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셰이브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의 작품 포스터

영화 <셰이브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의 작품 포스터ⓒ 20세기 폭스 코리아

  
<셰이프 오브 워터>는 아마도 신에 가까워지려는 이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다. 길예르모 델 토로는 언어장애인 엘라이자(샐리 호킨스)와 어인(더그 존스)의 사랑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리처드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오컴 연구소의 보안 책임자로서 두 사람의 사랑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하고, 소련의 스파이 호프스테틀러(마이클 스털버그)는 자신의 임무를 어겨가면서까지 두 사람을 돕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섬겨야 할 하나의 우상이 있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해 자괴감에 빠진다. 

영화상에서는 엘라이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기에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이 생략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등장인물 각자의 우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막연히 추측하기만 했다. 하지만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후 출간된 원작소설에는 그들의 내면을 조금 더 엿볼 수 있는 여러 단서가 등장한다. 

대니얼 크라우스와 길예르모 델 토로가 집필한 이 소설은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불필요하게 잘린 부분이 수록되어 있다. 영화와는 달리 인물의 마음이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흐름도 보다 명확하다. 어인인 데우스 브랑퀴아(Deus Branquia)를 포획하러 가는 스트릭랜드의 모습도 나온다. 말하자면 이 어인이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님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준다. 그리고 이 미묘한 차이가 <셰이프 오브 워터>의 소설과 영화를 갈라놓는 포인트임이 틀림없다. 

정글과의 연결고리

영화는 1963년의 냉전 시기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에 별일이 다 있었지만 단지 소련과 미국 간의 경쟁구도만이 나오기엔 배경이 너무 아깝다. 그리고 영화상에 이름이 잘 언급되지 않던 어인은 소설 상에서 데우스 브랑퀴아라는 것으로 명확하게 지칭된다. 말하자면 그는 소설 상에서 명확하게 언칭된다. 또한 소설의 초반에는 스트릭랜드가 '아가미 신'이라는 뜻의 데우스 브랑퀴아를 포획하려 아마존에서 1년 반 정도를 보내는 과정이 적혀있다. 그러니까 사실 이 영화에서 어인은 갑작스레 등장한 것도 아니고 신비스러운 존재도 아니다. 

데우스 브랑퀴아라는 단어에는 단지 임무의 수행이라는 한가지 뜻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데우스 브랑퀴아의 취득은 곧 사랑하는 가정으로의 회귀이자, 상관인 호이트 장군에게 추궁당하지 않는 방법이다. 이때 호이트 장군과 스트릭랜드의 관계는 거진 운명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소설 초반에 언급되는 스트릭랜드의 한국전 참전 경험에서 알 수 있다. 

한국전에서 호이트 장군은 미군의 사고로 사망한 어느 민간인의 소문을 덮기 위해 마을 사람 모두를 몰살하라는 명령을 스트릭랜드에게 내린다. 동굴 안에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조용한 침묵을 스트릭랜드는 일말의 총성으로 깨어버린다. 이때 호이트는 스트릭랜드에게 자네가 미국을 구한 것이라며 칭찬해준다. 말하자면 스트릭랜드는 한국전에서 미국적인 가치를 대변하는 한편, 미국의 치부를 고스란히 끌어안았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스트릭랜드는 말을 못하는 엘라이자를 인간이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데, 그가 수화를 몰라서 젤다를 통하지 않으면 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어인 '데우스 브랑퀴아' 또한 마찬가지다. 엘라이자가 아니면 어인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어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스트릭랜드는 엘라이자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스트릭랜드는 데우스 브랑퀴아를 잡으러 가는 1년 반의 순례길에서부터 죽음에 다다라는 막바지까지 내내 PTSD에 시달린다. 한국전쟁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던 그의 기억은 잘린 손가락을 통해 표면화되어 진통제를 통해 잠재워진다. 이제 그의 눈앞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도 태도만큼은 당돌한 엘라이자가 있고, 그것은 동굴 속에서 공포에 떨던 민간인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엘라이자와 우리에게는 '손의 목소리(수화)'가 있다.

손의 목소리

계급상승의 욕구는 필연적으로 아래를 밟고 올라서는 방식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이들은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으로 서로를 나눈다. 요컨대 그들은 타자이며 그렇기에 우리와는 어울릴 수 없다고 말한다. 스트릭랜드가 한국전에서 저지른 학살은 민간인들을 암묵적으로 '인간이 아닌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고, 그 결과를 토대로 스트릭랜드의 계급은 상승했다.

스트릭랜드는 부도덕함에 발을 내디딘 후로 줄곧 그것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그래서 그는 늘 결혼반지를 만지고 있다. 결혼반지는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증표이기도 하지만, 반대로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자신이 구속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그는 권력만을 바라보면서도 권력에 구속됨을 잘 알고 있었다. 즉 이 반지는 잘 풀리지 않는 결혼생활과 풀리지 않을 죄책감에 대한 은유다.

계급상승을 위해 저지른 학살은 스트릭랜드를 승진시킴과 동시에 도덕적으로 옭아 메었다. 요컨대 이 반지를 끼운 손가락이 어인에게 뜯겨 나가는 것은 그런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 이제 이 폭력의 고리는 스트릭랜드의 손에서 떨어져 나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폭력의 고리를 통해 뭉친 소수자 고리가 새롭게 떠오른다. 엘라이자와 그녀의 주변인물들이 한데 뭉친 '고리'이다.

계급으로부터의 폭력에서 아래로 밀려난 우리는 입의 언어를 강탈당한 대신에 손의 언어를 촛불을 빌려 내세우게 되었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엘라이자가 영화의 끝에서 물었던 물음을 되새겨보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에게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손의 목소리'를 그들에게 들려주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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