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 찬미>.

<사의 찬미>.ⓒ SBS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하느냐
 
이 가사로 유명한 '사의 찬미'를 이토 레코드사에서 취입하고 귀국하는 길에, 대마도(쓰시마) 옆 현해탄의 배 위에서 유서와 구두를 남긴 채 애인 김우진과 바다에 뛰어든 윤심덕. 스물아홉 인생을 1926년 8월 4일 새벽 4시 현해탄에서 마친 윤심덕을 다룬 SBS 월화 드라마 <사의 찬미>가 지난 주에 첫 방송을 탔다.
 
소프라노 성악가 윤심덕(신혜선 분)과 연출가 김우진(이종석 분)이 일본 유학 중에 연극반에서 만나 조선 순회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드라마 <사의 찬미>는 시작했다. 드라마 초입부에서는 윤심덕이 김우진에게 호감을 느끼며 다가서는 심리적 과정을 포착하는 데 상당 시간이 할애됐다.
 
이 드라마는 윤심덕과 김우진의 관계가 썸 타기에서 사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가슴 설레는 방법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놓친 부분이 있다. 윤심덕의 일생을 평가할 때는 그의 발자취 못지않게 성격적 특징까지도 비중 있게 다뤄야 한다는 점이다.
 
윤심덕의 성격은 그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시대적 차원에서도 의미 깊었다. 그 시대 여성문화를 선도한 모던걸(modern girl) 혹은 신여성의 개성이 윤심덕한테서 거의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렇기 때문에 윤심덕을 다룬 드라마라면, 그의 성격을 가급적 원래 그대로 묘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1919년판 촛불혁명인 3·1운동 이후, 여성들의 역량이 높아졌다. 유관순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이 '촛불'을 들고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한 결과로 정치 상황이 달라졌으니, 3·1 이후에 그들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조선 문화계에 두각을 나타낸 이들이 바로 모던걸이다.
 
그들이 추구한 삶의 가치는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나'의 삶을 개척하는 것이었다. 독립된 인격체가 되어 인간 해방을 쟁취하고자 했던 것이다. 화가 겸 문인이자 신여성인 나혜석은 <인간 선언>에서 "남편과 자식들에 대한 의무 같이, 내게는 신성한 의무 있네.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사명의 길을 밟아서 사람이 되고져"라고 외쳤다. 누군가의 부속물이 아니라 '나'의 삶을 사는 사람이 되는 게 자기의 신성한 의무라고 천명했던 것이다.
 
그런 모던걸들에 대해 기성세대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들을 가리키는 호칭에서부터 그런 정서가 드러났다. 기성세대는 그들을 '신여성'이나 '모던걸'보다는 '모단걸' 또는 '못된걸'로 부르는 경향이 있었다. 모단(毛斷)은 털 '모'와 자를 '단'을 합성한 단어다. 모던걸들이 댕거머리 대신 단발을 하고 다닌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비틀어 발음한 것이다. 한편, 못된걸이라 부른 것은 이들의 행동방식(예컨대, 자유연애)을 비하할 목적이었다. 
 
 윤심덕.

윤심덕.ⓒ 위키커먼스

 
윤심덕은 모던걸의 대표주자 중 하나였다. 기성세대로부터 모단걸 또는 못된걸로 불릴 만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다. 헤어스타일부터가 단발이었다. 드라마 <사의 찬미> 속의 윤심덕도 머리가 그렇게 길지는 않지만, 드라마 속 윤심덕한테서 느껴지는 단아함이 실제의 윤심덕한테서는 그렇게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의 일거일동 역시, 전통적 시각에서는 '못된걸'이란 표현에 부합했다. 지금 우리 관점에서는 별로 문제 될 게 없지만, 당대인들의 눈에는 우주에서라도 떨어진 별세계 외계인처럼 기이하게 비쳐졌다.
 
