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노(회찬) 의원을 한번도 만나지 못한 게 아쉬운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의 은유적 언변에 담긴 해학은 누구도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평생 민중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이해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거침없는 표현에 품위를 담아 우아하게 사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서울에 돌아가면 재단 후원회원으로도 참여할 생각이다."
 
배우 정우성은 '민중'이란 표현을 썼다. 정우성은 고 노회찬 전 의원의 "은유적 언변에 담긴 해학"과 그 "거침없는 표현"에 담긴 '품위'와 '우아함'이 노 의원 특유의 민중적 관점에서 비롯됐음을 꿰뚫고 있었다.
  
자신의 영화 소회 밝히는 정우성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특별전에 선정된 배우 정우성이 13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고려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배우 정우성ⓒ 연합뉴스

 
영화 주간지 <씨네21>은 지난달 말 발간된 1182호에서 정우성과 같이 노 전 의원을 기억하는 여러 '친구들'의 회고를 담았다. <노회찬재단 설립 준비하는 친구들, 우리는 아직도 그가 그립습니다>라는 제목에 담긴 이 특집기사는 그 '친구들'이 노회찬 하면 떠올리는 영화와 그에 대한 일화를 담았다.
 
정우성을 비롯해 배우 박중훈과 변영주·김조광수 감독, 황윤정 영화사 하원 대표 등 영화인과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박용진·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정치인,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과 노회찬재단준비위원회 공동실행위원장인 조승수 전 의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다.
 
김조광수 감독은 곧 촬영에 들어갈 < 82년생 김지영 >을 꼽으며, 2013년 자신의 동성 결혼식에 참석했던 노 전 의원의 축하를 기억했다. 박용진 의원은 <내부자들>을 꼽으며, 노 의원의 안기부 '삼성 X파일' 폭로를 떠올렸고, 같은 이유로 조돈문 이사장은 <또 하나의 약속>을 언급했다. 또 변영주 감독은 켄 로치 감독의 <레이닝 스톤>과 함께 "노회찬 의원은 어떤 상황에서도 해피엔딩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그 중 진 장관은 이러한 일화를 소개했다.
 
"호주제 폐지운동을 함께하며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호주제 위원소송변호인단이었고, 노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정치권 내에서 호주제 폐지운동에 앞장서고 계셔서 국회 법안소위 때마다 뵀다.
 
호주제 폐지 여부를 놓고 사회적 공방이 뜨거운 때 '호주에도 없는 호주제는 없애자'며 위트 있는 한방을 날리기도 했다. 해마다 '3·8 세계 여성의 날'이면 이날을 상징하는 빨간 장미를 보내주셨는데, 남녀 정치인을 통틀어 이만큼 젠더 감수성이 뛰어나고, 여성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신 분은 드물다."

 
지난 2004년 우여곡절 끝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던 노 전 의원. '호주제 폐지'가 그의 1호 대표발의 법안이었다는 사실은 사후 다시금 회자되기도 했다. 민중과 인권, 이 두 화두야말로 인간 노회찬이, 정치인 노회찬이 지켜내고자 했던 신념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그 노 전 의원에게 정부가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한다. 노 전 의원 생전 인권 향상에 기여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서다.
  
영정 속 노회찬은 웃고 있었다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가 마련됐다. 사진은 빈소 모습.

  노 원내대표는 댓글 조작 의혹 사건의 주범인 드루킹 김모 씨 측으로부터 5천만원대 불법 정치자금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었다.

고 노회찬 의원ⓒ 공동취재사진

 
국민훈장 무궁화장 받는 국민 노회찬
 
"한평생 노동자와 소수자들의 인권 증진을 위해 투신했던 노 전 의원에게 정부가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키로 의결했습니다. 일반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의 훈장입니다."
 

