겨난다고 본다. 우울증의 인지치료를 창시한 아론 벡은 '자기 자신, 세상, 미래에 대한 부정적 사고'를 우울의 원인이라 했고, 우울할 때는 그 이면의 생각을 바꿔보아야 한다고 했다. 우울하다고 느꼈던 그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나 역시 내가 인정받지 못하고 있거나, 세상이 덧없다는 생각 혹은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Hello, Hello, Hello' 가 수록된 신승훈의 11집 앨범 재킷

'Hello, Hello, Hello' 가 수록된 신승훈의 11집 앨범 재킷ⓒ (주)지니뮤직

  
이럴 때 내가 듣는 노래는 신승훈의 'Hello, Hello, Hello(작사 심현보, 작곡 신승훈, 권태은)'다. 이 노래는 신나는 리듬으로 기분전환을 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사를 음미하다보면 우울의 원인이 되는 '가치 없다'는 생각에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신승훈은 'Hello, hello, hello'라며 안부를 묻듯 노래를 시작한다. '그냥 안녕한 거죠'라며 다가오는 맑은 음성은 주의를 환기시킨다. 이어 신승훈은 이렇게 노래한다. '생각보다 빠른 시간과 다행히 더딘 기억들 여전히 그대를 떠올릴 때마다 내 맘이 얼마나 설레는지'라고. 시간은 빨리 흘러도,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나는 여전히 소중한 존재라고 말해주는 이 소절은 '덧없다'는 생각에서 나를 꺼내주었다. 또, 신승훈은 '나의 하루엔 늘 고마운 그대가 숨을 쉬죠'라고 이야기해주고 '언제나 그대의 맘이 안녕하길, 아픈데 없이 늘 편안하길'이라며 마음을 달래준다. 이런 소절들은 가끔 상처를 줄지라도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을 떠올리게 해줬다.

노래를 마무리하면서 신승훈은 이렇게 강조한다. '이것만 기억해요. 그 누구보다 그댄 빛나는 사람'이라고. 어쩌면 이것이 우울할 때 기억해야 할 단 한가지인 지도 모르겠다. 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소중한 존재며, 누군가는 나를 소중하게 여겨준다는 것. 지금 내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거나 삶이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 우울한 연말을 맞이하고 있다면, 이 노래의 가사를 반복해서 들어보길 바란다. 마치 내게 이야기해주는 듯한 노랫말을 통해 나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 우울은 옅어진다.

불안할 때 : 커피소년의 '토닥토닥 쓰담쓰담'

우울 다음으로 나를 지배했던 부정적인 감정은 '불안'이다. 내게 불안은 한 밤중에 응급실로 차를 몰고 가야했을 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발표하려 할 때, 밤늦도록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을 때 등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늘 찾아왔다. 그런데 불안은 '내가 무가치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우울과는 좀 다르다. 머릿속으로는 하면 되고 기다리면 되는 걸 알고 있는데 그걸 몸과 마음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실 심리학에서 불안은 위협에 대비하도록 돕는, 인간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감정으로 분류된다. 사람이 불안을 느끼지 못했다면 위험에 대비하지 못했을 테고, 지금처럼 인류가 번창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본래적인 감정인 불안은 곧바로 위협에 대처하는 행동을 이끌어 내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나는 등 신체반응으로 먼저 나타난다.

이런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우울처럼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는 신체반응을 가라앉히는 게 중요하다.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려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나는 커피소년의 '토닥토닥 쓰담쓰담(작사 커피소년, 작곡 커피소년)'을 떠올린다.
 
