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San E)의 게시글 갈무리

산이(San E)의 게시글 갈무리ⓒ 산이(San E)

 
"남이 안 한다고 너도 여성인데 왜 안 해? 라고 강요를 할 수는 없는 거예요."

지난 11월, 이수역 폭행사건 이후 '페미니스트'라는 신곡을 내놓아 논란의 중심에 섰던 래퍼 산이(San E)가 지난 5일 '탈코르셋'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올렸다. 영상 속 그는 탈코르셋의 정의를 읽어주며 맞는 말이라고 동의했다. 그 후 탈코르셋 운동은 좋지만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 억지로 꾸미지 말라는 탈코르셋 운동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이를 함께 하지 않는 여성들을 향해 '탈코르셋'을 강요하는 것도 또 다른 코르셋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탈코르셋 운동을 지지한다는 산이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건 나뿐이었을까. 사실 그동안 그가 보여온 행보들은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다. 그런 맥락에서 그가 최근 발표한 신곡 '웅앵웅'도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을 나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데블스TV'를 운영하고 있는 BJ 김영빈은 산이(San E)가 올린 '웅앵웅'이라는 신곡 가사에 조목 조목 반박하는 영상을 지난 5일 올렸다.

이 가사가 어떻게 읽힐지 정말 몰랐을까

김영빈은 영상에서 "산이(San E)의 신곡 '웅앵웅'은 '쿵쾅쿵쾅'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데 이는 뚱뚱한 여자들, 못생긴 여자들이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해 페미니즘을 하고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그의 말처럼 실제로 페미니즘과 관련된 글들이 올라오면 '쿵쾅쿵쾅'이라는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하고, 일부 댓글은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거나 멧돼지에 비유하는 등 적절하지 않은 내용들이다. 산이(San E)는 자신이 쓴 이 가사가 어떤 뜻으로 읽힐지 전혀 몰랐을까.

이어 산이는 '웅앵웅'에서 자신은 절대 여성혐오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영빈은 산이(San E)가 여전히 '여성혐오'에 대한 뜻을 모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산이가 지금껏 보여온 행동들은 '난 여성혐오를 하지 않는다'란 짧은 한 마디로 희석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산이(San E)의 지난 모습들이 어땠나. 그는 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의 어깨에 무례하게 손을 올려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릴샴의 'Ride'라는 곳을 피처링한 가사에 '소라넷 스타일'이라는 가사를 사용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가 아이린의 어깨에 손을 올린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팬들과 인사하는 아이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팬들을 향해 혓바닥을 내밀었다. 자신은 아이린에게 손을 올릴 수 있다는 일종의 과시다. 또한, 소라넷은 각종 불법 촬영물과 강간 모의 등의 성범죄가 일어나던 인터넷 사이트이다.

"저는 궁금한 게 있습니다. 산이씨가 성평등을 위해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것 말고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저 역시도 별로 한 게 없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방향성은 이래야 한다. 이렇게 운동해야 한다. 이런 평가나 운동의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거든요. 제가 그들을 쉽게 비판할 수 없는 이유는 젠더 기득권 위치에 있고 어떻게 보면 구조적 가해자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비판을 할 수 없는 거예요. 도대체 산이씨는 여성인권을 위해 페미니즘을 까는 것 말고 한 게 뭐가 있어요? 가사에 소라넷 어쩌고 쓴 거? 조롱하는 가사를 쓴 것?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가사를 쓴 것? 말고 뭐가 있어요? 여성들이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근원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계속 비판만 하는 것이 산이씨가 주장하는 성 평등입니까? 아까 말했듯이 그것은 중립이 아니라 가해의 동조입니다."
 
