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의 한 장면

<남자친구>의 한 장면ⓒ tvN

 
정열의 땅 쿠바, 그곳에서 한 남녀가 우연히 만났다. 남자는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쉬고 있던 중 갑자기 달려든 차로 인해 봉변을 당했다. 다친 곳이 없냐는 물음에 "카메라가 다친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그 섬세하고 상냥한 목소리가 남자를 설명한다. 그 상황을 차 뒷좌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자는 무심한듯 남자의 얼굴을 눈속에 담는다. 그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큐피트의 노력 덕분일까. 그들을 위해 수많은 우연들이 겹친다. 수면제를 먹고 일찍 잠들려 했던 여자는 느닷없이 말레콘 비치의 야경을 보러 홀로 길을 나섰다. 가는 도중 택시가 고장나고, 핸드백은 도둑 맞았다. 우여곡절 끝에 모로 까바냐에 도착한 여자는 난간에 걸터앉아 야경을 기다렸다. 그때 갑자기 수면제의 효력이 발휘돼, 여자는 휘청이며 정신을 잃는다. 그 아찔한 순간, 우연히도 남자가 나타나 여자를 구했다.
 
 <남자친구>의 한 장면

<남자친구>의 한 장면ⓒ tvN

 
"쿠바 마지막 날의 아찔한 사건으로 해두죠."
"돈 좀 있어요?"


여자는 청량한 미소의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고, 남자는 세련된 분위기의 여자에게 이끌렸다. 애써 담담한 척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맥주 한잔을 제안했다. 아마도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편히 숨을 쉴 수 있는 그 순간이 너무도 절실했기 때문이리라. 그건 일탈이고, 휴식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낯선 땅의 묘한 감성이 빚어낸 마법 같은 하루 속에 자신들을 밀어넣는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야경을 만끽하고, 과감하게 맨발로 거리를 누볐다. 간단한 식사를 함께 하고, 살사 공연장을 찾기도 했다. 그 자유로운 분위기에 취해 함께 춤을 추며 교감을 나눈다. 낯선 곳에서 겪는 낯선 상황, 낯선 사람과의 낯선 경험들이 여자와 남자를 움직인다. 그들의 밤은 그들로 인해 더할나위 없이 특별해졌다. 그들은 아마도 사랑에 빠졌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 보자. 여자, 차수현(송혜교)은 무려 호텔체인의 '대표님'이다. 망해가던 동화 호텔을 이혼 위자료로 받아 4년 만에 업계 1위로 만들고, 쿠바에까지 진출시킨 역량 있는 사업가다. 게다가 청와대 입성을 꿈꾸는 유력한 정치인의 딸이다. 그런 수현에게 개인적인 삶, 그러니까 자유라는 게 있었을 리 없다. 억압받은 채 평생을 살아왔다. 여전히 그는 전(前) 시어머니의 생일 파티에 끌려가야 하는 신세다. 
 
 <남자친구>의 한 장면

<남자친구>의 한 장면ⓒ tvN

 
남자, 김진혁(박보검)은 차수현과 달리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닭살스러운 자기소개서에서 읽히듯, 그의 삶은 '놀이터'마냥 따뜻했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밝다. 청정한 미소가 트레이드 마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유로운 영혼마냥 쿠바를 여행했던 진혁이 알고보니 동화 호텔의 신입사원이 아닌가. 저 두 남녀의 우연은 쿠바라는 '꿈'에서 그치지 않고, '현실'에까지 이어져 있었다.

tvN <남자친구>는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여자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평범한 남자가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 드라마다. 사실 이 구도는 그 자체로 상당히 흥미롭다. 왜냐하면 조금 낯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늘상 접해왔던 로맨스 드라마는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남자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평범한 여자가 만'나는 설정으로 일관해 왔다.  

그런데 <남자친구>는 정반대다. 남자가 캔디가 되고, 신데렐라가 된다. 일종의 전복(顚覆)이다. 회사의 대표인 수현은 퇴근길에 술을 잔뜩 취한 신입사원 진혁을 발견하고 차에 태운 후 무려 집까지 바래다 준다. 면담이라는 명목으로 불러 숙취해소환을 건네고, 따로 만나 휴게소 데이트를 즐긴다. 이 모든 상황을 주도하고 리드하는 건 수현이고, 옷이 몇 벌 들어있지 않은 옷장을 열어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건 진혁의 몫이다.
 
 <남자친구>의 한 장면

<남자친구>의 한 장면ⓒ tvN

 
역할의 뒤바뀜, 그러니까 기존의 성 역할을 뒤집어 놓은 것만으로도 <남자친구>는 충분히 가치있는 드라마다. 시대의 변화를 정확히 짚어냈다고 할까. 다만, 기존 로맨스의 심심한 구성을 지나칠 정도로 고스란히 답습한다는 점은 아쉽다. 신선하지만 지루하다. 아무리 남녀의 역할이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역할과 관계, 상황과 갈등이 뻔해 몰입도가 떨어진다. 인형뽑기나 술주정(을 부리는 박보검은 귀여웠지만)은 식상하지 않은가. 

물론 송혜교와 박보검, 두 배우의 힘은 어마무시한 위력을 뿜어낸다. 개별적으로도 아름답기 그지 없는 두 사람이 어우러지는 장면들은 영화처럼 눈부시고, 광고의 한 장면처럼 감각적이다. 송혜교는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극의 중심을 든든히 잡았고, 박보검은 생기발랄한 힘을 불어 넣었다. 1회에서 8.583%의 높은 시청률로 스타트를 끊더니, 2회에선 10.329%로 폭발력을 과시했다. 이름값은 충분히 한 셈이다. 그러나 진짜 승부수는 3회부터다.

1, 2회가 캐릭터를 잡아나가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턴 본격적인 힘을 뿜어내는 단계다. 또, 영상미의 활약도 이쯤에서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이젠 이야기의 힘이 발현되야 한다. <남자친구> 제작진은 '신분상승'이 아니라 오히려 '신분하강'을 그려나갈 것이라 밝혔다. 과연 수현이 자신의 부와 명예를 어떤 방식으로 내려놓게 될지, 진혁이 얼마나 큰 존재감을 발휘할지, 그 모습들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질지 기대가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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