 지난 2015년 발표한 커피소년의 '토닥토닥 쓰담쓰담'

지난 2015년 발표한 커피소년의 '토닥토닥 쓰담쓰담'ⓒ (주)벅스

  
커피소년은 이 노래에서 별 다른 이야기를 전하지 않는다. 그저 차분하고 따뜻한 음성으로 '토닥토닥'과 '쓰담쓰담'을 반복할 뿐이다. 반복되는 편안한 선율과 음성은 불안해서 다급해진 나의 신체반응을 가라앉혀 주는 데 매번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불안하면 안 된다고, 일단 시도해보라고 조언해주지도 않는데도 커피소년의 '토닥토닥'이 반복될 때마다 심장박동이 느려지는 걸 느낀다. '쓰담쓰담'하는 따뜻한 음성은 마치 엄마가 등을 쓸어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느낌을 상상하다보면 어느덧 식은땀이 멈춘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면서 점점 마음도 차분해진다. 실제 심리치료 장면에서도 불안에서 비롯되는 여러 문제들은 이렇게 신체증상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보곤 한다. 이 노래는 이런 원리를 구현한 곡이라 할 수 있다.

커피소년은 노래 중간 딱 한 소절 당부의 말을 전한다. '두려움이 찾아올 때 내 목소리를 기억해요. 혼자인 것만 같을 때 내 목소리를 기억해요'라고. 불안하고 두려울 때 커피소년의 당부대로 '토닥토닥 쓰담쓰담'을 떠올려보자. 거짓말처럼 마음이 차분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슬플 때 : 민서의 '알지도 못하면서'

슬픔은 내 마음 깊은 곳에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는 감정이다. 10년 전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난 마음껏 슬퍼하지 못했다.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었기에, 괜찮아야 한다고, 아이에게 슬픔을 물려주면 안 된다고 무의식적으로 주문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 밖으로 나오지 못한 슬픔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옥죈다. 엄마의 생신이나 기일은 어김없이 슬픈 감정이 먼저 기억하고, 길가다 엄마와 딸의 오붓한 모습을 보고도 갑자기 울컥한다.
 
슬픔은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이든, 자기 자신의 꿈이든,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애도의 감정이다. 우울이나 불안과 달리, 슬픔은 그 감정을 조절하고 없앤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 속 깊이 숨겨놓은 슬픔은 언젠간 다시 터져 더욱 오랫동안 아픔을 유발한다. 10년 전 억누른 슬픔이 여전히 나를 떠나지 못하듯 말이다.
 
 '알지도 못하면서'가 수록된 민서의 앨범 'Is Who'

'알지도 못하면서'가 수록된 민서의 앨범 'Is Who'ⓒ (주) 카카오M

  
지난 6월 발표한 민서의 '알지도 못하면서(작사 김이나, 작곡 박근태, 진바이진, Anne Judith Wik, Ronny Svendsen)'는 이런 오래된 슬픔에 관한 노래다. 노래에서 연인과 헤어진 민서는 '난 울지 않는 나를 보면서 기특하다고 칭찬을 했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냥 다 덮어버렸던' '세상 모든 일이 지나'가듯이 사라질 줄 알았던 슬픔은 오랜 시간 후에 민서의 마음을 '겨울'로 만든다. 그리고 민서는 깨닫는다. '눈물이 흐를 때면 흘리는 게 어른이란 걸 나는 정말 몰랐어'라고. 이 노래가 발표되었던 때, 난 막 엄마의 10번째 기일을 지나던 참이었고, 이 노래를 들으며 나 역시 민서와 다르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후 난 불쑥 올라오는 슬픔을 애써 누르고 싶어질 때마다 이 노래를 듣는다. 슬픔을 억누르는 것이 더 오래 슬픔에 사로잡혀 사는 것임을 기억하고, 이제라도 내게 밀려오는 슬픔을 느끼고 표현하려 애쓰면서. 혹시라도, 묵은 슬픔을 여전히 안고 있다면 이 노래의 가사에 귀를 기울여보길 바란다. 눈물이 나면 한바탕 쏟아내고, 감정이 북받친다면 며칠 동안 앓아도 된다. 당장은 괴롭겠지만, 그렇게 실컷 울고 나면 신기하게도 훨씬 개운해진다. 묵은 슬픔은 2018년에 모두 토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2019년 새해를 맞이해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을 필자의 개인블로그( https://blog.naver.com/serene_joo) 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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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로 세상을 관찰하며 살다, 지금은 사람의 마음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체가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며, '생명감수성'과 '마음의 성장'을 일상과 문화콘텐츠를 통해 공유하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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