 산이의 '웅앵웅'을 비판한 '데블스TV' 김영빈씨 영상

산이의 '웅앵웅'을 비판한 '데블스TV' 김영빈씨 영상ⓒ 데블스TV


김영빈의 말은 날카로웠다. 물론, 최근 콘서트에서 자신을 욕하는 피켓을 발견하고 날아든 물건에 심한 욕설 등이 적혀 있다는 점이 산이에게 충격이고 상처가 됐을 수 있다. 그러나 왜 자신에게 이렇게 비판을 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차라리 소라넷이 나쁜 이유를 몰랐다고, 누군가의 어깨에 함부로 손을 올릴 수 있는 것이 권력인지 몰랐다고 고백했다면 응원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김영빈은 '남성혐오 eww 이미 인식 메갈은 사회악'이라는 '웅앵웅' 속 가사에 대해 "남성혐오라는 단어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남성들이 가정폭력에 의한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실제로 목숨을 잃거나 단순히 남자라는 이유로 취업에 있어서 성차별을 당하는 등 구조적인 차별이 존재했을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산이는 여성혐오를 여전히 진행 중인 래퍼"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런 맥락 하나 하나가 '탈코르셋을 지지한다'고 밝힌 산이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의 기계적 중립, 기계적 양성평등이 두렵다

"남자가 여자한테 아니면 여자가 남자한테 '아 정말 예쁘시네요. 오늘 되게 아름다우시네요. 오늘 뭔가 멋지시네요'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상이지 이걸 남자적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여기는 것은 마음 자체가 온전하지 않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산이는 '탈코르셋을 지지한다'며 올린 동영상에서 칭찬을 칭찬답게 여기지 않는 이들이 비정상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렇다고 넘길 수 있는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본인은 칭찬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성희롱으로 느낀다면, 그건 성희롱이지 기분 좋게 받아 넘길 칭찬이 될 수 없다. 

나는 그의 기계적 중립, 기계적 양성평등이 두렵다. 여전히 공중화장실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목숨을 위협받고 어디를 가든지 몰래카메라가 있을까 주변을 살펴야 하는, 면접장에서 '결혼을 하면 안 된다'는 말과 '임신하면 아웃'이라는 말들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편안한 자세로 중립, 양성평등만 외치는 그의 모습이 불편하다. 그리고 그가 올린 동영상들에 많은 댓글들이 그러하듯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또한 나를 두렵게 만든다. 

산이는 아직 뭔가 잘 모르는 것 같다. 유재석과 방탄소년단 RM도 읽었다는 <82년생 김지영>을 봤다는 이유로 소녀시대 수영, 레드벨벳 아이린, 에이핑크 손나은 등 여자연예인들이 당한 수모를 말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그는 자신이 가진 기득권의 정체가 진정 무엇인지 알지 못했나 보다. 그게 남성인 본인이 가진 권력이란 사실조차도.

물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여성인권을 위해, 성 평등을 위해 특별히 무언가를 해온 적은 없다. 개중엔 과격한 언어와 행동들로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또 "남자한테 왜 그래?"라며 되묻지 않으려고 한다. 적어도 모르는 걸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현재 한국사회의 성평등, 양성평등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혐오 요소 없는 콘텐츠 만들기 나선 김영빈씨

산이를 비판하고 나선 김영빈씨의 궤적은 한 번쯤 참고할 만하다. '데블스TV'는 처음엔 여러 가지 재밌는 영상을 주로 올리던 유튜브 채널이었다. 하지만 이후 김영빈씨는 혐오가 버젓이 담긴 콘텐츠들을 자정작용 없이 쏟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래서 이후부턴 혐오 요소가 없는 콘텐츠들을 중요시했다고 한다. 그 시작은 장애인 비하 표현을 없애는 것이었다.

그는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서 혐오를 이용하지 않는다. 섣불리 사회 이슈를 이용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와 같은 사람들이 만든 콘텐츠들이 흥행하고 너 많이 알려지기를 바란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혐오성 콘텐츠가 아니라 정말로 뜻깊고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활발하게 유통되면 우리 사회 분위기도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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