4일 오후, 노회찬재단 측은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이와 같이 알렸다. 같은 날 이낙연 국무총리 역시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계인권선언일(12.10)을 기해 고 노회찬 의원께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오전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노 전 의원을 포함해 9개 부분 유공자 총 91명에게 훈장 또는 포장을 수여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정부는 "노 전 의원이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키로 최종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날 <연합뉴스>에 따르면, 훈장 추서 사유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노 전 의원이 용접공으로 노동현장에서 활동을 시작한 1982년부터 노동자 인권향상에 기여해 왔고 정당과 국회 의정활동을 통해 약자들의 인권향상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노 전 의원에게 추서되는 무궁화장은 5등급의 국민훈장 중 1등급에 해당한다.
 
노동자부터 여성인권까지. 소수자 인권 증대와 보호에 앞장섰던 노 전 의원의 무궁화장 추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더더군다나 그가 추구했던 가치와 족적은 비록 고인이 됐음에도 여전히 회자되고 복기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우성을 비롯해 영화광이자 영화의 친구였던 노회찬, 그 '노회찬의 친구들'을 소환한 <씨네21>이 반가웠던 이유는 조금 다른 데 있었다. 
 
민중과 인권, 그리고 노회찬의 공감
 

"이분들이 우리를 찾을 때…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고 노회찬 의원) 그들을 오래 응시해온 정치인 노회찬은 '존재하되 우리가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정치가 바라봐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보여줬습니다."

지난 27일 JTBC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 역시 앵커 브리핑을 통해 노 전 의원을 소환하고 있었다. 앞서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에서 한부모 가정 시설 지원 예산 61억 삭감을 둘러싸고 벌어진 '비정함' 논란을 거론하기 위해서였다.
 
손 앵커는 이날 강남 빌딩을 청소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매일 새벽에 이용했다는 6411번 버스와 정치인 중 유일하게 그들 청소 노동자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보듬으며 세상에 알려나갔던 노 전 의원의 시선과 공감 능력을 되새겼다. 지난 2007년 7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후보 시절 미 대선 유세 당시 밝힌 연방대법원 판사 선임기준과 비교하면서.

"우리에겐…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마음. 가난하게 살거나, 흑인으로 사는 것. 장애인으로 사는 것. 노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 마음. 곧 공감을 지닌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그 비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노회찬의 공감'은 이제 노회찬 재단으로 승화되고 있다. 내년 1월 정식 출범을 앞두고 있는 노회찬 재단의 시작은 49재가 있던 지난 9월이었다. 당시 방송인 김미화, 박찬욱 감독 등 18명이 재단 설립을 제안했고, 한 달여 후인 지난 10월 약 600명의 재단 준비위원이 참여한 재단 준비위원회가 출범했다.
  
 EBS <지식채널e> '노회찬과 정치인의 자격'의 한 장면.

EBS <지식채널e> '노회찬과 정치인의 자격'의 한 장면.ⓒ ebs

 
11월 12일 발기인 16명이 모인 가운데 발기인 총회가 개최됐고, 조돈문 이사장과 공동실행위원장인 조승수 전 의원을 포함한 13명의 이사가 내정됐다. 연내 설립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인 노회찬재단은 현재 시민추진위원(후원회원) 모집에 한창이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조 전 의원은 젊은 층의 참여를 독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누구도 노회찬을 대신할 수 없다. 다만, 젊은 세대가 노회찬 의원이 하려고 했던 일들을 이어받았으면 한다. 양극화된 대한민국 사회를 바꾸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일과 시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노회찬 전 의원이 추서 받게 된 무궁화장의 다른 이름은 노 전 의원이 평생 민중의 권익과 인권 신장에 헌신했던 그 공감과 실천에 대한 헌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감과 실천이 이제 재단이란 형태를 통해 한 걸음 더 발돋움을 모색하는 중이다.
 
<씨네21>과 조승수 전 의원에 따르면, 이를 위해 노회찬재단은 노 전 의원의 아카이브 구축과 제2, 제3의 노회찬을 발굴하는 (젊은 진보 정치인 양성을 위한) 정치학교, 한국 사회의 비전을 논하는 공론의 장을 만들 것을 약속하고 있다. 정우성도 참여를 약속한 노회찬재단이 노회찬의 공감과 실천을 어떻게 이어가는지, 관심있게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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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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