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흥행 중이다.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경제 관련 위기를 다뤘으며, 시대극으로 분류했을 때 가장 최근의 역사를 다룬 작품이기도 하다. 이미 그 결과를 모두가 알고 있는 소재의 작품이 흥행하는 건 그만큼 지금 시대 관객들에게 호소하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작진과 배우는 "잊어서는 안 될, 기억해야 하는 이야기", "IMF 사태로 국민들의 가치관과 삶에 대한 태도가 변했기에 짚고 넘어가야 했다"고 강조했다. 영화 속 사람 좋던 평범한 가장 갑수(허준호)가 20년이 지난 뒤 자식과 자신의 회사 근로자들에게 모질게 대하는 장면은 그만큼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국가부도의 날> 이전에 할리우드엔 <빅쇼트>(2015)가 있었다. 한국의 IMF 구제 금융으로부터 정확히 10년 후 발생한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시발점을 조명한 영화다. 아담 맥케이 감독이 연출했고, 크리스찬 베일, 스티브 카렐, 라이언 고슬링, 브래드 피트 등 연기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던 작품이다.

위기에 투자했던 사람들
 
 영화 <빅쇼트>의 한 장면.

영화 <빅쇼트>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두 작품은 공통점이 있다. 하나씩 따져보자. <국가부도의 날>은 위기를 예측한 그룹, 위기를 방관하는 정부, 그 위기에 투자하는 그룹, 위기에 고통 당하는 서민 그룹 등 도식적으로 나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빅쇼트>는 이 중 위기에 투자하는 그룹에 깊숙하게 들어가 그들의 관점으로 당시 미국 사회의 모순을 바라본다. 

한국의 IMF 사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축소판이었다. 무서운 사실은 두 위기 모두 정부의 관리 감독 책임 소홀과 전문가들의 안이함에서 비롯됐다는 사실. 게다가 그 위기로 인한 책임을 일반 서민들에게 지게 했다는 것 또한 판박이였다. 적어도 두 영화에서 그린 대로라면 말이다.

<국가부도의 날>에 비하면 <빅쇼트>는 전문 용어가 훨씬 많이 등장하고, 배우들의 대사량도 그만큼 많다. 전자가 위기 사태 일주일 직전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후자는 3년 전 시점부터 시작한다.
 
이상 조짐을 가장 먼저 발견한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은 주식담보대출과 관련한 각종 파생 상품을 점검한다. 당시 미국 사회는 주택담보대출의 천국이었다. 금융권은 채무자의 상환 능력은 보지도 않고 돈을 빌려주었고, 한 집을 담보로 각종 대출 상품을 나눠 팔기도 했다. 마이클은 그 지점에 거품이 커진다는 걸 알고, 해당 상품들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데에 돈을 건 것이다. 이를 숏(공매도)이라 한다. 

마이클을 필두로 영화엔 그렇게 공매도에 거액을 투자한 여러 집단이 등장한다. 거대 금융사 산하에서 작은 팀을 꾸려놓고 펀드를 거래하던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의 팀, 공매도 상품을 개발해 여러 투자자를 찾던 자레드 바넷(라이언 고슬링)의 팀, 개인투자자로 큰돈을 벌다가 우연히 공매도 상품을 발견하고 올인하게 되는 제이미(핀 위트록)와 찰리(존 마가로) 등이다. 이들은 저마다 전략으로 근교의 주택가를 방문해 분석하거나 각종 포럼에 참여하며 자신들의 이론이 맞음을 확인해 나간다.

<국가부도의 날>에선 전직 금융맨 윤정학(유아인)이 이들의 역할을 담당한다. 외환보유고가 바닥임을 직감하고 주식이 폭락할 것을 예측한 윤정학은 <빅쇼트> 속 인물들처럼 새로운 파생상품을 금융사에 제안해 위기 사태에 돈을 건다. 

제물이 된 거물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빅쇼트>의 한 장면.

영화 <빅쇼트>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사실상 위기를 자초한 당사자들이 제물이 됨과 동시에 일부는 가장 먼저 위기에서 빠져나가며 심지어 혜택까지 본다는 사실 또한 공통점이다. <국가부도의 날>에선 거래처와 관계사 등에 각종 어음을 남발한 재벌 기업이 그것이며, <빅쇼트>에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출 및 파생 상품을 팔아버린 금융기업이 그것이다. 전자에선 경제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한보그룹, 대우 등 우리가 알던 대기업이 쓰러진다. 후자에서도 리먼 브라더스, 골드만 삭스 등 글로벌 금융 기업이 줄줄이 파산한다. 

