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금토 드라마 <스카이 캐슬> 포스터.

JTBC 금토 드라마 <스카이 캐슬> 포스터.ⓒ JTBC


 
'하늘'을 하늘이라 발음해본다. '하늘'은 그저 '하늘'로서 존재한다. 하늘이라는 언어가 생긴 후 개개인에게 '하늘'은 자신들이 붙인 의미로 기억된다. 내게 '하늘'은 얄미운 곳이다. 지구 어딘가에선, 누군가는 종일 끼니를 굶어가며 병마와 싸우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타인을 죽인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곳 위엔 어김없이 모른 척 하는 하늘이 있다. 무너지지도, 변할 것 같지도 않은 모습으로 말이다.

얼마 전 시작한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 속 '하늘'은 어떤 것일까. 주인공 한서진(배우 염정아)은 극 중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 출신 정교수 의사 집안만 거주할 수 있는 '스카이 캐슬'에 산다. 물론 남편이 주남대(극 중 명문대 명칭) 의예과 정교수이기에 가능한 삶이다. 그곳엔 주인공 한서진을 포함한 총 네 가구가 산다. 한 가구(명문 법대 출신 로스쿨 교수집안)를 제외한 가구 전부가 주남대 출신 정교수 의사 남편을 둔 가정이다. 그들에게 '하늘'은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 그것도 '正교수'만이 누릴 수 있는 천국이 아닐까. 그들의 사연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부모를 잘 만나 때깔 좋은 세포 따위가 욕망을 실현시킨, 그들만의 '유토피아'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쯤에서 멈추지 않는다. 극 중 캐릭터들에게는 더 정교한 사연이 있었다. 그들은 '하늘'을 만들고 유지하는 곳으로 생각했다. 그들에게 '하늘'은 그저 '하늘'로서 존재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늘을 원래는 없는 곳이었지만 만들어내야 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옥죄고 자신을 다그치고 범죄(아이들은 스트레스로 절도도 한다)를 용인하면서까지 유지해야 하는 그곳은, 결코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한 모른 척 하는 '하늘'보다 더 잔인한 곳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JTBC 금토 드라마 <스카이 캐슬> 스틸 컷.

JTBC 금토 드라마 <스카이 캐슬> 스틸 컷.ⓒ JTBC

 
'스카이 캐슬' 속 어른들은 자녀들을 '하늘'보다 더 높은 '하늘'로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자신들이 인식한 '하늘'이란, 이 세상에 거저 있는 곳도 아니고, 누구든지 공평히 누릴 수 있는 곳도 아니다. 그런 좁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자신들의 아이들을 위태롭게 올려두어야만 한다. 그래야, 모두의 선망과 존경, 더 나아가서는 시샘조차 거저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들은 그것을 욕망한다.

그들의 지저분한 욕망에 피해를 입는 건, 물론 그런 욕망이 없는 아이들이다. 극 중 부모와 욕망이 다른 아이들은 높게 뻗어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하늘'보단,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넓은 '하늘'로서의 '하늘'을 본다. 물론 아이들이라고 모두 다 그런 욕망이 없는 캐릭터만 있는 건 아니다.(한서진의 딸에겐 한서진과 같은 욕망이 있다.)

하지만 한서진의 딸조차, 그 욕망이 자신의 내면에서 나온 진정한 자아와 맞닿아있는지 생각하면 그렇지 못하다. 한서진의 딸, 즉 강예서(배우 김혜윤)는 자신과 자신의 엄마를 인정해주지 않는 친할머니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공부한다. 그에겐 일등이 되는 것, 그 후 얻을 수 있는 타인의 부러움과 질투가 마치 혜택인 것만 같다. 그렇게, 일등만을 향한 욕망에 눈을 뜬다. 결국, 아이를 둘러싼 어른의 입김에 의해 욕망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

예서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은 심지어 그런 욕망을 거부하는 아이들뿐이다. 드라마는 그런 아이들이 있는 집안은 어떤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지에도 초점을 맞춘다. 경쟁하는 것에만 마음을 쏟는 집안은 당연히 가부장적이고 폐쇄적인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여자는 아직도 남자의 말에 반대 의견을 내기 힘들고, 그런 억압은 아이들의 욕망을 제어하는 쪽으로 작용하게 된다.

가장 비극적인 예시로 초반부 등장했다가 모습을 감춘 가정이 있었다. 드라마 전체 내용을 관통하는, 굉장히 큰 파장을 일으키고 떠난 가정이었다. 주남대 의대에 합격한 고3 수험생(극 중 영재)을 둔 가정이었는데, 영재는 지금껏 착한 아들, 착한 모범생 역할을 자처하며 부모를 향한 복수로 이를 갈며 살아온 아이였다. 부모가 원하는 대로 명문 의대에 합격'해주고' 그들을 떠나 연을 끊고 살려는 속셈이었다. 아들의 승승장구 인생을 자신들을 치장할 도구쯤으로 여기며 행복에 겨워했던 부부는, 아들의 진짜 속내를 알고 절망한다. 결국, 엄마 역할을 맡았던 배우 김정난은 자살하는 것으로 퇴장한다.
 
