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개 속 소녀> 메인포스터 영화 <안개 속 소녀> 메인포스터

▲ 영화 <안개 속 소녀> 메인포스터영화 <안개 속 소녀> 메인포스터ⓒ (주)미디어마그나


01.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며, 하나의 장르로까지 자리잡아가고 있다. 소설이 쉽게 영화화 될 수 있는 이유는 스토리텔링에 있다. 이야기를 구현해내는 매체의 특성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 핵심에는 관객들의 눈과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원작의 소설가들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맡는다던가 일정 부분 참여할 수 있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가가 직접 연출을 맡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역시, 동일한 이야기라도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가? 하는 지점에서의 소설과 영화의 방식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 <안개 속 소녀>의 도나토 카리시 감독은 이 지점에서부터 독특한 이력을 갖는 인물이다. 그는 원래 이탈리아 문학계의 거장으로 여겨지는 사람이었다. 바티칸 내사관과 카멜레온 연쇄살인범을 소재로 한 <영혼의 심판>과 <속삭이는 자>, 그리고 <이름없는 자>를 연달아 흥행시키며 세계적으로 6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이탈리아 스릴러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사실 이번 작품 <안개 속 소녀>는 애초에 영화를 염두에 두고 쓴 시나리오였으나 이를 먼저 소설로 출간한 뒤에 감독으로 직접 연출에 나선 작품이다.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전, 오랫동안 영화 시나리오를 써왔던 경험이 이번 작품에 영향을 준 셈이다. 영화 <안개 속 소녀>는 도나토 카리시 감독의 데뷔작이다.
 
영화 <안개 속 소녀> 스틸컷 영화 <안개 속 소녀> 스틸컷

▲ 영화 <안개 속 소녀> 스틸컷영화 <안개 속 소녀> 스틸컷ⓒ (주)미디어마그나


02.

영화는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이른 새벽, 안개 속으로 실종된 한 소녀의 뒤를 쫓는 형사 보겔(토니 세르빌로 역)과 증거도 없이 용의자가 된 교수 마티니(아레시오 보니 역) 사이의 치밀한 심리가 중심이 되는 미스터리 스릴러 작품이다. 증거 조작 사건으로 명성에 위기를 느낀 스타 형사 보겔은 언론과 대중을 이용해 이 사건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활용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증거와 상관 없이 용의자로 지목된 마티니 교수는 온 마을의 비난을 받는 대상이 된다.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언론과 대중의 태도도 마찬가지. 사실보다는 비난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일에 급급하며 과정의 공정함보다는 예상되는 결과의 현실화에 더욱 큰 목적을 갖는다.

감독은 사라진 소녀의 행방을 두고 각자의 이득과 욕망을 채우려는 인물과 사회의 모습을 냉철하게 들여다보고 작품에 투영시키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특히, 사건을 해결하기보다 현 상황을 이용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이들의 모습은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대중의 확증 편향과 무책임한 군중 심리의 부정적 결과들을 낱낱이 파헤친다. '진실을 원하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요?'라는 영화 속 대사는 이 작품이 나아가는 방향이 어떤 쪽에 있는지를 더욱 명확히 알 수 있게 해준다.

03.

이 작품이 갖는 특이점 중 하나는 액자식 구성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리 정신과 의사 플로레스(장 르노 역)와 형사 보겔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두 사람의 시점 사이에 과거에 일어난 사건인 실종 사건을 삽입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의 경우에 액자식 구성에서 메인 스토리는 구성 사이에 삽입된 이야기가 맡게 되고, 바깥에 위치하여 영화의 처음과 끝에 놓이게 되는 내러티브는 단순히 장치적 구성에 불과하거나 상황을 돕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어떻게 시작되고 끝나는지를 떠올려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작품 <안개 속 그녀> 역시 거의 동일하다. 사건의 중심이 되며, 작품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액자식 구성의 내러티브 사이에 삽입된 이야기, 즉 실종된 소녀를 둘러싼 형사 보겔과 마티니 교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액자식 구성의 형식적 요소로 활용되고 있는 의사 플로레스와 형사 보겔의 이야기를 쉽게 흘려 보내지 말아야 한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 속에 작품 전체를 전복 시킬 수 있을 만큼의 중요한 단서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안개 속 소녀> 스틸컷 영화 <안개 속 소녀> 스틸컷

▲ 영화 <안개 속 소녀> 스틸컷영화 <안개 속 소녀> 스틸컷ⓒ (주)미디어마그나


04.

이 작품은 분명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표방하고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액션이나 빠른 전개를 통한 역동성을 획득하는 시도들은 거의 하지 않는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잔잔한 흐름 속에서 대사를 활용한 심리적 표현에 더욱 뛰어난 강점을 갖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작품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역시 원작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감독의 경험 부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400페이지에 육박하는 도서의 내용을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의 영상으로 옮기다 보니 많은 부분을 축약할 수 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원작 소설의 내용을 알지 못하면 영화만으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생기고 말았다.

특히,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부분은 인물들의 관계가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인물 간 구조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서로를 이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수직적 구조를 이루는 의사 플로레스 – 형사 보겔 – 교수 마티니의 축과 죄(罪)의 측면에서 수평적 구조를 이루는 동일한 세 사람의 축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각 인물의 시점이 내용에 앞서 정확히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이 구조를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으나, 영화에서는 이 구조가 서로 섞여 있는 것은 물론 대사를 통해서만 구분해야 하기 때문에 복잡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이 지점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만 할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이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또 세 사람이 관계가 어떻게 물리고 물리는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유일한 아쉬움이다.

05.

이 작품에서 가장 서늘한 지점의 내용은 영화 바깥에 위치해 있다. 이 작품의 선재물 가운데 하나인 포스터 정 중앙에 쓰여진 문장 하나. '소녀가 사라졌다'에 숨겨진 이야기와도 연관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보겔과 마티니 두 사람의 씨름에 집중하는 사이 피해자 소녀의 행방과 안전은 잊히고 만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지나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녀의 모습이 등장하기 전까지 영화 속 인물들은 물론 관객들까지도 그녀의 모습에 대해 아무도 궁금해할 수 없도록 짜여있다.

이 작품의 상영이 모두 끝나고,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충격은 조금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 영화가 왜 그녀에 대해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었던 관객들 역시 왜 그녀에 대해 궁금해할 수 없었는지가 처음에 언급했던 우리 사회의 언론과 대중의 관계를 축약해놓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티니 교수가 처음 용의자로 지목 당했을 때 외면하기 바쁘던 가족들의 모습과 혐의가 풀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대가로 엄청난 배상금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에 눈물까지 흘리며 환영하던 가족들의 모습만 비교해봐도 그 사이에 놓인 커다란 괴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영화 <안개 속 소녀> 스틸컷 영화 <안개 속 소녀> 스틸컷

▲ 영화 <안개 속 소녀> 스틸컷영화 <안개 속 소녀> 스틸컷ⓒ (주)미디어마그나


06.

이 작품은 도나토 카리시 감독의 큰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간결함과 이해의 용이성이라는 측면에서 다소 아쉬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 두꺼운 소설을 한 편의 작품으로 새롭게 구성하고 안정적인 연출을 해냈다는 것 또한 놀라운 부분이다. 동일한 소재, 유사한 진행으로 점철되며 쏟아지던 최근의 한국형 범죄 스릴러들에 익숙했던 관객들에게는 분명 신선한 경험이 될 것이며, 다양성의 측면에서 이바지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을 조금 더 깊이 느껴보고 싶은 관객들에게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영화와 소설이 서로 상호보완하며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전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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