<국가부도의 날>에선 한국은행 통화정책 팀장 한시현(김혜수)이 직접적으로 위기를 알리고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면, <빅쇼트>에선 앞서 언급한 공매도 투자 그룹들이 간접적으로 금융가와 투자자들에게 위기를 알린다. 물론 이들은 모두 돈을 벌기 위함이 첫 번째였지만 영화에서 마이클이나 마크, 제이미와 찰리의 멘토같은 존재였던 전직 금융맨 벤(브래드 피트)은 경거망동하지 않고 오히려 돈을 벌게 돼 기뻐하는 이들을 탓하거나 자신을 스스로 탓하는 모습을 보인다. 

<빅쇼트> 속 마크의 대사가 강하게 울림을 준다. 월가 역사상 가장 큰 파산사태가 올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으며 그는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일반 국민이 지게 될 것입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또한 영화 초반엔 '(사람들이)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라는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하며, 영화에 등장하는 엘리트들의 어리석음과 이기심을 비판한다.

그렇게 위기는 현실화되고, 3년 전만 해도 말도 안 될 일이라며 무시했던 언론은 앞다퉈 대규모 위기 상황을 보도하기 시작한다. 이미 때는 늦었다. 일각에선 이런 사태를 책임지고 정부가 파생상품 거래를 제한하며 관련자들을 처벌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영화에선 단 1명의 금융권 간부만 체포되고 나머지는 보너스 파티를 하며 희희낙락했던 실제 역사를 그대로 묘사했다. 

<국가부도의 날> 역시 마찬가지다. 한시현이 반복해서 경고했지만, 우리가 다 아는 대로 한국은 IMF 구제 금융을 수락하며 그들이 제시한 조건을 아주 충실히 실행했다. 그 결과는? 대량 해고 및 구조 조정, 그리고 빈곤 가정의 증가였다. 

반복되는 위기, 대체 왜?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빅쇼트>의 한 장면.

영화 <빅쇼트>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된 세계 4위 규모의 금융사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를 따서 2008년 당시 미국 위기를 '리먼 브라더스 사태'라고도 부른다. 그 여파로 미국에서만 1년 안에 8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600만 명의 사람들이 집을 잃어버렸다. 당시 서울 인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 사태로 연기금, 부동산, 국민들의 퇴직금과 예금, 각종 채권 등 총 5조 달러가 증발했다. 

사실 이런 위기는 반복됐다. 1929년 경제 대공황, 2001년 닷컴버블 사태 등. 그 직접적 원인 분석은 학파나 사람들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당시 정부의 안이함과 전문가들의 침묵은 공통적으로 존재했다.

과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는 이런 위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걸까. 영화 속 한시현처럼 IMF 사태 직전 비공식 대응팀이 당시 정부에 충언을 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언론 역시 침묵에 동참했으니 말이다. 실제로 마이클 버리 박사는 위기 이후 백악관에 자신이 예측하게 된 경위와 분석 틀을 알려주려 몇 차례 시도했으나 당시 미국 정부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고 한다. <빅쇼트>에서도 해설을 통해 설명된다.

알리려는 사람이 있었고, 자기 자리에서 본분을 다한 사람이 있음에도 책임자들이 묵살하고 무시한다면 위기는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두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공통적인 교훈이다. IMF 사태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이는 누구였을까. 바로 국민이었다. <빅쇼트> 속 마크의 예언대로인 셈. IMF 당시 국민들은 21억 달러 상당의 금을 모아 정부에 바쳤다. 정부와 언론은? 그런 국민성을 치켜세우면서도 과소비와 무분별한 해외여행이 문제라며 국민을 동시에 질타했다. 

'진실은 시와 같다. 대부분의 사람은 시를 혐오한다' <빅쇼트>에서 인용한 말 중 하나다. 워싱턴 D.C. 어느 술집에서 들린 말이라며 이 출처가 불분명한 말을 소개하는데 무섭게 기억해야 할 말이기도 하다. 알기 싫더라도 알아야 하는 진실을 우린 그간 얼마나 무시해 왔는가. 그리고 배우 김혜수의 말도 새겨 볼 만하다. "누군가는 그때 자기 본분을 다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며 김혜수는 본분을 다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과 <빅쇼트>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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