그의 행동양식은 전통적 여성상과 정반대였다. 그는 마음 끌리는 대로 살았다. 부끄러움 같은 것도 없었다. 수줍어하고 우물쭈물하는 것을 무척이나 경멸했다. 어릴 때는 일반 소녀들과 달리 남자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려 놀았다. 소년들과 함께 바닷물에 뛰어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남자한테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처음 만나자마자 반말을 쓴 것은 물론 아니다. 그 정도로 예의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안면을 익힌 뒤부터 반말을 쓰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아버지뻘 이상 되면, 존댓말인지 반말인지 헷갈리게 말했다. 남자의 권위,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뿐 아니라 사회생활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중학교 과정인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고 17세 나이로 강원도 원주소학교에 교사로 부임한 1914년이었다. 이때 벌어진 에피소드가 유민영 단국대 명예교수의 <비운의 선구자, 윤심덕과 김우진>에 소개돼 있다.
 
"말수는 적었지만, 한번 꺼내면 달변이었던 그녀가 단번에 원주소학교의 명물이 되었다. 늦게 입학하여 자기만한 남학생들도 단번에 휘어잡을 뿐만 아니라 동료 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단 1주일 만에 젊은 남자교사들과 말을 놓은 그녀는 오종종한 일본인 교사들을 학생 아이들 다루듯 했고, 일본인들에게는 고의적으로 더 그랬다."
 
드라마 <사의 찬미> 속의 윤심덕은 좀 도도하기는 해도, 실제의 윤심덕처럼 행동할 만한 이미지는 아니다. 윤심덕의 실제 성격이 드라마에서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것이다. 윤심덕을 포함한 모던걸들은 그런 성격 때문에 당대의 주목을 끌었다. 따라서 윤심덕을 다룬 드라마에서 윤심덕의 성격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팥소 빠진 찐빵'과 다를 바 없게 되는 것이다.
 
 윤심덕(신혜선 분)

윤심덕(신혜선 분)ⓒ SBS

  
재미있는 것은, 윤심덕이 남자를 거칠게 대하면서도 동시에 남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갓 부임한 윤심덕한테 반말을 들은 원주소학교 남자 교사들은,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그를 욕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앞에서는 전혀 다른 태도를 취했다. 수업만 끝나면 윤심덕한테 달려가 그 앞에서 서성대는 남자 교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윤심덕은 키가 크고 인상이 서글서글했다. 성격도 화통한 편이었다. 그가 반말을 쓰고 하대를 하는데도, 그 때문에 남자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던 모양이다.
 
그런 태도가 발휘한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이 사례 덕분에 윤심덕은 춘천으로 발령을 받고 일본 유학까지 갈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하의 교육부장관에 해당하는 총독부 학무국장을 "할아버지!"로 부르며 반말로 압박을 해서 얻어낸 결과였다.
 
원주에 부임한 지 석 달 뒤, 윤심덕은 강원도 횡성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 인사발령이 그는 불만스러웠다. 그런 상태에서 그 해 하반기, 모교인 평양여고보 동창회에 참석하게 됐다. 바로 이 자리에, 문제의 그 학무국장이 참석했다. 이때 벌어진 일을 유민영 책에 재인용된 <신민> 1926년 9월호는 이렇게 묘사한다.
 
"마침 그때에 장곡천 교장이 인도하는 곳에 관옥 학무국장이 내빈으로 참석케 되었다. 이것을 본 '윤'은 다짜고짜로 학무국장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붙들고 '나를 무슨 죄로 시골구석에 보냈느냐?나는 있기 싫어! 흥!" 하여 가며 억지를 썼다. 좌중은 모두 웃었다. 국장도 교장도 웃고 말았다. 이 모험이 효험이 있어, 그는 춘천으로 전근하였다가 학무국장의 특별한 간발(簡拔, 선발)로 관비유학생이 되어 그의 천재를 대성할 동경음악학교에 들어갔다."
 
윤심덕은 파격적인 반말과 성격으로 남성들을 당혹케 하면서도, 애교를 살짝 발휘하는 방법으로 기성세대의 거부감을 무너트렸다. 좀 '타협적'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신여성의 길을 헤쳐나갔다.
 
이런 윤심덕의 개성이 드라마 <사의 찬미>에서 제대로 표현되지 않고 있다. 1920년대 신여성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이 시대 신여성상의 결정적 요소를 빠트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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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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