 JTBC 금토 드라마 <스카이 캐슬> 스틸 컷.

JTBC 금토 드라마 <스카이 캐슬> 스틸 컷.ⓒ JTBC

 
그런 비극적인 사연을 모두 알게 된 한서진은 처음엔 갈등한다. 자신의 딸도 영재와 같은 입시 코디네이터의 케어를 받게 해주고 싶지만, 영재의 반란이 코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판단한 서진은 자신의 가정에도 영재네와 같은 비극이 일어날 것만 같다. 한서진은 처음엔, 비극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접은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그새 코디네이터와 밀고당기기 게임에 넘어간다. 코디네이터는 자신을 밀어내는 서진을 향해 더 다가가진 않고 오히려 더 멀어지는 방식을 택한다. 이 부분에서 코디네이터는(배우 김서형) 인간의 비이성적인 욕망에 대해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캐릭터로 보였다. 멀어질수록, 더 아쉽지 않은 입장을 취할수록, 욕망에 취약한 한서진이 더욱 더 자신에게 안달이 날 것을 꿰뚫고있는 것이다. 결국, 한서진은 코디의 밀당에 굴복하고 (심지어 코디의 밀당인 것인지도 모르고 굴복한다. 그저 딸을 명문대에 보내겠다는 자신의 욕망이 시킨 주체적인 마음인 것만 같다.) 자신의 딸을 맡아달라며 무릎까지 꿇게 된다.

한서진은 욕망에 철저하게 솔직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매해지기 쉽다. 그런 욕망을 이용해 군림하는 반대급부가 반드시 나오기 때문이다. 한서진에게는 코디네이터가, 한서진을 부러워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겐 한서진이란 캐릭터가, 그런 군림의 역할을 꿰찰 수 있게 한다. 한서진에게 '하늘'은 아름다운 자연도, 자신들의 어려움을 모른 척 하는 얄미운 것도 아닌, 그저 올라가서 누군가를 밟고 싶어지는 잔인한 '유토피아'에 불과했다.

욕망을 가진 인간은 때론 더럽고 때론 사랑스럽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이 다른 누군가에겐 슬픔을 줄 수 있기에 더럽다. 동시에 그런 욕망에 쉽게 지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인간은 사랑스러워 보이게도 한다. 난 인간이 가진 욕망이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있고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도 모를 만큼 깊숙이 자리한다.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는 마음이고, 누구든지 당장 지금보단 나아지려는 몸부림만 있다면 품을 수 있는 마음이다. 인간에게 욕망은 그만큼 크게 작용하고 꽤 정교하다.

하지만, 그렇게 인정만 해버리면 끝나는 걸까. 드라마는 결국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시작도 없다는 말을 하려던 것이었을까. 아직 드라마가 초반부이고 앞으로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순 없다. 하지만 한서진과 코디네이터 김주영, 그리고 그들의 링 안에서 벗어난 메시아 같은 이수임(배우 이태란)의 관계를 놓고 봤을 때 드라마는 결코 욕망을 가진 자들에게만 집중하진 않을 것처럼 보인다.

조금 씁쓸했던 것이 있다. 인간의 욕망이야 여러 가지 모습으로 얽히고설켜 있겠지만 누군가를 밟고 올라선 곳의 바람이 너무 달다는 것에 대한 욕망, 그것이 내게도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어떤 느낌일지 안다. 다 알 순 없어도, 상상이 간다.

난 끊임없이 경계한다. 내가 쉽게 노출 될 수 있는 이기심, 내가 사랑하게 될지도 모를 나, 같은 것에 조금씩 거리를 두는 연습을 한다. 균형을 맞추며 살려는 삶이 어쩌면 누군가에겐 가장 얄미워 보일 수 있는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극단으로 향한 삶에는 분명, 잘못된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드라마가 한서진의 욕망에 슬퍼질 수 있는 이들에 더 집중을 할 수 있길 바란다. 또한 한서진 뿐 아니라 다른 부모들, 특히 아빠 역할을 맡은 캐릭터들이 어퍼컷을 먹길 바란다. 그들이 애지중지 아껴서 상위 1%를 만들려는 그들의 아이들을 통해 말이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 1등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시스템으로 가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아이들이 원하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다. 또한 우리의 크고 작은 욕망으로 세상 어딘가에 있는 어떤 존재는 피해를 볼 수 밖엔 없다는 것도.

그들이 만든 사연 속 '하늘'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깨닫길 바란다. 하늘은 하늘로서 존재하지, 그것이 어떤 대학의 앞글자를 딴 의미를 띠려고 만들어진 건 아니다. '갑을병정'이란 말이, 이름 없는 '아무개'를 지칭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지, '갑'과 '을'의 서열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나온 말이 아닌 것처럼. 마지막 화까지 아이들 캐릭터 고유의 마음과 언어 본래의 의미에 집중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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