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영씨> 포스터

영화 <다영씨> 포스터 ⓒ 인디스토리


고봉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 <델타 보이즈>는 청춘에 대한 힐링 스토리로 주목을 받았다. 네 명의 남성이 남성 사중창 대회에 참가하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작고 보잘 것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행복을 말한다. 루저들의 반란이나 사회의 구조 때문에 억압 받는 청춘의 고통이나 희망이 아닌, 별 볼일 없지만 작은 행복을 이루기 위해 아등바등 하는 우리네 인생을 그려내며 영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두 번째 작품인 <튼튼이의 모험>에서도 그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재능은 없지만 레슬링을 좋아하는 18살 충길이의 전국체전 도전을 다룬 이 작품은 누군가에게 대회는 수상을 위한 기회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참가 그 자체로도 행복임을 보여준다. 고봉수 감독이 말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말하는 인터넷 신조어)'은 삶에 대한 좌절과 드라마틱한 성공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원하는 대상과 함께할 수 있기에 기쁨을 느낀다.
  
 <다영씨> 스틸컷

<다영씨> 스틸컷 ⓒ 인디스토리

 
'고봉수 사단'의 세 번째 장편 영화 <다영씨>는 세 가지 점에서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 노래(델타 보이즈)와 레슬링(튼튼이의 모험)을 소확행의 대상으로 정했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의 민재가 행복을 얻는 대상은 다영씨이다. 퀵서비스 기사 민재는 어느 날 한 회사에 퀵 배달을 가고 그곳에서 다영을 만나게 된다. 자신에게 살갑게 대하는 다영에게 마음을 빼앗긴 민재는 그녀가 비정규직에 '빽'도 요령도 없다는 이유로 다른 사원들에게 차별 당한다는 걸 알게 된다.
 
이에 민재는 그녀를 지켜주기 위해 퀵 서비스를 그만두고 다영의 회사에 입사한다. 학력도 경력도 없는 민재는 희망 월급으로 적은 금액을 적어 넣고 청소담당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는 다영이라는 행복을 곁에서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영화는 이런 민재의 사랑을 무성과 흑백으로 풀어낸다.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여주며 과장된 표정과 행동을 통해 상황을 이해시킨다는 점에서 마치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사회의 구조가 만든 힘겨운 현실 속에서 다영에게 의지가 되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민재의 모습은 미국의 산업화 시대에 인간소외 현상을 다룬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연상시킨다. '헬조선에 빠진 찰리 채플린의 2018년 판 <모던 타임즈>'라는 이야기가 괜히 등장한 게 아니다. 그만큼 이 작품에서는 채플린의 분위기가 난다. 그리고 고봉수 감독의 느낌 역시 진하게 담겨 있다.
  
 <다영씨> 스틸컷

<다영씨> 스틸컷 ⓒ 인디스토리

 
<다영씨>가 주로 다루고 있는 갈등의 원인은 다영과 민재의 현실이다. 다영은 직장생활에 성실히 임하지만 자신의 앞자리 여직원처럼 아름답지도, 빽이 있지도, 사교성이 있지도 않다. 그녀에게 정규직 전환은 먼 미래처럼 여겨지며 상사들의 일 떠밀기에 의해 툭하면 야근에 시달린다. 왕자님이 되어주고 싶은 민재는 돈도 능력도 없다. 다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오히려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위해 기적을 행하지 않는다. 다영이 당차게 상사들에게 반기를 들거나 한 방 먹이지 않고, 민재가 갑자기 백마 탄 왕자가 되어 다영을 구해주지도 않는다. <튼튼이의 모험>의 충길이 갑자기 없던 재능이 생겨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지 않듯, <델타 보이즈>의 4인방이 감동을 줄 수 있는 기적을 써내려가지 못하듯 두 남녀 사이에 드라마틱한 반전은 '영화'라는 배경 아래 피어나지 않는다.
 
대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민재와 다영 양쪽에게 선물한다. 고봉수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유지하되 표현에 있어 이전과는 다른 방식을 택하며 신선함을 준다. 그는 섣부르게 판타지를 통해 관객들에게 위로나 힐링을 주지 않는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전달하는, 그래서 영화가 끝났을 때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고봉수 만의 마법을 선사하는 영화의 온도가 따스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오는 6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렸습니다.
다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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